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AIST의 실험 "10~20년간 논문 평가 안받는 '싱귤래리티 교수' 뽑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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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신성철 총장이 서울 홍릉 KAIST 캠퍼스 총장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신성철 총장이 서울 홍릉 KAIST 캠퍼스 총장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KAIST가 임용 후 10~20년간 논문 평가를 받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특이점) 교수’제도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끌 혁신적 과학기술을 만들어낼 퍼스트 무버(first-moverㆍ선도자) 연구자를 낳기 위해서는 매년 연구 실적을 평가받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10일 서울 홍릉캠퍼스에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대학 개혁 방안을 밝혔다. 오는 3월 싱귤래리티 교수 채용공고가 나간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성철 KAIST 총장의 대학개혁 #45세 이하 10명 뽑아 연구만 하게 #대학기금 지원, 1명만 성공해도 돼 #한국경제 퍼스트무버 기술 뒷받침

10~20년간 논문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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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인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는 당장‘핫’(hot)한 분야가 아니다. 당장의 논문 수로 매년 평가하면 이런 연구자는 찾을 수 없다. 물론 10~20년간 전혀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임용 때 10년을 보장한다. 이 기간이 종료된 후 연구평가를 거쳐 가능성이 인정되면 다시 10년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정부에서 주는 연구ㆍ개발(R&D) 과제에 참여하지 않아도 대학 기금으로 연구비를 보장받는다. 단 임용 5년 뒤 연구진행 과정에 관한 중간점검은 할 계획이다.”
얼마나 뽑나. 도전적인 연구인 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클텐데.  =
“매년 3명 이내로, 총 10여명을 뽑을 계획이다.  KAIST 교수 650명 중 2%에 해당한다. 이 2% 중에 한 명이라도 성공하면 된다. 다 성공할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한다. 쉬울 것 같으면 누구나 하지 않겠나. 임용 10년 뒤 평가가 만족스럽지 못해 추후 10년이 연장되지 않는 연구자는 매년 평가를 받는 일반적인 교수의 코스를 밟게 된다.”  
어떤 연구자가 싱귤래리티 교수 후보가 될 수 있나.  =
“45세 이하의 젊은 연구자를 우선적으로 대상으로 한다. 정년(65세)까지 20년간 꾸준한 연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말 뛰어나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나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매년 연구결과를 평가받아야 하는 국내 연구계에 싱귤래리티 교수제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다.다른 학교도 곧 쫓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획기적이면서도 염려도 된다. 왜 이런 제도를 도입하나.  =
“우리나라가 반세기만에 기적적인 성장을 했다. 여기엔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간 우리는 선진국이 이뤄놓은 것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 전략을 썼다. 그러다보니 특허나 논문 등은 양적으로 경이적 성장을 했지만, 질적인 성장은 아직 미진하다. 국제논문색인(SCI) 논문의 피인용 순위는 31위(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매년 5조원이 넘는 기술료를 해외에 지불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전자산업이 세계를 압도하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핵심기술은 대부분 기술료를 내고 사온다.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기술이 특이점을 향해 치솟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고민을 담은 아이디어다.”
대학은 학생 교육과 기초학문 연구를 담당하는 곳 아닌가.  =

“대학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원래 19세기말까지 대학은 교육의 전당이었다. 20세기 초 대학원이 생기면서 연구가 중요해지졌다. 20세기 후반부터 미국 스탠포드 등에 새로운 산업을 이끄는 기업가 정신의 기능이 들어왔다. 대학이라는 건 지식 창출의 진원지일 뿐 아니라 지식을 경제적 부가기치 창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대학ㆍ출연연은 많이 늦었다. 현재 한국 산업은 소수의 대기업이 이끌고 있다. 기업수 기준 99.8%인 중소기업은 수출의 18%밖에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하나가 흔들리면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앞으론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대학과 연구소가 요소기술을 만들어서 사업화해야 한다. KAIST가 그 역할을 하고자 한다.“

교수가 정부 R&D 과제에 의지하지 않으려면 대학이 교수의 연구비를 대줘야 한다는 얘긴데. 여유가 있나.
“옳은 지적이다. 스탠퍼드와 같은 미국 메이저 대학은 재원의 3분의1을 정부에서, 3분의 1은 등록금으로, 나머지 3분의1은 기금으로 조달하고 있다. 기금의 대부분은 성공한 동문선배와 사회에서 마련해준다. 학생들은 좋은 선배들을 보며 공부하고 성공해서 기금을 내는 선순환이 되고 있다. KAIST는 내년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기금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마침 지난달 KAIST 동문인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 100억원을 발전기금으로 내놨다. 이후에도 동문은 아니지만 공시지가 110억원이 넘는 땅을 내겠다는 분이 나왔다. 동문 기업인들과 사회의 기부가 이어질 조짐이 보인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신성철 총장

  1952년 대전 출생.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학부를 거쳐, KAIST에서 고체물리학으로 석사를,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대학원에서 재료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이스트만 코닥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지낸 뒤 귀국, 1989년 KAIST 교수(물리학과)가 됐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1ㆍ2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부터 KAIST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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