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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에 곤경 처한 김정은 ‘정면 돌파전’ 나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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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신종 코로나와 남북관계

정전협상이 지지부진하던 1953년 6월. 중공군은 강원도 김화군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모택동은 “정전협정 체결을 미루고 한국군 1만5000명을 살육하라”고 명령했다. 6월 20일 평양에 도착한 펑더화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은 한국군에 씻을 수 없는 패전을 안겨준 뒤 정전협정을 마무리하려 했다.

문재인·김정은·시진핑 곤경 처해 #중국 통한 북한 개별관광 어려워 #북한 달러 고갈로 체제 위기 우려 #한·미 북핵 군사 대비책 마련해야

7월 10일 중공군은 15개 사단을 투입해 국군 6개 사단을 공격했다. 이른바 ‘금성전투’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였다. 전투는 치열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금성전투가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고비였다”고 회고했다. 중국은 정전협정에 반대하는 이승만을 압박할 목적이었지만, 적화통일도 노렸다. 전투 결과는 한국군은 1701명 전사 등 1만4000명의 사상자를, 중공군은 2만7000명 전사 등 6만6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북핵 억지 미국 전술핵

북핵 억지 미국 전술핵

하루에도 200명 이상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안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타격받았다.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로 경제 위기에 내몰린 데 이어 신종 코로나 파장에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다. 문 대통령은 새해부터 북한 개별관광 등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 했지만, 신종 코로나 탓에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를 은폐하며 조기 방역에 실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내부 반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반감이 시진핑 1인 지배체제의 경직성으로 향하고, 인권과 자유의 요구로 확산하면 중국 정치체제는 더욱 불안해진다.

엎어진 데 덮친 꼴이라고 할까. 신종 코로나로 곤경에 처한 이는 문 대통령이다. 그는 올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 재추진과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그 방안으로 제3국(중국)을 통한 북한 개별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북한 철도·도로 개선 등을 모색했다. 그러나 방역에 취약한 북한은 국경을 닫았다. 중국도 신종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재 도시 간 이동을 차단했다. 중국을 활용한 북한 개별관광은 당분간 불가능해졌다.

북핵 억지 미국 전술핵

북핵 억지 미국 전술핵

문 대통령은 또 시진핑의 3월 방한으로 미·북 정상회담을 끌어내려 했지만, 시 주석은 신종 코로나 방역에 코가 석 자다. 시 주석은 6월에나 방한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대선에 바빠진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월 이전에는 김정은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으면 북한 비핵화 협상은 올스톱이다. 대북제재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도 쉽지 않다. 결국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 협상 재추진은 신종 코로나에 녹고 있다. 4·15 총선에도 악재다.

김 위원장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그는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자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 ‘정면 돌파전’을 선택했다.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비핵화에 나서지 않을 입장이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을 이어갈 미국의 동력은 없어지고 있다. 마크 램버트 대북특사를 비롯한 미 NSC·국무부·국방부 대북담당이 지난해 말부터 줄줄이 그만두고 있다. 미국의 대북협상팀은 사실상 해체 위기다. 이젠 김 위원장이 조건 없이 비핵화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소득 없이 핵을 포기할 까닭이 없다.

그래서 북한의 전략은 정면 돌파전이다. 자력갱생하면서 핵·미사일 고도화와 다량 생산으로 미국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엔 경제·군사 위험이 따른다. 먼저 북한 경제는 지난 3년간 유엔과 미국의 제재로 막다른 골목에 있다. 김정은의 달러는 올해 말이나 내년이면 고갈된다고 한다. 북한의 달러 확보 창구는 거의 막혔다. 김 위원장 손에 달러가 마르면 국정 운영이 경색된다. 석유 등 긴요 물자와 중요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북한 장마당의 쌀 가격도 폭등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의 리더십 위기로 돌아간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민생과는 상관없는 마식령 스키장과 삼지연 관광시설, 평양 거리 정비 등에 많은 예산을 써 주민의 비난을 받고 있다. 탈북민에 따르면 북한 주민도 김 위원장에 더는 기대하지 않는단다.

중국 신종코로나의 안보 파장

중국 신종코로나의 안보 파장

둘째는 군사다. 북한 핵·미사일 증강이 당장은 김정은에 위세로 작용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독이다. 북한은 올해 말까지 핵탄두를 최대 100발까지도 확보할 전망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처럼 과도한 핵탄두를 가지면 비핵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내년 초 출범할 미국 새 행정부는 북핵 접근법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식 비핵화 협상보다는 대북 압박에 치중할 것이다. 더 어려워지는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도발하면 미국이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래저래 딜레마다. 안으론 달러 고갈과 주민 반발로 인한 체제 위기에 밖으론 더 강한 대북제재와 군사대치다.

그런데 북한에 가장 만만한 상대가 우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은 어려울 땐 대남 도발이나 위협으로 나왔다. ‘삶은 소대가리’ 등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북한 도발로 남북이 충돌한 뒤엔 협상이 있고, 화해로 가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이제 김 위원장이 강력한 핵무기까지 가진 마당에 우리를 위협하기에 더 유리해졌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위기 탈출 수단으로 올해 도발하면 재래식 국지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초토화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대규모 사이버 공격으로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와 군의 대비 태세다. 북한 도발에 아직은 우리 군 장병들이 조건반사적으로 대응하리라 믿는다. 청와대나 군 수뇌부의 불합리한 자제 지침만 없다면 일선 군인들은 작전계획에 따라 자동 반격할 것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2∼3일이면 전투기와 미사일로 북한 지휘부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핵 위협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엔 대응책이 없다. 미국이 나서야 한다. 북한 핵 억지에 사용 가능한 미국 핵우산은 B61계열 핵폭탄과 저위력 핵탄두(W76-2) 등 전술 핵무기가 핵심이다. B61계열 핵폭탄은 미 공군이 운영 중이다. W76-2는 지난해 말 오하이오급 핵추진 잠수함인 테네시함의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처음 탑재했다. 이 두 가지 전술핵은 북한 지휘부의 지하벙커를 파괴할 수 있다.

이 가운데 B61계열은 전투기에 실어 직접 적진에 침투해 투하한다. 괌이나 오키나와에서 전투기를 발진해 북한 상공에서 투하하는데 3시간 이상 걸린다. 적진 침투 부담도 있다. W76-2는 잠수함에서 발사해 마하 24 속도로 날아간다. 지구 어디서든 30분 이내 타격이 가능하다. 북한 지도부를 일거에 궤멸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한·미는 북핵을 억지할 전술핵 운영을 깊이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 연합작전계획에 반영하고 훈련도 해야 한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다. 다급한 북한은 한국전쟁 때 금성전투처럼 우리를 압박할 것이다. 자칫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군과 정부의 치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