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살아보자, 패키지보다 자유여행, 한 달 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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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64)

슬로우라이프는 느리게 사는 삶을 말한다. 이 개념은 현대인의 삶이 지나치게 빨라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해서 생겼다. 대체로 도시의 삶들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농촌이나 어촌에서 사는 삶이 조금은 느린 슬로우라이프라 할 수 있다. 굳이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살아야 하느냐. 도대체 성공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지치게 하는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한 박자 더 천천히 산다는 것이 조금 더 불편하게 산다는 의미도 있다. 사실 조금 천천히 살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편이라는 것은 현대인의 조바심이 아닐까 싶다. 새로 나온 신상품을 늦게 가져도 삶에 지장이 없고, 뉴스를 좀 늦게 알아도 무리가 없는데도 조금만 늦으면 불편해한다. 조바심이 나면서 불안해한다.

굳이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살아야 하느냐. 도대체 성공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지치게 하는걸까라는 의문에서 슬로우라이프가 시작이 되었고 조명을 받고 있다. [사진 Pixabay]

굳이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살아야 하느냐. 도대체 성공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지치게 하는걸까라는 의문에서 슬로우라이프가 시작이 되었고 조명을 받고 있다. [사진 Pixabay]

몇 년 전부터는 슬로우푸드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는 패스트푸드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패스트푸드를 반대하기 위해 시작됐다.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가 건강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 김치나 장류가 몸에 좋은 이유는 우리 음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발효·숙성시켜서 정성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김치라도 집이 아닌 공장에서 수입 배추와 수입 고춧가루로 속성으로 발효시킨 건 슬로우푸드라고 안 한다.

제조된 간편식이 주목받는 와중에 원산지와 생산자가 표시된 식자재를 직거래로 찾는 소비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음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까닭이다. 음식은 어디서 무엇으로 만들었냐가 중요하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도 중요하다. 패스트푸드 같은 식품의 식재료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대량생산을 하며, 유전자 조작이나 식품 위생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입산을 쓰는 건 당연지사다. 결국 농민도 제값을 못 받고 소비자도 좋지 않은 식재료를 먹게 되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윈윈하려면 제값 받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식재료가 필요하다. 이게 슬로우푸드의 개념이다. 슬로우푸드는 낭만이 아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따져야 하는 피곤한 일이다.

몇 년전부터 건강과 관련해서 패스트푸드에 반대되는 슬로우푸드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어디서 누가 무엇을 가지고 만들었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 Pixabay]

몇 년전부터 건강과 관련해서 패스트푸드에 반대되는 슬로우푸드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어디서 누가 무엇을 가지고 만들었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이제 의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100세 시대가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인생을 좀 더 느긋하고 느리게, 누리면서 사는 것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슬로우투어다. 여행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패키지여행으로 다녔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를 가더라도 느긋하게 즐기고, 생각하는 여행이 늘었다. 여행 패턴이 체류형으로 바뀐 것이다. 외국에 가서 하루에 하나씩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 며칠씩 지내면서 즐기고 있다. 요즈음 동남아 도시를 한 달 살기로 가는 사람들이 많단다.

국내에서도 슬로우투어가 많아지고 있다. 골목길 투어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골목길을 다니고 오래된 가게를 방문한다. 강릉에 커피 마시러 가는 여행이 그렇고, 동해 묵호항의 논골담길이나 통영의 동피랑 길을 걷는 게 슬로우투어다. 리조트보다는 민박을 한다. 장을 보더라도 마을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 한다. 또 마음 맞는 사람끼리 버스를 빌려서 천천히 가고 싶은 곳을 가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공정 여행과 비슷하다. 관광 대상지를 확실하게 알아가면서 즐기는 것이 슬로우투어다.

인증샷을 찍기 위해 여러 도시를 돌아 다니던 여행도 이제는 한 도시에서 며칠씩 느긋하게 즐기고, 생각하는 여행이 늘어났다. 요즘 동남아 도시를 한달살이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Pixabay]

인증샷을 찍기 위해 여러 도시를 돌아 다니던 여행도 이제는 한 도시에서 며칠씩 느긋하게 즐기고, 생각하는 여행이 늘어났다. 요즘 동남아 도시를 한달살이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Pixabay]

나 역시 어쩌다 슬로우라이프에 꽂혀 농촌과 도시를 오갈 때나 해외에 가더라도 느리게 사는 마을을 많이 간다. 그중 기억나는 곳은 2019년 2월에 갔던 바이칼호수의 후지르마을이다. 그곳은 너무 추워서 패스트하게 살 수가 없다. 기온이 영하 30도에 육박하니 느리게 있을 수밖에 없다. 그곳에 있던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뛰어 본 적이 없고 뛰는 사람도 못 봤다. 하긴 서울시만 한 섬에 달랑 1700명이 모여 사니 경쟁이란 게 있겠는가. 서로 돕고 살면서 추위를 이겨 내는 게 삶의 방식이니 말이다.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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