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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강민석 대변인, 정말 모르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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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엊그제까지 한솥밥 먹으며 지척에서 함께 일하던 사이인데, 이런 글을 쓰려니 민망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말하려고 용기를 냈습니다. 하나는 유감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강민석 대변인의 청와대 입성으로 중앙일보는 권력과의 올바른 긴장 상태를 의심받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강 대변인과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도 마찬가지의 입장에 처했습니다. 기자가 권력 핵심부로 자리를 옮겼을 때 국민이 어떤 시선으로 그와 그가 속했던 언론사를 바라보는지 모르지 않을 겁니다. 10일 첫 청와대 브리핑에서 “거의 모든 언론이 지적해 주신 그 부분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감내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한눈팔지 않고 제 길을 가는 대다수 기자에 대한 미안함이 충분히 깃들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 개인이 견뎌야 할 고통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래서 유감입니다.

대통령 마음을 전하겠다는데 #국민의 의문엔 답하지 않으니 #진정성이 와닿지 않을 수밖에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10여 년간 옆에서 본 당신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중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정권 실드치기’에 급급했던 전임자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리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첫 브리핑에서 밝힌 다짐은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강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뿐 아니라 마음까지 전달하고 싶은 게 각오이며 목표”라고 했습니다. “성공한 정부야말로 국민의 성공이며, 그러한 성공 정부로 가는 여정에 동참하고 싶었다”고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진심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있으며, 그 점이 정부가 성공의 길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대통령 마음이 왜 잘 전해지지 않을까요? 국민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것에는 침묵하고, 말하고 싶고 말하기 좋은 것만 이야기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 대한 답입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에 대통령도 관여했는지, 대통령은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인지,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중단 건도 대통령과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었는지, 추미애 법무장관의 공소장 비공개는 본인만의 판단인지,  대통령은 범죄 혐의 때문에 기소까지 된 청와대 비서관들을 왜 계속 그 자리에 두는지….

오래 만난 사이에서도 상대가 무언가를 자꾸 감추면 진정성을 느끼기가 힘듭니다. 관계에 틈이 생기고, 무슨 말을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강 대변인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 마지막 브리핑을 하던 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예고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이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됐습니다. 그는 뛰어난 대변인이자 조언자입니다. 그는 훌륭한 판단력, 기질,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이 허구의 미사여구가 아니라면 카니는 대통령의 말과 마음을 전하는 메신저 임무에 얽매이지 않고 대통령에게 옳은 길을 제시하는 컨설턴트 역할도 열심히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친김에 그가 첫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 다짐도 소개합니다. 주간지 ‘타임’의 기자 출신(미국에서 기자가 백악관 대변인이 된 이는 카니를 포함해 세 명뿐입니다)인 그는 기자들과의 첫인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위해 일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을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제 위치는 대통령과 여러분 사이의 중앙입니다. 제 일은 여러분에게 가능한 한 최고의 정보를 제공(the best information I can give)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마음 전하기를 강조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합당한 직업적 소명의식이 느껴지는 발언입니다. 카니는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받은 대변인입니다. 강 대변인에게 그의 첫인사,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별사 장면 감상을 권합니다. 유튜브에 있습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