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네이버가 키운 '고래의 꿈'

중앙일보

입력 2020.02.16 06:00

업데이트 2020.04.18 16:21

국내 점유율 5% 넘은 웨일 브라우저 

혹등고래는 차가운 북극바다에서도 종종 출몰한다. [AP=연합]

혹등고래는 차가운 북극바다에서도 종종 출몰한다. [AP=연합]

네이버가 키운 ‘고래’(whale)는 대양(大洋)으로 나갈 수 있을까. 2017년 10월 네이버가 출시한 브라우저 '웨일'은 느리지만 조금씩 국내 시장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웨일 브라우저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 1월 말 기준 5.98%다. 1년 전만 해도 0.62%였다.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크롬(55.7%)과 뒤를 잇는 삼성인터넷(12.1%)·애플 사파리(12.09%)가 운영체제(OS)나 디바이스(기기)를 보유한 회사의 브라우저인 점을 감안하면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전 세계 기준으로 보면 점유율은 여전히 0.1% 이하다.

 네이버는 왜 강자가 즐비한 ‘레드오션’인 브라우저 시장에 진출했을까. 국내에서 3000만 명 이상 매일 방문하는 포털 '네이버'와 아시아 대표 모바일 메신저 '라인'처럼 웨일도 키울 수 있을까. 네이버의 도전을 분석하기 위해 지난 2주간 웨일 브라우저를 사용해봤다. 김효 네이버 웨일 책임리더 등을 만나 웨일에 담긴 네이버의 전략을 분석했다.

한국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국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크롬과 모양은 비슷, ‘깨알’ 기능은 차이

고래 모양의 웨일 브라우저 아이콘을 누르자 풍경 사진과 함께 네이버 검색창, 날짜와 시간이 표시됐다. 첫인상은 크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롬과 동일한 웹브라우저 제작용 오픈소스인 크로미엄(Chromium) 기반으로 만들어져서다.

하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조금 다르다. 특히 이런 것까지 브라우저로 할 수 있나 싶은 ‘깨알’ 기능들이 많았다. 가장 유용했던 건 화면을 분할해 쓰는 ‘스페이스’ 기능(PC 기준)이다. 브라우저의 창을 두 개로 나눠 한쪽에서 클릭하면 옆 화면에 새 창이 뜨는 식이다. 유튜브나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검색 후 바로 내용을 확인하는데 편리했다.

웨일브라우저의 분할하면 기능. 왼쪽 브라우저를 클릭하면 오른쪽 브라우저에서 해당 콘텐트가 열린다. [사진 웨일브라저 캡처]

웨일브라우저의 분할하면 기능. 왼쪽 브라우저를 클릭하면 오른쪽 브라우저에서 해당 콘텐트가 열린다. [사진 웨일브라저 캡처]

‘모바일 창에서 보기’ 기능도 쓸 만했다. 모바일용으로 제작된 페이지를 PC에서 열면 보기 불편했는데 이 기능을 사용하면 딱 스마트폰 크기의 창으로 해당 페이지가 열렸다. 언제 어떤 페이지라도 바로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는 스크랩북, 외국어를 번역해주는 파파고, 화면캡처 기능도 브라우저 옆 메뉴에 배치돼 자주 사용하게 됐다.

웹서비스 담는 그릇 브라우저

브라우저는 웹서비스라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아무리 반짝거리는 좋은 페이지를 만들어도 브라우저가 지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김효 책임리더는  "지금까지 잘 쓰던 기능도 브라우저가 갑자기 지원을 중단하면 웹서비스도 그에 맞춰 다 바꾸거나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며 "그만큼 중요한게 브라우저"라고 말했다.

네이버 웨일브라우저 김효 리더. [사진 네이버]

네이버 웨일브라우저 김효 리더. [사진 네이버]

김 책임리더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많이 쓰던 시절 문제가 된 액티브엑스(ActiveX)나 공인인증서도 브라우저의 한계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액티브 엑스는 IE 브라우저의 기능을 확장하는 플러그인 프로그램이지만 컴퓨터를 느리게 하고 악성코드의 온상이 되는 등 문제가 많아 정부 차원에서 퇴출한 프로그램이다. 그는 “브라우저 개발사에 개발자들이 뭔가 개선점을 요구해도 반영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높은 보안수준을 원하는 정부 정책에 맞추기 위해 개발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액티브엑스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액티브엑스 같은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무리 우리 사정에 맞춰 바꿔달라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 외산 브라우저의 한계를 명확히 느꼈기 때문에 (네이버도 브라우저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레드오션 고래는 어떻게 헤쳐나갈까

웨일브라우 다운로드 및 설치 화면. [사진 웨일브라우저 캡처]

웨일브라우 다운로드 및 설치 화면. [사진 웨일브라우저 캡처]

브라우저 시장은 전형적인 레드오션이다. 초기 20여 년간은 윈도 운영체제(OS)를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MS) IE 독주체제였다. 2010년대 이후 구글의 크롬이 모바일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패권을 잡았다.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은 “브라우저 특성을 잘 알수록 이를 기반으로 한 웹서비스도 잘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플랫폼"이라며 “하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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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와 함께 만드는 오픈 브라우저

 네이버는 레드오션을 사용자 참여 최적화, 공격적 협업을 통해 돌파하려고 한다. 브라우저를 만든 초기부터 운영해온 '웨일 포럼'이 대표적인 예다. 네이버는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이용자들에게 ‘연구원’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모든 게시글에 댓글을 달고 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민간 연구원 2만 7000여명이 올린 글 수는 5만여개다. 사용자 집에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준 경우도 수백건에 달한다.

김주형 웨일 팀리더는 “기획자 혼자 100개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수만 명이 하나씩 내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며 “‘위키피디아’처럼 사용자와 긴밀하게 협업해서 만들어 가는 브라우저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실제 민간 연구원이 낸 아이디어 중 일부는 서비스에 반영되기도 한다. 즐겨찾기 아이콘을 색깔만으로 구분해 보여주게 설정하는 기능은 민간 연구원의 제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웨일 사용자인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는 “웨일만 가능한 서비스를 많이 만들고 이를 다른 브라우저와 병행시켜 점유율을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웨일브라우저 사이드바 기능. 스마트폰 화면 크기로 웹페이지를 연다.[사진 네이버]

네이버 웨일브라우저 사이드바 기능. 스마트폰 화면 크기로 웹페이지를 연다.[사진 네이버]

최근에는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IPCA)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 1만여개 PC방에 네이버 웨일을 기본 브라우저로 채택하는 내용이다. 지난해에는 LG전자 V50, 퀄컴의 스냅드래곤 모바일 플랫폼에 웨일을 최적화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김효 리더는 "올해부턴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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