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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중소기업 공단 편의점주, 접을까 말까 고심 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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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편의점에 비친 경제

편의점주 곽대중씨가 냉장고 뒷공간에 들어가 음료수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편의점주도 하나의 직업“이라며 ’애착을 갖고 시작하지 않으면 오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편의점주 곽대중씨가 냉장고 뒷공간에 들어가 음료수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편의점주도 하나의 직업“이라며 ’애착을 갖고 시작하지 않으면 오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매일 갑니다, 편의점

매일 갑니다, 편의점

편의점에는 세상이 녹아 있다. 경기에 따라 손님 수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1인 가구와 ‘혼밥’ 세태가 늘면서 새 상품이 나왔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은 아르바이트생 얼굴이 수시로 바뀌게 했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이른바 ‘쪼개기 알바’다. 코로나19와 최근의 경제 상황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18년 에세이집 『매일 갑니다, 편의점』(작은 사진)을 펴낸 곽대중(46·필명 봉달호)씨를 만났다. 그는 2013년부터 서울 송파구의 대기업 건물에서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 쓴 곽대중씨 #꽉 찼던 아파트형 공장 절반이 비어 #코로나19는 되레 매출 증가에 도움 #스트레스 90%가 알바 채용 문제 #책임감 강해 50대를 직원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편의점은 좀 다르다. 편의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도시락과 샌드위치가 많이 팔린다. 점심에 나가지 않고 혼자 먹는 것 같다. 회식을 하지 않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인지 맥주와 안주가 전보다 많이 나간다. 담배도 많이 팔린다.”
담배는 왜….
“밖에 나가지 않고 건물 흡연실에서 피운다. 밖에서 피우면 외부 편의점을 이용할 텐데, 그 손님들이 이리 오는 거다. 오면 담배 말고 다른 것도 함께 산다.”
편의점은 오히려 장사가 잘된다는 건가.
“확진자가 나와 유동 인구가 줄어든 지역이 아니라면 대체로 그럴 거다. 회식이 줄어 숙취 해소 음료가 덜 나가는 정도다.”
마스크는 공급이 달리지 않나.
“초기엔 본사에서 매주 400개씩 들어오더니 200개, 100개로 줄다가 지난주부터 공급이 끊겼다.”
코로나19 전부터 경기가 안 좋았다.
“설에 편의점주들이 모여 식사했다. 들어보니 상황이 죄 다르다. 나는 대기업 직원들이 주 고객이어서인지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편의점을 접을까 말까 고민하는 친구도 있다. 중소기업들이 입주한 아파트형 공장에 가게를 냈는데, 중기들이 줄줄이 문 닫고 베트남이나 미얀마로 갔다더라. 100% 찼던 단지가 절반이 비었다고 한다. 요즘도 ‘이젠 못 뵐 것 같다’고 단골들이 인사한다던데….”
또 다른 편의점 사정은.
“국민연금공단 지사 건물에 있는 편의점은 내방객이 늘어 장사가 잘된다(※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때문으로 보인다). 반대로 보험사 빌딩에 입주한 친구는 표정이 안 좋다(※경기가 나쁘면 보험을 깨는 고객이 많아 보험사 실적이 악화한다).”
밸런타인데이 대목은 어땠나.
“아무래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사실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데이에는 편의점 매출이 크게 늘지 않는다. 반대인 화이트데이가 더 큰 대목이다.”

개인 편의점에서 프랜차이즈로 전환

곽씨는 원래 중국에서 일했다. 사업을 하다 접고 대한상공회의소 현지 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 한국에 돌아와 편의점을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부친이 30년간 하던 음식점을 접고 편의점을 내겠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갈등 때문에 편의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오던 때였다. 아버지를 말리다가 ‘차라리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창업 준비를 어떻게 했나.
“편의점주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정보를 얻어 부산·대구까지 ‘고수’로 소문난 편의점주를 찾아가 ‘사부’로 모시겠다며 컨설팅했다. 고수들은 ‘독점 상권이니 굳이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엔 개인 편의점을 열었다가 2016년에 프랜차이즈로 바꿨다.”
바꾼 이유는.
“개인 편의점으로는 손님들 요구를 맞추기 어려웠다. ‘도시락 종류가 이것밖에 안 되냐’ ‘1+1행사는 왜 없나’…. 이동통신사 연계 혜택도 없다. 수십 군데 공급처와 일일이 납품가 흥정을 해야 하고…. 프랜차이즈는 그걸 본사가 한다. 처음부터 프랜차이즈 편의점만 해온 사람은 이런 차이를 모른다. 편의점 시작할 때 개인편의점주모임이 있었다. 15명이었는데, 이젠 한 명밖에 안 남았다.”
매출은 어떤가. 책에서는 ‘프랜차이즈로 바꾼 뒤 매출이 50% 늘었다’고 했다.
“솔직히 그것보다 더 늘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많이 상대하는 편의점은 브랜드의 힘이 세다.”
2018년과 19년 연거푸 최저임금이 확 올랐다. 편의점들이 직원을 많이 줄였다던데.
“편의점은 인건비 탄력성이 떨어진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8시간 걸려 할 일을 6시간에 마칠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무조건 주어진 시간만큼 카운터를 지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가 오르면 점주는 몸으로 때운다. 최저임금이 치솟으면서 점주들 근무 시간이 늘고 가족이 일하게 됐다.”
본인 매장은 어땠나.
“나는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기 직전에 운영 형태를 바꿨다. 전에는 젊은 아르바이트를 6명까지 썼다. 4대 보험 부담을 줄이려고 단시간 근무를 시켰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요즘 젊은 친구들, 느닷없이 문자 휙 던져 ‘오늘 못 나가요’ 할 때가 많다. 갑자기 그만두기도 일쑤다. 점주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의 80~90%가 사람 문제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장시간 근무로 바꿨다.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고, ‘오래 갈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시급제가 아니라 월급제로 한다. 퇴직금도 적립한다. 최저임금이 오르기 전부터 나와 동업자 격인(그러나 월급을 받는) 친구, 직원 2명, 이렇게 넷이 운영했다.”
오래 갈 사람을 어떻게 찾나.
“지금 같이 일하는 두 분은 모두 50대 중반이다. 훨씬 책임감 있다.”

강의 요청 쇄도 … 요즘은 거절

2018년에 낸 책이 제법 팔리자 곳곳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대학 강연도 있고, 편의점을 열려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창업컨설팅 회사에서 와달라고도 했다. 유튜브 채널을 열자는 제의는 “영상 체질이 아닌 것 같아” 거절했다고 한다.

요즘도 강연을 많이 하나.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강연해달라는 요청이 엄청나게 오는데 가지 않는다. 강연 초기에 비교적 장사가 잘되는 얘기를 했더니 ‘본사에서 혜택 주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보더라. 그런 얘기 듣기 싫어 강연을 거절한다.”
본인도 가게를 내기 전에 ‘강호의 고수’라는 점주들을 찾아갔다. 마찬가지로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꽤 있다.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다. 오면 나는 ‘왜 편의점을 하려느냐’고 물어본다. 상당수는 ‘다른 거 할 게 없어서’라고 한다. 그런 대답에는 화를 낸다. ‘이것도 하나의 직업이다. 나는 목숨 걸고 한다. 집요함이 없으면 안 된다’며 말린다.”
편의점 운영이 녹록지 않다는 소리다. 그런데 책에서는 편의점을 상당히 유쾌한 장소로 그렸다.
“처음엔 ‘편의점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의 제목을 생각했다. 출판사와 논의하면서 ‘세상이 각박한데 우울한 얘기 말고 재미있게 가 보자’라고 바뀌었다.”
한 곳에서 7년. 단골 꽤 생겼을 것 같다.
“보통 편의점 고객이 하루 500명 정도다. 그것도 몰리는 시간이 있다. 손님과 얘기 나누기 힘들다. 그래도 기업 건물에 오래 있다 보니 친해지는 손님이 있다. 고졸로 들어와 군대 간다고 했던 친구가 제대 인사도 왔다. 남녀 둘이 늘 같이 오더니 결혼하고…. 커플 깨지는 것도 빨리 눈치챈다. 같이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따로 오는 경우다. 사람 사는 게 보인다.” 

편의점의 비밀

편의점은 얼마나 많은 상품을 다룰까. 곽대중씨의 매장엔 2200여 종이 있다. 길에서 대하는 보통 크기 편의점이 다들 이 정도다. 담배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 그래서 담배 안 피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처음에 제일 어려워하는 게 ‘손님이 부르는 담배 찾기’다.

곽씨의 매장에선 참치회를 판다. 한 때는 홍어회도 있었다. 1년에 몇 개 안 팔리지만, 대부분 편의점은 양초와 모기약 등도 갖다 놓는다. 제사를 지내려다 초가 없을 때, 여름밤 모기는 왱왱거리는데 약국은 문 닫았을 때 손님들이 편의점에 뛰어온다고 한다. 곽씨는 “창고에 두는 물건도 많으니 진열대에 없으면 카운터에 꼭 물어보라”고 귀띔했다.

수많은 상품 진열에는 요령이 있다. 안주는 주류 옆에 놓는 식이다. 곽씨 매장 건물엔 어린이집이 있어 사탕과 과자를 유아 눈높이에 맞춰 놓았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느 편의점이든 한구석 천장에는 볼록거울이 달려 있다. 급커브길에 있는 것 같은 거울이다. 카운터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혹시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지켜보려는 용도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