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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세운 윤동주 시비…문학은 그렇게 국가를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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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46)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2월 16일은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 윤동주의 서거 75주기다. 주옥같은 시어로 조국 사랑을 노래했던 청년 윤동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지난해 봄, 그 짧았던 삶의 마지막 여정을 만나러 갔다.


시인 윤동주가 동무들과 마지막 소풍을 간 장소로 알려진 아마가세 흔들다리.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시인 윤동주가 동무들과 마지막 소풍을 간 장소로 알려진 아마가세 흔들다리.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시인의 마지막 소풍길

일본 교토에서 멀지 않은 시골 마을 우지(宇治), 녹차의 마을로 알려진 우지의 봄날은 더없이 화사했다. 푸릇푸릇한 잎들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봄꽃은 아찔한 자태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녹차마을답게 쌉쌀하고도 상큼한 향기도 온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1943년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시인은 방학 중 귀국을 앞두고 친구들과 소풍을 가게 되었다. 그 마지막 소풍 길로 알려진 장소가 바로 우지시의 아마가세 구름다리다. 여행자가 붐비는 기차역과 중심지에선 조금 떨어져 있다. 차를 타고 얼마를 달렸을까? 간혹 신문이나 방송프로(선을 넘는 녀석들)를 통해 우리에게 낯익은 그 다리가 나타났다. 시인이 생전 마지막 사진을 찍은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아마가세 쓰리바시’라 불리는 구름다리다.

사실 그곳은 소풍이라는 즐거운 단어가 그다지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고 삐끄덕대는 낡은 다리 앞에는 잎을 떨쳐낸 고목이 음산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어쩌면 젊은 시인의 눈엔 조국의 암울한 현실과 겹쳐졌을지도 모를 풍경이었다. 그는 이 소풍길이 마지막임을 알았을까? 전해지는 말로는 이 다리 위에서 조국 방향을 바라보며 노래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국어로 시를 쓰고 민족의식 고양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윤동주의 마지막 소풍 길로 알려진 우지시의 아마가세쯔리바시. 2019.04. [사진 홍미옥]

윤동주의 마지막 소풍 길로 알려진 우지시의 아마가세쯔리바시. 2019.04. [사진 홍미옥]

1943년 귀국을 앞두고 소풍에 나선 시인의 생전 마지막 모습, 사진은 1995년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동행 친구의 앨범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1943년 귀국을 앞두고 소풍에 나선 시인의 생전 마지막 모습, 사진은 1995년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동행 친구의 앨범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기억과 화해의 시비

그곳에서 멀지 않은 우지강가엔 시인을 기리는 시비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비는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 의해 투옥되고 희생된 그를 시민들이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말이겠다. 단지 그의 시를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인류애? 고마운 마음 한편에 의아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비 건립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당연히 정부의 허가도 쉽지 않았고 장소를 물색하는 일도 힘들었다고 한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시비는 12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시인의 탄생 100년을 맞아 세워진 기념 시비다.

우지 천변의 기슭은 댐 공사가 한창이었고 인적은 드물었다. 시비는 자칫 지나칠 수도 있을 구석진 장소에 서 있었다. 외롭고 쓸쓸하게. 하지만 아름다운 시를 품고서! 기념 시비는 ‘기억과 화해의 비’라고 명칭 되었다. 그 비에는 1941년 발표한 ‘새로운 길’이 한글과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교토부 우지시 아마가세천변에는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시비가 있다. '기억과 화해의 비'라고 불리는 시비는 일본의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건립하였다. 12019.04. [사진 홍미옥]

교토부 우지시 아마가세천변에는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시비가 있다. '기억과 화해의 비'라고 불리는 시비는 일본의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건립하였다. 12019.04. [사진 홍미옥]

대학캠퍼스와 하숙집에도 시인의 향기는 남아서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 정지용 시인은 생전에 윤동주가 제일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2019.04. [사진 홍미옥]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 정지용 시인은 생전에 윤동주가 제일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2019.04. [사진 홍미옥]

사진 속 장소는 교토 도시샤 대학이다. 이곳은 시인이 투옥되기 전까지 다녔던 대학교다. 조용하고 정갈한 교정에는 기념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시비는 그의 시를 사랑하는 남북의 학생들이 힘을 모아 공동으로 설립하였다. 바로 옆엔 시인이 존경하고 좋아했던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두 명의 한국 시인의 시비 위엔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 휘날리고 있었으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본인들이 침략했던 나라의 시인을 사랑한다는 게 나로선 이해가 잘 안 되었다. 하지만 문학은, 시는 그렇게 인종. 국가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는 게 분명하다. 시인 윤동주의 흔적이 있는 곳은 여기 말고 또 있다.

교토에서 시인이 생전 마지막에 머물던 하숙집터에도 시비가 설립되었다. 2019.04. [사진 홍미옥]

교토에서 시인이 생전 마지막에 머물던 하숙집터에도 시비가 설립되었다. 2019.04. [사진 홍미옥]

그가 머물던 하숙집터에 세워진 시비가 그것이다. 지금은 교토조형대학 예술부 캠퍼스로 하숙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한눈에도 예술대학이다 싶게 개성 넘치는 외양의 건물이다. 길 건너엔 명랑하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유치원이 있고 시비는 길가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시비명은 윤동주 유혼지비(尹東柱留魂之碑). 간밤에 내린 비로 시비는 말끔했고 하늘은 청명했다. 시인은 매일 이 길을 지나 학교에 가곤 했을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해야겠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 사랑받는 시인의 흔적은 단단한 대리석 위에 아름다운 시어로 남아있다. 시비엔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그렇게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은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그의 청춘처럼 빛나고 있었다. 시인의 서거 75주기를 맞아 다가오는 3월에는 윤동주 시인이 머물던 연세대학교 핀슨관이 ‘윤동주 기념관’으로 탈바꿈해 우리 곁에 성큼 더 가까워질 예정이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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