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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장군이 경호실장 됐다면 10·26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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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논어(論語)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니라”라는 말이 나온다. 골프가 인생과 같다고하지만 이 말씀은 바로 골프의 진수를 간파한 것이 아닐까? 골프의 발전적 변진(變進)과정이란 결국 그렇게 몸과 마음에 익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에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이 곁들어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골프는 함께 즐겨주는 동반자가 있어야 비로소 그 가치를 지닐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심한 세월은 동반자를 하나씩 둘씩 예외없이 저승으로 끌어갔다. 미국으로 이민간 노인들의 슬픔은 함께 골프를 치던 사람들이 어느새 소리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노령의 정막과 고독을 이기지 못하여 차라리 귀향(歸鄕)하고 싶다는 푸념을 자주 듣게 된다. 아니 이민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JP 자신의 푸념이기도 하다.

“어언 인생 80이 넘어서니 주위의 친구들이 어느새 유명을 달리하여 먼 저승으로 모두 가 버리고 이제 홀로 남아 있는 듯 외로움을 짙게 느끼게 되는 요즈음이에요. 1961년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는 주체세력으로서의 민주공화당을 함께 조직했던 김성희 박사, 윤천주 박사 모두 벌써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분 다 골프를 누구보다 좋아해서 말년까지 함께 필드에서 미래를 설계하며 의지를 다지고 인간적인 정의와 동지애를 가슴에 새겨서 공유(共有)했던 분들이었건만... 골프는 인생에 즐거움도 주지만 참기 어려운 슬픔도 주는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그려...”

이낙선 전 상공부장관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지난호에 나왔지만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70년대 초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JP는 일과가 끝난 오후 한시가 넘어서 사무실을 나와 이미 약속되었던 대로 이낙선 장관, 윤천주 장관 그리고 구자춘 서울시장등 네사람이 한양 CC에 갔다. 그런데 국무총리 일행이라고해서 여러 앞팀들이 양보해줘서 빨리 7홀까지 갔을때였다. 다음 8홀이 숏 홀인데 7홀과의 경계에 안전을 위한 높은 망(網)이 쳐있으나 밑부분을 사람이 구부리고 드나들수 있게 비어놓았다.
마침 JP가 티샷을 했는데 심한 훅이 나서 그 망쪽으로 볼이 얕게 날아가는 것 아닌가. 마침 8홀쪽에서 누군가가 망아래를 엎드려 나와서 공을 주으려다가 “볼”이라는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오니까 뒤돌아서는 순간 그의 등에 볼이 맞았다. 놀란 총리 경호원이 달려갔는데 웬일인지 볼에 맞은 사람이 힐끗 쳐다보더니 펜스밑으로 구르듯이 빠져나가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라 그와 함께 플레이하던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JP의 OB난 공맞고 도망간 상역국장

JP와 일행은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쫒아갔던 경호원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공에 맞은 사람은 상공부 상역국장이고 다른 세사람은 실업인들” 이라고 했다. 공에 맞고 도망간 이유는 토요일이라지만 일과가 끝나지 않은 시간에 나와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상관인 장관과 총리가 서 있는걸 보자 아픈 건 고사하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이 장관이 총리공관에 와서 “공에 맞은 국장은 별일없으니 걱정마시라”고 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국장일행은 쓴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삼성(三星)그룹에서 제일모직, 삼성물산 사장등을 역임한 이은택 사장은 JP와는 공주중학교 동기였는데 절친한 친구였지만 간암으로 50대에 아까운 세상을 등졌다. 이사장 역시 생전에는 함께 골프를 광적으로 즐긴 사람 중 하나다. 이사장의 서울대 상과대학 동기 중 김재순 전 국회의장과 박건석 미륭상사 사장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골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그렇게 절친하던 세 사람이 안양 CC에서 플레이를 하다가 사소한 일로 골프클럽을 내동댕이치면서 심한 말다툼을 벌렸고 급기야는 박건석 사장과 김재순 의장은 절교하겠다는 막말까지 내 뱉으며 헤어졌다고 이은택 사장이 JP에게 전한 적이 있다. “마침 그날 밤, 박사장은 집에서 투신자살을 했어요. 허참, 명운이 이렇게 허무하고 무상할수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가 세상을 그렇게 버리게 된 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여러가지 루머가 돌아다녔지만 그만이 알고 간직한 채 떠나간 비극이 되고 말았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인생(人生), 깊이 고뇌하기에는 너무나 짧다”고 했는데 그런것이라고나 할까?

“믿기지않는 그 비보를 접하고 나는 세네카의 말을 되뇌었어요. ‘누군가에 일어날 수 있는것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박건석 사장이 이 세네카의 말을 가슴 한 구석에 새기고 있었다면 그런 끔찍한 막된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도 그때가 잊혀지지 않아요.”

역사에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JP는 박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해 한가지 안타까운 일을 회상했다. “박대통령께서 경호실장을 내가 추천드린대로 오정근 장군을 채용하셨더라면 아마도 10.26이라는 천추에 한(恨)이 남을 불행은 없었을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일응 오장군을 동의하셨다가 밤사이에 차지철 의원으로 변경하셨는데 이로 인하여 대통령께서는 화를 자초하시는 결과가 되었지요. 김재규 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은 충성경쟁을 벌이다가 대통령까지 저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오정근 장군은 JP와 절친한 사이였다. 1963년 JP의 망명아닌 망명길에도 그는 JP와 동행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했고 세상을 떠날때까지 거의 일상(日常)을 나와 함께 하였던 지기(知己)였다. 그는 다재(多才)한 위인이었지만 특히 골프는 프로급이었다. 그가 기가 막히게 보여준 놀라운 홀인원은 전설로 전해진다.

수원 CC 구코스의 16홀에서 벌어진 일이다. 170야드의 거리에 있는 그린 바로 왼쪽옆에 은행나무가 서 있고 그린 너머에는 OB마크가 서 있었다. 그린 바로 앞과 오른쪽에는 방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 장군의 티샷이 크게 훅이 났는데 그 공이 왼쪽 은행나무 기둥에 맞더니 우측으로 튀어서 그린 너머의 OB마크에 맞고 다시 후방으로 날더니 홀에 정확하게 들어가는 것 아닌가! 이게 신기(神技)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 장군 자신도 어안이 벙벙했었다.

후에 공화당 의원인 된 오 장군과 파키스탄의 카라치에 갔을때의 일화는 그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호방한 일화다. 카라치에도 골프코스는 있다고 들었지만 무덥고 골프장 자체가 험하다하여 골프는 단념하고 열대동물원에 안내받아 둘러보고 나오던 길에서 벌어진 일이다.
JP일행 앞에 우거진 녹음이 짙은 큰 고목이 있었는데 그 밑에 열대과일을 늘어놓고 평상에 한 사람이 구부리고 앉아있었다. 무엇을 하고있나 하고 봤더니 과도(果刀)로 발가락 사이의 때를 벗기고 있었다.

거기 사람들은 모두 맨발로 다니고 있으니 때도 많이 끼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는 몰라도 과일판앞에 다가선 오 의원이 망고를 청하였는데 발가락 때를 벋기던 그 과도로 망고를 잘라서 주는게 아닌가. “오 의원은 태연하게 그것을 받아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나에게 권하는 것이 었어요. 나는 싫다고 하고 먹지 않았는데 그 과일가게에서 떠나면서 뒤돌아 봤더니 평상에 다시 앉은 상인은 여전히 발가락 사이를 바로 그 과도로 후비고 있질 않습니까.”

그때서야 “ 오 의원 저 자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시오. 유감스럽게도 오 의원은 저자의 발가락 때를 망고와 함께 먹은거요. 하...”하고 말했더니 놀란 오 의원이 “저런 망할 친구 보겠나, 그래서 망고맛이 씁쓰름했구먼 허허. 저놈 덕분에 더러운 때 약(藥)을 먹었으니 배탈은 아니나겠지...”하고 호탕하게 웃어 넘겼다.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1980년 전두환 장군은 정권을 잡기위하여 방해가 될 만한 사람들을 별별 이유를 붙혀서 구속하고 추방하고 없는 죄를 덮어 씌우곤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오정근 의원이었습니다. 전두환씨는 오 장군을 잡아다 가두고 온갖 고통을 강요했는데 그때 음성이던 간암이 양성화되어 급기야는 세상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방사선 치료로 머리카락이 없어져서 빨갛게 벗겨진 머리를 노출시키고 시신이 되어 누워있던 오정근 장군. 저승에 가면서 얼마나 전씨 일당을 저주했을까... 오 의원과 못다 한 이승에서의 일들은 내가 저승에 가거든 거기서 계속합시다. 골프도 연애도 술도 그리고 노래도 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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