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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20학번 새내기 트랜스젠더 "당장 화장실부터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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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같은 고민을 했던 트랜스젠더인데, 저만 대학에 가니까 죄책감도 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답답했죠."

대학 입학을 포기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에 대해 다음달 대학 입학을 앞둔 A(18)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 트랜스젠더인 A씨는 수도권 소재 대학에 합격해 이달 초 등록을 마쳤습니다.

<제23화> 트랜스젠더 #다음달 입학하는 A씨 인터뷰 #"자식 아니다"던 목사 아버지 생각 바꿔 #대학 생활 "화장실 문제부터 고민 가득" #"변 하사, 숙대 합격생 덕에 용기 얻어" #꿈은 트랜스 청소년 돕는 사회복지사

변희수 하사, 숙명여대 합격생 등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란이 커졌습니다. 트랜스젠더 군인, 여대 입학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있죠.

11일 밀실팀 기자들이 A씨를 만났습니다. 최근 논란에 대한 트랜스젠더 새내기의 생각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A씨는 인터뷰에서 "변희수 하사나 숙대 합격생의 덕분에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들의 용기 때문에 '우리(트랜스젠더)도 일하고 싶다', '우리도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어떻게 '트랜스여성'인 걸 알게 됐나.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게임, 운동을 즐기는 남학생의 문화가 맞지 않아 내가 게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트랜스여성'으로 날 설명하니 기분이 달랐다. 옷에 비유하자면 입고 싶었던 옷,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아버지가 목사다. 평소 성소수자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던 분인데, 막상 '커밍아웃'하니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때리기도 하셨고 몸싸움도 했다. 2년쯤 뒤에야 생각을 바꾸시더라. '네가 참 힘들었겠다''완전한 여성으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트랜스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돕겠다'고 하셨다."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은 받았나.
"아직이다. 다음달 처음으로 정신과에 방문한다. 정신과에서 F64.0로 불리는 성전환증 진단을 받으면 호르몬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호르몬 조치만 받아도 군 면제는 가능하다. 성별 정정, 수술도 고민하고 있다."
대학 동기, 선·후배들을 만났나.
"다행인지 몰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됐다. 당장 숙소문제도 있고, 화장실 사용 문제도 있어 고민했다. 입학 후 여자 화장실을 사용할지, 남자 화장실을 쓸지 모르겠다. 내가 '법적 남성'인 걸 아는 동기가 있다면 남자 화장실을 써야 하고, 아니라면 여자 화장실을 쓸 것 같다."
지난 11일 서소문 중앙일보 건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A씨. 백경민 인턴

지난 11일 서소문 중앙일보 건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A씨. 백경민 인턴

대학 생활에서 걱정되는 점은. 
"고등학교 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다. 교복 입고 지날 때 "쟤는 왜 저렇게 사냐"고 수군거리는 걸 자주 들었다. 수능 시험장에서도 "저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기하자"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그래서 대학 다니는 트랜스젠더 중엔 이런저런 괴롭힘 때문에 자퇴하는 경우도 있다."
트렌스젠더와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한다는 점을 두려워하는 여성도 많다.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는 당연하다.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성이 안심할 수 있겠나. (그들의) 공포를 무시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트랜스젠더를 내쫓는 게 최선의 대안인가? 상식적으로 대화해야 하는데 이익집단으로만 갈라져 자기주장만 한다. 안타깝다."
(트랜스여성의 여대 입학 등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해외에선 트랜스여성이 다른 여성을 성폭행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 사건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어느 집단이든 범죄자는 있기 마련이지 않나. 한국에선 범죄를 저지르면 법적 성별 정정이 어렵다. 지엽적인 해외사례를 한국에 적용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이 여성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주장도 나오던데.
"오히려 트랜스젠더들이 기회를 빼앗긴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학교·학원·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투쟁하고 있다. 누가 누구의 기회를 빼앗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난 11일 서소문 중앙일보 건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A씨. 백경민 인턴

지난 11일 서소문 중앙일보 건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A씨. 백경민 인턴

'트랜스여성이 사회가 만든 여성성을 답습하고, 코르셋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던데.
"여성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오히려 트랜스젠더들은 '여성무리에 끼려면 여성적 표현을 하라'고 강요받기도 한다. 또 우린 전체의 0.3%밖에 안 되는데 우리가 여성성을 강화하겠나. '그냥 화장하고 머리 기르면 여자인 거냐'는 질문도 받는데, 이런 질문의 밑바탕엔 트랜스젠더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이상하게 보는 의식이 깔려있다."
트랜스젠더가 사회적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됐다.
"변희수 하사나 숙대 합격생을 두고 '왜 괜히 시끄럽게 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용기 덕에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기존엔 트랜스젠더를 유흥업소에서 일하거나 자살하는 등 불쌍한 존재로만 여겼다. 이번 계기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가 생존권에서 시민권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우리를 그냥 살게 해달라’고 했지만, 이젠 '우리도 공부하고 싶다', '우리도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지 않았나."
장래 희망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게 꿈이다. 혼란스런 청소년기를 보낸 만큼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들은 대학은커녕 펜을 잡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 부모 등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기도 하는데 아이들 곁에 있어 줄 어른이 되고 싶다."

김지아·최연수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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