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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조작 방송·가짜 뉴스 내보낸 ‘PD수첩’의 후안무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언론의 기본 취재윤리마저 무시한 행위였다. 지난 11일 방송된 MBC ‘PD수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PD수첩’은 서울에 9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한 20대 주부 김모씨를 마치 무주택자인 것처럼 방영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취재 과정에서 김씨가 제작진에게 “인터뷰 전날 소형 아파트 매수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지불했다”고 밝혔으나 정작 방송에선 이와 관련된 내용이 편집·삭제되고 말았다. 방영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김씨로 보이는 사람이 SNS에 “PD님한테 연락이 와서 특정 아파트 매수 부분을 편집할 테니 모자이크 처리하지 말고 방송에 나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 왔다”고 올리면서 조작 논란이 확산됐다.

사건의 파문이 커지자 지난 12일 ‘PD수첩’ 제작진은 “계약 체결 사실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시청자 여러분께 혼란을 끼쳐 드린 점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구차스럽기만 하다. “A씨가 선금만 입금하고 등기가 이전되지 않았고, 계약 파기 등을 우려해 계약 사실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과연 공영방송 MBC의 책임 있는 사과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잘못을 알면서도 취재원이 요청한다면 그대로 보도하는 게 언론의 자세인가. 상식 있는 저널리즘이라면 절대 용납해선 안 될 일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취재원 보호는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아닐 것이다. ‘PD수첩’은 결과적으로 ‘가짜 뉴스’ ‘조작 방송’이 되고 말았다.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행하는 법률용어 ‘미필적 고의’마저 연상된다.

이날 ‘PD수첩’은 수도권 일대의 무주택자와 그들의 고민을 소개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난제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문제를 조명했다. 실제로 요즘 젊은층의 내 집 장만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생애 최초로 주택을 마련한 가구의 평균연령은 2018년 기준 43.3세로, 2008년 40.9세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기획 취지가 방송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오류가 있거나 사실에 어긋난 사례를 반드시 걸러냈어야 했다. 더욱이 ‘PD수첩’은 MBC를 대표하는 시사 프로그램이지 않은가. 조작 방송이란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작자 징계,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번 속은 시청자들을 두 번 우롱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