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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에 낀 그리스 미인" 슈만이 극찬한 베토벤 교향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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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 어떤 곡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예를 들면 교향곡 제1번이나 제4번 같은 곡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품도 나름대로 베토벤의 선구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호소력을 보여주는 명작임에 틀림이 없다.

‘영웅교향곡’ 이후에 탄생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은 베토벤의 창작 시기에서 중기의 작품으로 구분되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그다지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니어서 교향곡 제3번이나 제5번과 비교한다면 연주 횟수나 인지도 면에서 부족한 대접을 받고 있다. 불멸의 교향곡을 9개나 작곡한 베토벤이지만 그의 교향곡들도 공연장에서는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불멸의 교향곡을 9개나 작곡한 베토벤이지만 그의 교향곡들은 공연장에서 서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사진 flickr]

루트비히 판 베토벤. 불멸의 교향곡을 9개나 작곡한 베토벤이지만 그의 교향곡들은 공연장에서 서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사진 flickr]

그렇지만 여러 음악가와 학자들은 교향곡 제4번의 찬란한 모습에 주목해 왔다. 그런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예술가가 바로 슈만이었다. 작곡가 슈만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을 자신만의 은유적 표현으로 이렇게 묘사했다.

“이 작품은 두 명의 북구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의 미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명의 거인은 교향곡 제3번 ‘영웅’과 교향곡 제5번 ‘운명’이다. ‘그리스’라는 표현은 이 작품이 지닌 고전적인 특징, 혹은 고대 그리스 문화로 대변되는 우아한 성격을 얘기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이 작품을 ‘미인’이라고 말한 것은 작품 속에 여성적인 면모가 배여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슈만이 얘기한 이 그리스의 미인은 1악장에서부터 상당히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악보에 표시된 조성 기호는 B플랫 장조이지만 진작 음악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B플랫 단조로 시작된다. 베토벤은 신비로운 서두 부분에서 상당히 과감한 전조를 감행하면서 자신의 예술성을 과시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 호쾌한 팀파니와 트럼펫이 가세하면서 1악장의 본 모습을 드러낸다.

로베르트 슈만. 슈만은 베토벤 교향곡 제4번의 찬란한 모습에 주목한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로베르트 슈만. 슈만은 베토벤 교향곡 제4번의 찬란한 모습에 주목한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이 작품은 1807년 3월에 ‘피아노 협주곡 제4번’과 함께 초연됐다. 아마도 당시의 청중은 1악장의 시작 부분을 들으면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이 작품에 대해 작곡가가 프란츠 폰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취향을 배려해 구상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오퍼스도르프 공작은 이 작품의 탄생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오퍼스도르프 공작은 베토벤의 후원자인 리히노프스키 공작의 친척이었다. 베토벤과 오퍼스도르프 공작은 리히노프스키 공작의 여름 별장에 머물렀을 때 만났다. 오퍼스도르프 공작은 베토벤에게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해달라고 부탁했고 베토벤은 이 작품을 완성해 오퍼스도르프 공작에게 헌정했다. 교향곡의 헌사에는 ‘실레시의 귀족 프란츠 폰 오퍼스도르프 백작에게’라고 적혀 있다.

이 작품은 교향곡 제3번 ‘영웅’이 발표되고 나서 3년이 지나 완성됐다. 연주 시간은 교향곡 제3번보다 축소된 모습을 보인다. 19세기 말의 음악학자 조지 그로브는 이 교향곡을 ‘심각하고 당당하면서도 유쾌하며 꾸미지 않은 것 같은 곡’이라고 표현했다. 조지 그로브의 이 말은 이 교향곡에 대한 뛰어난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뜻밖의 반전과 활력을 느끼게 하는 교향곡 제4번은 베토벤 음악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조지 그로브의 표현대로 ‘심각하고 당당하면서도 유쾌하며 꾸미지 않은 것 같은 곡’으로 세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영웅’이나 ‘운명’ 같은 제목을 붙인다면 우리는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우리 각자가 이 작품에 멋진 제목을 하나씩 붙여보는 것은 어떨지.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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