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국가는 무엇인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집권세력 ‘닥치고 선거’ 기류 #중국엔 눈치보고 국민은 편갈라 #결국 국가 존립·운영 원칙 훼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정부의 기본 책무”(4일 국무회의)라고 말했다. “국민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선제적 예방조치는 빠를수록 좋고,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1월 30일 신종 코로나 대응 종합점검회의)라고도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광주의 한 병원이 통째로 격리됐고, 마스크 매점매석 단속이 시작됐다. 그런 것들이 이 시기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나 정부 조치는 선제적이지도 않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지도 않다. 중국 스스로 대대적인 도시 봉쇄,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중국 인구 30% 수준인 4억여 명이 대상이다. 우리는 고작 진원지인 후베이성 방문자들의 입국만 묶었다. 중국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해 중국인들을 감동시켰다. 일리 있는 표현이다. 중국은 우리의 시장이자 공장이다.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부품 공장이 멈추면 우리 제조업 공장도 멈춰선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중국의 역할은 상당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대국 행세는 거칠다. 자기네 이익이 침해됐다고 여기면 경제 보복을 일삼는다. 사드(THAAD) 사태 때 톡톡히 겪었다.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 사태 너머의 경제와 외교를 염려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바이러스가 공포와 함께 국경을 넘어오는 지금은 중국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정부다운 정부다.
시중엔 정부의 소극적 대처에 ‘4월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돈다. 정부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않는 이유가 중국에 밉보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4월 총선 전 방한을 그르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개탄스럽다. 시 주석 방한을 선거용 호재로 만들어보자는 이들이 집권 세력 안에 있고, 그래서 정부가 미적거리는 것이라면 그들은 협잡꾼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의 ‘닥치고 선거’ ‘선거 승리 지상주의’가 의외로 집권 세력 내부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정황이 있다. 경제 정책도 그렇다.
진보 경제학자 출신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터뷰에서“다른 거 다 성공해도 부동산에 실패하면 꽝이다”고 했다. 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올인’하는 이유에 대해 그 스스로 “참여정부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 실패가 ‘실패한 정부’라는 평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금융계에서 설마설마했던 초유의 대출 규제가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서라면 보통 국민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해도 되는가. 흔한 사례가 있다. 자녀 교육 때문에 강북의 집을 전세 주고 강남에 입성한 40대 중반 A씨 부부는 벌써부터 이사 걱정에 머리가 아프다. 1년여 뒤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하면 A씨는 새로운 전세대출을 받지 못해 강북의 옛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10대 자녀 둘이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또다시 적응할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A씨 처럼 교육을 위해 ‘대전살이(강남구 대치동 전세살이)’하는 이들이 줄줄이 강제 이사 행렬에 오를 경우 전세대란은 피할 수 없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이런 무리수를 두는 집권 세력의 발상 역시 선거나 정권 재창출을 빼놓고선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을 2대8로 가르고, 그 8을 공략하면 선거에 이긴다는 셈법이다.
자사고·특목고 폐지도 마찬가지다. 진보·보수 정권의 수십 년을 거치면서 뿌리내린 제도를 하루아침에 폐지하는 결정을 마치 국민 다수가 원하는 양 몰아붙인다. 그런 것이 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무너뜨린 포퓰리즘이다.
선거는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것을 통해서 국민들은 민의를 표출한다. 정치 세력에게 선거 승리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 존립과 운영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선거 승리에 몰입하는 순간부터 자신들의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선거의 좋은 점은 선거 승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꾼과 국민을 지키는 참된 정치인을 골라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이 두 달 남았다.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