남편살해 고유정 1심 무기징역···스모킹건은 '졸피뎀'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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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유정(37)이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5월 25일 전 남편 살인 사건 발생 후 9개월 만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고유정에게 “극단적인 인명 경시 살인”이라며 사형을 구형했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20일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만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 남편 살인 사건에 대한 고유정의 계획적 범행은 인정했지만 의붓아들 사건은 모든 의심을 배제할 만큼 엄격히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 남편 사건 스모킹건은 '졸피뎀'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버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키 182㎝,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인 강씨가 160㎝ 내외의 고유정에게 살해당한 것을 두고 주목받은 것이 졸피뎀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전 남편 살해 당일 고유정이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을 음식에 넣어 전 남편에게 먹인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에 사용된 졸피뎀은 고유정이 5월 17일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후 인근 약국에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 역시 “피해자(전 남편)를 면접교섭권을 빌미로 유인해 졸피뎀을 먹여 살해하고 시신을 손괴·은닉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졸피뎀을 핵심 증거로 인정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어떤 연민이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어 중형이 불가피하다”며 무기징역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의붓아들 살인 사건은 증거 불충분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지난해 5월 28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범행도구 중 일부 물품을 환불하고 있다. [뉴스1]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지난해 5월 28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범행도구 중 일부 물품을 환불하고 있다. [뉴스1]

전 남편 살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3월 사망한 고유정의 의붓아들 사인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유정의 현 남편은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이 친아들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고유정을 의붓아들 살해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고유정이 잠을 자던 의붓아들을 10분 동안 몸으로 강하게 눌러 질식시켜 살해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후 전 남편 살인 사건과 의붓아들 살인 사건이 병합돼 재판이 진행됐다.

12차례에 걸쳐 진행된 재판에서 고유정 변호인은 전 남편과 의붓아들 살인 사건을 구분해 혐의를 부인했다.

계획적으로 전 남편을 살해한 것이라는 검찰 주장에는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지속적으로 항변했다.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선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유정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재판부의 추궁에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판사님과 저의 뇌를 바꾸고 싶을 만큼 답답하다”고도 말했다.

재판부는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범죄 증명이 부족하고 범행 동기도 선뜻 납득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간접 사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과학법칙에 부합돼야 한다. 다만 의심사실이 병존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면서다.

재판부는 또 “현 남편의 모발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지만, 고씨가 차에 희석해 먹였다고 증명할 수 없다”며 “또한 피해자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하고 통상적 치료 범위 내에 처방받은 감기약의 부작용이 수면 유도 효과임을 고려해 봤을 때 아버지의 다리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히면서 의붓아들 사건과 관련한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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