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처럼 빨리 전염되면 좋은 것들

중앙일보

입력 2020.02.17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8)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생활까지 바뀌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고, 엘리베이터 버튼도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는다. 이 답답하고 불편한 시간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얼마 전엔 제주도에도 확진자가 다녀갔다. 그 소식에 도민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가 다닌 경로를 따라 소독하고 가게는 줄줄이 문을 닫았다. 어르신이나 아이가 있는 집은 더 몸을 사리며 긴장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은지도 아침마다 마스크를 쓴다. 아주 당연하게 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집에 간다. 친구들도 하얀 마스크, 검은 마스크, 캐릭터 마스크를 쓰고 등원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깔깔대며 논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생활까지 바뀌었다. 은지네 어린이집에선 특별프로그램을 중단했고, 어진이의 대학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됐다. 사진은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아이들. [연합뉴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생활까지 바뀌었다. 은지네 어린이집에선 특별프로그램을 중단했고, 어진이의 대학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됐다. 사진은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아이들. [연합뉴스]

은지네 어린이집에선 특별프로그램도 중단했다. 매주 금요일 날 체육 선생님과 뛰어노는 시간은 은지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데, 그것도 잠정적으로 쉬고 있는 상태다. 은지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당하는, 부당한 처우다.

둘째 어진이는 손꼽아 기다리던 대학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됐다. 자연재해 같은 이 막막함은 언제쯤 끝이 날까. 꽃 피는 봄이면 좀 나아지려나.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도 못 하는 낯선 일상이어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도 마스크가 필요해 사려고 했더니 평소에 쓰던 마스크는 품절이었다. 살 수 있는 건 배기필터가 달린 마스크였는데 두 개에 3만원이라고 했다. 제주도는 5500원의 배송료까지 추가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었다.

“곰돌아, 몰랑아!”
은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형들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마스크를 벗고 뽀득뽀득 손을 씻었다. 손 씻기도 은지에겐 당연한 일이 됐다. 그런 모습이 짠해 보이기도 하고,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은지는 인형들을 안아주고, 눕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놀았다. 내가 은지에게 하듯이 인형들에게 칭찬도 하고, 훈계도 하면서 한동안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더니 급하게 나를 불렀다.

“엄마, 엄마, 이것 보세요!”
깜짝 놀라 달려갔더니 은지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 인형들을 가리켰다. 어머나, 인형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순간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은지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마스크를 쓴 세상일까?

“은지야, 밥 먹자! 언니도 밥 먹으라고 해!”
저녁을 준비하면서 은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은지는 어진이 방문을 두드리면서 크게 소리쳤다.

“언니! 밥 먹어.”
방에서 뭘 하는지, 어진이는 문도 열어주지 않고 대꾸했다.

“나 배 안 고파. 안 먹을래.”
그때, 은지가 묘하게 얼굴을 씰룩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고, 그러다 저녁에 또 배고프다 하려고?”

뜨악,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내가 했던 말이다. 어쩜, 아이들은 안 배웠으면 하는 건 더 빨리 배우는지 모르겠다. 내 말이 은지 입을 통해 나오는 걸 보고, 은지에게 내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은지가 그린 그림. [사진 배은희]

은지가 그린 그림. [사진 배은희]

참 이상하다. 왜 안 좋은 건 빨리 전염될까? 이왕이면 좋은 것들이 빨리 전염되면 서로 좋을 텐데 말이다. 선행이나 배려, 기다림, 양보 같은 것들이 바이러스처럼 급속도로 전염될 순 없을까?

내가 위탁부모라서 그런지, ‘가정위탁제도’ 같은 좋은 제도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염됐으면 좋겠다. 같이 있기만 해도 2차, 3차 전염돼 위탁가족이 아주 평범해 보이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가정위탁 포스터. [사진 꿈날개 공식 블로그]

가정위탁 포스터. [사진 꿈날개 공식 블로그]

지금도 위탁부모는 낯선 시선과 오해 때문에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위탁가족이라고 밝히는 순간 편견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것은 늘 차별을 수반하는 것 같다.

가정위탁제도가 시행 된 지 17년째다. 입양은 많이들 알고 있는데 가정위탁은 여전히 생소하다. 위탁부모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쉬쉬하고 지낸다. 왜 위탁부모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위탁부모로 나설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기는,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하고 빠르게 가정위탁제도가 전염되길. 위탁가족이 평범해 보이는 날이 오길….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다. ‘전염돼라, 빨리 전염돼라!’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