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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패러디한 봉준호(BJH) 티셔츠에 美밀레니얼 열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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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배급사 네온이 아카데미 수상 이후 공식 트위터에 리트윗한 봉준호 초상화. '기생충'의 미국 포스터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그렉 러스가 "봉의 역사적인 밤(Bong's historic night)"을 축하하며 공개한 것이다. [네온 트위터 캡처]

북미 배급사 네온이 아카데미 수상 이후 공식 트위터에 리트윗한 봉준호 초상화. '기생충'의 미국 포스터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그렉 러스가 "봉의 역사적인 밤(Bong's historic night)"을 축하하며 공개한 것이다. [네온 트위터 캡처]

“하룻밤에 4개의 오스카(아카데미상의 애칭)를 탄 사람은 1954년 월트 디즈니 이후 처음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9일(현지 시간), 북미 배급사 네온은 트위터에 쏟아진 이런 감탄들을 발 빠르게 공유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의 트위터.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의 트위터.

‘기생충’의 기네스 등극 소식도 흥분하며 전했다. 이날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 역대 최다 아카데미 수상 공동기록 보유자로 세계기네스협회에 인증됐다. 1984년 스웨덴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 2001년 대만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함께다. 비영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것도 아카데미 92년 역사에서 '기생충'이 처음이다.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시상식 이튿날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 4위에 올랐다. 10일 하루 동안 50만1222달러(약 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날보다 15.6%, 전주보다 213.3% 늘어난 액수다. 지금까지 북미 수입은 약 3600만 달러(약 424억원) 수준이지만 이번 주말 상영관 수를 현재 1060개에서 2배 이상 확대 예정으로 최종 매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골리앗 제친 '기생충' 전략 3 #오스카 수상 뒤엔 북미 배급사 네온 #'괴물'로 봉준호 덕후 된 톰 퀸 대표 #소규모 배급 전략, SNS 홍보전 탁월

‘기생충’의 이런 쾌거에는 북미 배급사 네온의 영리한 홍보 전략이 한몫했다. 시상식 직후 LA타임스는 “뉴욕 인디 영화의 선두주자 네온은 이번 작품상 부문에서 골리앗들 틈의 다윗이었다”며 “2년 반 전 설립된 직원 28명 규모의 이 배급사는 소니픽쳐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유니버설 픽쳐스의 ‘1917’, 넷플릭스의 ‘아이리시맨’ 등 자본이 넉넉한 거인들을 쳐부쉈다”고 보도했다.

①매진 이끈 초소규모 개봉

2018년 10월 미국필름마켓(AFM)에서 ‘기생충’의 미국 배급권을 따낸 네온은 2019년 5월 칸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부터 오스카를 노렸다. “죽으려면 무턱대고 대규모 개봉하라. 그 즉시 마케팅에 수백만 달러를 써야 한다” 는 게 톰 퀸 네온 대표의 지론. 그는 인디 영화의 제한적 배급 방식을 적용했다.

북미 배급사 네온이 '기생충'의 두 번째 오스카인 국제영화상 수상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기념 포스터. 북미 개봉 초기부터 이런 미공개 스틸을 시의적절하게 홍보에 활용하며 '기생충'이 독특하고 재밌는 영화란 점을 강조했다. [네온 트위터 캡처]

북미 배급사 네온이 '기생충'의 두 번째 오스카인 국제영화상 수상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기념 포스터. 북미 개봉 초기부터 이런 미공개 스틸을 시의적절하게 홍보에 활용하며 '기생충'이 독특하고 재밌는 영화란 점을 강조했다. [네온 트위터 캡처]

이는 인디 배급 업계 오랜 베테랑인 그 자신의 경험에 따른 것. 2017년 네온을 팀 리그와 공동 창립한 바로 그 해 그는 ‘아이, 토냐’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배출했다.

2월 시상식에 최대한 가깝게 개봉하려는 여느 경쟁작들과 달리, ‘기생충’은 캠페인 시즌 초반인 10월을 택해 주목도를 높였다. 황금종려상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던 시기다. 뉴욕과 LA 단 3개 극장에 개봉한 전략은 매진사례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작품상 부문에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를 후보에 올린 넷플릭스가 오스카 캠페인에만 60여명 전담팀과 천문학적 홍보비를 쓴 데 비하면 네온은 규모로는 절대적인 열세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역이용했다.

네온이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한 방탄소년단(BTS) 패러디 봉준호(BJH) 티셔츠. "하나 원한다면 우리를 팔로해. 그러면 우리가 DM 줄게"라는 글과 함께 공개했다. [네온 트위터 캡처]

네온이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한 방탄소년단(BTS) 패러디 봉준호(BJH) 티셔츠. "하나 원한다면 우리를 팔로해. 그러면 우리가 DM 줄게"라는 글과 함께 공개했다. [네온 트위터 캡처]

NYT는 “한 아카데미 관계자는 네온의 오스카 홍보전을 두고 ‘기백 넘치는 캠페인’이라 표현했다”면서 “이 인디 영화 배급사는 대형 스튜디오들과 달리 언론에 문을 활짝 열어젖혀 취재진까지 ‘기생충’의 전도사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②놀이같은 SNS 홍보

SNS(소셜네트워크) 활용법도 탁월했다. 공식 수상, 행사 때마다 봉 감독과 배우들 모습, 미공개 스틸을 공들여 공개했다. 방탄소년단(BTS) 로고를 패러디한 봉준호(BJH) 티셔츠, ‘제시카송’, 봉 감독의 팬덤 봉하이브(#BongHive) 소식 등을 재기발랄하게 전했다.

아카데미 각본상 경쟁작이었던 할리우드 영화 '나이브스 아웃' 트위터 계정이 9일(현지 시간) '기생충'이 역사적인 작품상을 거머쥔 걸 축하하며 봉준호 감독의 합성 사진을 게제하자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은 '기생충' 속 송강호의 얼굴을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인물에 합성해 재치 있게 화답했다. [네온 트위터 캡처]

아카데미 각본상 경쟁작이었던 할리우드 영화 '나이브스 아웃' 트위터 계정이 9일(현지 시간) '기생충'이 역사적인 작품상을 거머쥔 걸 축하하며 봉준호 감독의 합성 사진을 게제하자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은 '기생충' 속 송강호의 얼굴을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인물에 합성해 재치 있게 화답했다. [네온 트위터 캡처]

현지 매체 ‘버라이어티’는 이런 전략이 “Z세대, 밀레니얼 등 젊은 관객층을 사로잡았다”며 “아카데미 후보작이 통상 높은 연령층에 지지받는 것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 기사에서 퀸 대표는 “‘기생충’은 외국영화를 본 적 없는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기생충’을 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③봉준호가 브랜드다

최근엔 ‘봉준호가 하나의 장르(@genreofone)’란 슬로건을 내세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괴물’ ‘마더’ ‘옥자’ 등 전작들의 아트 포스터와 함께 각 영화 관련 스토리텔링도 풀어냈다. ‘기생충’의 배급사가 아니라 봉준호란 브랜드를 관리하는 할리우드 에이전시 같은 역할을 했다.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이 특별 제작한 '봉준호, 하나의 장르' 포스터. '기생충'부터 전작들의 이미지를 담았다. [네온 트위터 캡처]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이 특별 제작한 '봉준호, 하나의 장르' 포스터. '기생충'부터 전작들의 이미지를 담았다. [네온 트위터 캡처]

이런 전략의 배경엔 봉 감독에 대한 퀸 대표의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는 해외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를 따라 14살까지 유럽에서 살았다. 어린 나이에 마이클 슐츠 감독의 계급 풍자 코미디 ‘카 워시’(1976) 같은 영화를 보게 됐고 대학시절 비디오가게에서 일하며 벨기에 컬트 범죄 코미디 ‘개를 문 사나이’(1992) 등 개성 강한 영화에 심취했다.

그가 봉 감독에게 끌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술 영화 배급사 매그놀리아에 몸담았던 2006년 칸 감독주간에서 처음 본 ‘괴물’에 매료된 이후 와인스타인컴퍼니 산하 인디 배급사 등을 거치며 봉 감독의 장편영화 7편 중 5편을 북미에 소개했다.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의 톰 퀸 대표는 한국영화를 알린 공로로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LA한국문화원이 한국 문화콘텐츠의 미국시장 진출 및 확산에 기여한 개인, 기관, 단체에 시상하는 제15회 다리어워드 올해의 인물에도 선정됐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의 톰 퀸 대표는 한국영화를 알린 공로로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LA한국문화원이 한국 문화콘텐츠의 미국시장 진출 및 확산에 기여한 개인, 기관, 단체에 시상하는 제15회 다리어워드 올해의 인물에도 선정됐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생충’엔 악인이 없고 무고한 방관자도 없다. 모든 인물이 순환 관계를 갖는다. 이 영화의 모든 사람들이 기생충이다. 그들은 한국에 살 수도, 미국에 살 수도 있다. 모두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기생충’의 대본을 보자마자 “이 영화가 봉 감독의 최고 성취가 될 거란 사실에 사로잡혔다”는 그가 버라이어티에 한 말이다. 아카데미 4관왕이란 놀라운 성과 직후 미국 ‘타임’지에 그는 “시네마는 살아있고 잘 있다. 어젯밤에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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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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