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중국의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1일 발표에서 10일 하루 역대 1일 최다인10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전날의 97명 사망자보다 11명이 더 많다.
이로써 신종 코로나에 의한 전체 사망자 수는 1016명으로 늘었다. 지난달 11일 첫 희생자가 나온 이래 불과 한 달 만에 사망자 수가 네 자릿수를 기록하게 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사망자 발생에 중국 사회는 극도의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사망자로 이어지기 쉬운 중증 환자도 10일 자정 현재 7333명으로 늘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신종 코로나에 의한 사망자 누계는 지난 일주일 사이 매일 100명 단위로 바뀌고 있어 충격이다. 지난 4일까지의 중국 내 사망자는 490명이었다. 5일엔 563명으로 뛰더니 6일 636명, 7일엔 722명이 됐다. 또 8일엔 811명에 이어 9일에는 908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10일 마침내 1016명에 이르렀다. 매일 아침 급증하는 사망자 수를 확인하면서 이게 무슨 숫자 놀음도 아니고 황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어떻게 이렇게 쉽게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중국 당국의 대처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0일 오후 마스크를 낀 채 베이징 내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찾고 마을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등 처음으로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당 중앙 차원의 신종 코로나 대응 소조 조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뒷전에 물러나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론이 극도로 악화하자 등 떠밀려 나왔다는 따가운 지적을 받는다.
뭐가 잘못됐나.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해온 사상을 뜻하는 홍(紅)과 실용을 의미하는 전(專)의 투쟁에서 지난 몇 년 사이 홍이 압도적으로 전을 누르며 지나치게 득세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온다.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는 홍(紅)은 마오쩌둥(毛澤東) 생전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결과는 1950년대 말 60년대 초 수천만 명이 먹을 게 없어 사망하는 대기근, 그리고 60~70년대엔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듣는 문화대혁명을 낳았다.
그 반성에서 시작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은 실용과 이성이 지배하는 전(專)의 시대를 열었다. 고도의 과학적인 지식과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기술 관료 이른바 테크노크랫이 중국을 지배하며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 시대엔 중국의 명문 이과(理科)대학 칭화(淸華)대 출신이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다수를 차지해 “중국에 대청(大淸) 시대가 열렸다”는 우스갯말을 낳기도 했다. 4세대 리더 후진타오(胡錦濤)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5세대 지도자 시진핑 집권 이후 다시 홍(紅)의 시대를 맞았다. 마오쩌둥을 롤 모델로 삼는 시진핑의 선택으로선 당연한 것이다. 부패 척결의 이름 아래 기술 관료를 대거 밀어내고 그 자리를 당성이 강한, 즉 자신에 충성심 강한 이들로 채웠다.
이들이 전문성이나 행정 능력까지 갖췄으면 금상첨화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새다. 중화권 인터넷 매체인 둬웨이(多維)는 “멍청한 관리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는 우한(武漢) 주민의 글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러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한 주민센터 간부가 소독약을 나눠주며 자신의 단지에서 받아가라는 지시를 내린다. 주민센터가 있는 단지에선 소독약이 남아돈다. 한데 다른 단지에선 이 단지로의 출입이 금지돼 수령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당성만을 강조하며 실제 일을 하기보다는 남을 감독하는 데만 골몰하는 관료주의 병폐를 우한 인근의 황강(黃岡)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황강의 환자가 급증하자 중국 당국은 기층 간부들이 제대로 일을 못 해서라며 그 감독을 위해 단속반을 대거 파견했다.
지난달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 동안 3497명이 단속에 나서 6416곳을 뒤진 결과 모두 337명의 간부를 처벌했다고 밝혔다. 질병과 직접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싸움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니 현장의 일꾼들로서는 죽을 맛이다.
신종 코로나와 싸우기도 바쁜데 단속반의 검열부터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 사람이 삽질하면 두 사람이 감독하고 이 두 사람을 또다시 감독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중국 관료주의 병폐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술 관료가 이끌던 효율은 사라지고 일인자에 대한 충성만 강조하는 왕조 시대 같은 통치 스타일이 낳은 비극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이 국가주석의 심기만을 헤아려 처리된다.
새로운 역병을 맞아 과학적인 대처보다는 당성과 애국주의로 바이러스를 때려잡자는 식이다. 매일 아침 많은 사망자 발생 소식을 전하게 되는 배경이다. 중국 당국의 신종 코로나 대처 능력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 주석이 직접 구성한 신종 코로나 대응 소조도 의문이다. 조장으로 리커창 총리를 앞세운 뒤 부조장엔 이데올로기 담당의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을 임명했다. 7명의 조원 중 국무원에서 교육과학문화위생을 관장하는 쑨춘란(孫春蘭) 부총리 한 명을 제외하곤 질병과의 싸움 전방이 아닌 후방에 있는 사람들이다.
당 선전부장과 공안부장, 외교부장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쑨춘란 부총리도 방직 계통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당국은 최근 톈진(天津)의학원을 졸업한 왕허성(王賀勝)을후베이성 상무위원으로 발탁해 쑨 부총리를 돕게 했다.
전(專)의 시대를 밀어내고 난 뒤 맞는 역풍인 셈이다. 문제는 그로 인한 피해가 중국 인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중국 언론엔 애국주의로 무장한 지원자들이 우한으로 달려가는 상황만 보도되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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