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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한국 기업 괴롭힌 엘리엇, 이번엔 손정의를 물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17 06:01

업데이트 2020.02.17 14:59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AFP=뉴스1]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AFP=뉴스1]

“엘리엇과 나는 한 배를 탔다. 그러나 결정은 내가 한다.”

마사요시 손, 손정의(63)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지난해 10~12월 실적발표 회견에서다. 글로벌 최대 기술투자 펀드를 보유한 이 회사가 3개월 간 거둔 영업이익은 26억엔(약 278억원), 1년 전 실적의 1%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때 사납기로 유명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마저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팩플]

무슨 일이야?

-지난 6일, 엘리엇이 25억 달러(약 2조 9600억 원)를 투자해 소프트뱅크그룹 지분 3%를 확보했다는 보도(월스트리트저널)가 나왔다.
-엘리엇은 손 회장에게 3가지를 요구했다.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 비전펀드 투명성 강화.
-실적발표에서 손 회장은 “2주 전쯤 엘리엇과 만나 얘기했다”고 확인했다.

뭐라고 말했는데?

-이날 손 회장은 “최대주주인 나야말로 우리 회사의 주가를 올리고 싶은 사람”이라며 "현재 우리 주가는 52%쯤 저평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분 22%를 보유했다.
-하지만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할(기업가치를 올릴) 지는 경영진인 우리한테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날 손 회장은 “18년 간 사외이사였던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이 물러난다”고 밝혔다. 일본 금융당국의 사외이사 교체 권유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야나이 회장은 손 회장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엘리엇은 누구?

-1977년 변호사 출신 폴 엘리엇 싱어(76)가 뉴욕에서 설립한 행동주의 투자펀드, 지난해말 기준 운용 자산은 402억 달러.
-저평가된 기업과 부실 정부(국채)에 투자해 이들을 쥐고 흔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선 삼성과 현대기아차 그룹이 엘리엇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경영권 승계 문제가 남은 두 그룹은 각각 2015년, 2018년 엘리엇을 투자자로 맞이했다. 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는 엘리엇에 대항하기 위해 기업들은 ‘국민 정서’에 호소했다.
-엘리엇은 한국 정부와 현재 투자자-국가간(ISD) 소송 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부당하게 개입하는 바람에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소송 규모는 7억7000만 달러(약 9100억원)다.

지금 이게 왜 중요해?

-비전을 기준으로 투자하는 손 회장이 주주 이익을 주장하는 엘리엇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볼 기회다. 엘리엇을 대하는 한국 대기업들과 비교도 관전 포인트.
-비전펀드 1호는 970억 달러(114조7500억원) 규모로 2017년 출범했다. 비전펀드 측은 이 돈으로 88개 스타트업에 왕성하게 투자했다. 우버, 위워크, 슬랙 등 미국 유니콘들과 동남아 그렙, 인도 오요 등 각 지역 시장 1등들에 수조원씩 투입됐다.
-비전펀드의 투자는 환호와 의심을 동시에 샀다. 엘리엇은 시장의 의심을 파고 들었다. 소프트뱅크그룹 주주 이익에 반하는 투자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 엘리엇은 잘나가던 기업이 흔들릴 때 게 기습하는 특징이 있다.
-비전펀드는 한국 이커머스 기업 쿠팡에도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15년엔 소프트뱅크가 10억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쿠팡의 최대주주도 비전펀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지난 12일 실적발표에서 이 그림을 장표에 띄웠다. 왼쪽을 보면 오리, 오른쪽을 보면 토끼로 보인다. 그는 "왼쪽은 실적(영업이익), 오른쪽은 기업가치"라며 "같은 그림도 어느 쪽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실적보다 기업가치가 그 기업의 미래를 잘 설명하는 지표이니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지난 12일 실적발표에서 이 그림을 장표에 띄웠다. 왼쪽을 보면 오리, 오른쪽을 보면 토끼로 보인다. 그는 "왼쪽은 실적(영업이익), 오른쪽은 기업가치"라며 "같은 그림도 어느 쪽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실적보다 기업가치가 그 기업의 미래를 잘 설명하는 지표이니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전에 무슨 일 있었어?

-지난해 10월 실적발표에서 손 회장은 "너덜너덜해졌다"고 말했다. 분기(7~9월) 영업적자가 7044억엔(7조5800억원). 우버의 실적 부진, 위워크의 방만한 경영 등으로 비전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다. '60세 은퇴 계획'을 물리고 비전펀드를 만들었던 손 회장은 '거품 투자' 논란에 시달렸다.
-비전펀드 측은 지난해 7월 2호 출범계획을 발표했다. 1호보다 더 큰 1080억 달러를 결성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대형 투자자 참여 소식은 없다. 1호 때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거의 절반을 출자했다.

앞으로는?

-손 회장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간의 일을 돌아보면서 좀 더 작은 규모의 '브릿지펀드를 조성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험투자를 멈출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는 이날도 “워렌 버핏이 스마트한 투자자라면, 나는 모험적인 투자자다. 나는 정보혁명의 리더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적 발표 이후 엘리엇은 아직 조용하다. 자사주 매입 등 이익 실현을 위한 요구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사주를 매입하라는 요구도 가능하다.

-알리바바 지분(26%) 매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손 회장은 "알리바바는 여전히 성장하는 회사"라며 "그 주식을 서둘러 팔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참고할 점은?

-우버는 지난 6일 "당초 예상보다 이른 올해 안에 흑자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4분기엔 11억 달러 순손실(1조3000억원)을 냈다.
-미국 연방법원이 지난 11일 소프트뱅크그룹이 지분 85%를 가진 통신사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을 승인했다. 일부 주 법무무장관이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서 스프린트·T모바일이 이긴 것. 손 회장의 오랜 골치거리가 해결됐다. 합병 마무리후 스프린트가 소프트뱅크그룹에서 제외되면, 그룹 부채도 준다.
-손정의 회장의 실적발표 제목은 "조류가 바뀌고 있다(Tide is turning)"였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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