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큰 경사이자 잔칫날이다.”
10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직후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노감독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2002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이었다.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만든 그였지만 한국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부인 채령 여사와 함께 TV에서 중계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했다는 임 감독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큰 선물”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임 감독이 중앙일보에 전한 소감을 구술 정리했다.
일생동안 TV를 세 시간 넘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언제 발표가 될 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 오전부터 꼼짝없이 TV 브라운관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앞서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도 정말 장한 일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봉 감독이 감독상을 타줬으면…하는 마음이 있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벽은 참 높았다. 과거에 ‘춘향뎐’을 비롯해 몇 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참 야속할 정도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영어권의 영화인으로서는 그 어떤 영화제보다도 도전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서 봉 감독이 꼭 감독상 트로피를 품에 안기를 바랐다.
드디어 감독상 수상자 발표에서 봉투를 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입에서 “봉준호”라는 호명이 나온 순간에는 가슴에서 전율이 일었다. 한국 영화가 드디어 아카데미 시상식에 서는 것을 보니 그동안 영화를 만들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내 일처럼 감개무량했다. 그 문을 열려고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었나.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옆에서 보던 아내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독상도 정말 흥분했는데, 작품상까지 거머쥐는 것을 보고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눈물을 흘리던 아내와 둘이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을 들을 때는 2002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이 호명됐을 때 쉴 새 없이 터지던 카메라 플래시와 이후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도 잠시 떠올랐다. 봉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다가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었으니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봉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감독의 작품을 보고 감독에게 전화해 “좋았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날만큼은 정말 칭찬을 많이 했다. 빈틈이 없고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봉 감독을 각종 영화제에서 가끔 보기는 했지만 내가 따로 만난 적은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영화에 대한 느낌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기생충’은 어떤 특정 국가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문화를 담아 관객들을 힘들게 하는 면이 없다. 해외 어느 나라 사람들이 보든 알아보기 쉽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도 흥행이 잘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 영화가 해외에서 좋은 상을 타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에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여기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는 것은 한국 영화에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제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한국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해력이 없이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20대에 영화계에 들어와서 평생을 걸고 지금까지 종사하면서 내 인생 전체를 영화에 담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한국 영화가 이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지지 않는 정상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닌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쁜 일이다. 다시 한 번 축하와 감사를 전한다. 봉준호 감독이 정말 큰 일을 했다. 그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같이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정리=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