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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정부 책임’ 세계 첫 판결, 네덜란드 정치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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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5년 10월 9일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고 승소한 뒤 기뻐하는 우르헨다(Urgenda) 재단 변호사들과 지지자들.[AP=연합뉴스]

2015년 10월 9일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고 승소한 뒤 기뻐하는 우르헨다(Urgenda) 재단 변호사들과 지지자들.[AP=연합뉴스]

“기후변화가 국민의 생명과 복지에 미칠 위협을 고려하면 네덜란드 정부는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의무가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네덜란드 대법원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감축하라”고 판결했다.

기후변화 소송 첫 승소한 베르켈 변호사 인터뷰

지난 2013년 환경단체 우르헨다(Urgenda) 재단과 시민 886명이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제기한 민사소송의 최종 결론이다. 전 세계에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법적으로 물은 첫 판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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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 정부 책임이자 의무" 세계 첫 판결

지난 13일 성동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네덜란드 우르헨다 재단의 데니스 반 베르켈(Dennis van Berkel) 변호사. 김정연 기자

지난 13일 성동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네덜란드 우르헨다 재단의 데니스 반 베르켈(Dennis van Berkel) 변호사. 김정연 기자

이 소송을 이끈 우르헨다 재단의 데니스 반 베르켈 변호사를 지난 13일 만났다. 그는 "기후변화를 그대로 방치하면 국민의 기본 권리를 해치는 위협이 된다는 상식을 담은 판결"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대법원의 판결은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인 1000여건의 소송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기후행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기후소송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12월 2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대법원에서 '우르헨다 소송'이 진행 중인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대법원에서 '우르헨다 소송'이 진행 중인 모습. [EPA=연합뉴스]

‘우르헨다 소송’으로 알려진 이 소송은 지난 2013년 시작돼 2015년 1심, 2018년 2심 모두 “2020년까지 1990년 배출량의 25%를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해마다 기후변화 협상 테이블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고 밝힌 게 그대로 증거가 됐다. 베르켈 변호사는 "정부가 해마다 보고서에 '기후변화는 위험하고, 뭔가 행동이 필요하다'고 썼고, 행동하는 게 정부 책임인 것도 알고 있었는데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베르켈 변호사는 “2020년까지 25% 감축은 물론 부족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하한선을 확실히 그은 거라 의미가 크다”며 “최소한 이만큼 줄여야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한 것이라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2세 아이부터 70세 노인까지 소송 참여 

지난해 12월 20일 '우르헨다 소송' 판결을 기다리며 네덜란드 환경운동가들이 대법원 앞에 서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0일 '우르헨다 소송' 판결을 기다리며 네덜란드 환경운동가들이 대법원 앞에 서 있다. [AP=연합뉴스]

소송에 참여한 시민 중 최연소는 2세, 최고령은 70세가 넘는다. 베르켈 변호사는 "젊은 세대가 분명히 기후변화에 대해서 더 우려가 크다"면서도 며 "국회 앞에선 매주 목요일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집회를 여는 'Grandparents for Climate'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단체가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에선 모든 세대가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베르켈 변호사가 속한 우르헨다(Urgenda) 그룹은 '시급한(Urgent)', ‘의제(Agenda)'를 합친 말이다. 이들은 현재 정부에 석탄 화력발전 감축, 노후주택 에너지 개선 등을 포함해 55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논의 중이다. 계획 중에는 현재 4기 남은 석탄 화력발전소 중 3기를 올해 안에 닫는 것도 포함돼있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판결이 정치를 바꿨다

지난해 10월 12일 '멸종 반란' 시위대가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길을 막고 행진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2일 '멸종 반란' 시위대가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길을 막고 행진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6년이 넘는 법정 싸움 끝에 승소했지만, 베르켈 변호사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순간은 대법원 판결이 아니라 2015년 1심 판결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질 거다’라고 했는데 이겼다.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치는데, 손이 떨릴 정도였다”며 “소송에 참여한 시민들이 모든 법정을 꽉 채우고 앉아서 판결을 들었는데, 다들 일어나서 울고 환호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간 네덜란드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와 관련해 ‘다 잘 되고 있다, 걱정할 것 없다’고 국민에게 말해왔는데, 법원이 ‘정부도, 의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 격”이라며 “1심 판결이 난 뒤 사람들이 ‘정부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하며 놀랐고,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활동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1심 판결이 정치의 지형을 바꿨다. 현재 네덜란드에선 ‘기후변화’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슈”라고 덧붙였다.

"한국 이산화탄소 훨씬 더 줄여야"

우리나라는 최근 '2050 저탄소 사회비전포럼'이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안에서 '205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2017년 대비 최소 40%, 최대 75% 감축'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베르켈 변호사는 “한국도 훨씬 더 줄여야 한다. UN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1.5℃’ 목표(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1.5도까지만 상승하도록 억제하는 것)를 맞추려면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 0, ‘넷 제로(Net Zero)'를 달성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넷 제로 하겠다.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에’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알고 있지만, 지금은 국민 보호 의무를 안 하는 것’과 같다”며 “행동 없이 말뿐인 구호는 소용없다”고 꼬집었다.

베르켈 변호사는 지난해 4월에 이어 한국의 청소년기후소송단을 또 만난 뒤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사람들이 '안된다, 너무 어리다'라고 할 텐데, 여러분이 하는 일이 맞는 일이고 여러분의 권리다"라고 말할 거라며 "그들은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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