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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른 남동생 보살피던 페루의 안데스 고산지대 소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7)

과테말라컴패션에서 만난 한 소년의 환한 미소. [사진 허호]

과테말라컴패션에서 만난 한 소년의 환한 미소. [사진 허호]

올 초 과테말라 대통령이 새롭게 선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멀고 먼 나라의 대통령 선출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얼마 전 SNS로 컴패션에서 온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60%에 달하는 빈곤율, 극심한 빈부 격차, 높은 범죄율로 과격한 정치적 소요사태가 일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가슴 한쪽이 서늘합니다. 그러다 예전에 과테말라 컴패션에서 만난 빈민가의 한 소년이 생각났습니다. 그 소년은 잘 있을까, 저 환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잘 견디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면으로 하늘을 향해 크게 웃고 있는 모습은 사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죠. 그래서 더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시선이 하늘을 향하는 모습은 ‘동경’이나 ‘기다림’의 의미로 읽힙니다. 이처럼 시선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작가가 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방향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의도와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하죠.

칸딘스키는 점, 선, 면이 구성의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사각 프레임을 갖는 사진에도 같이 적용되는 요소입니다. 좋은 구성은 작자가 전달하고 싶은 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인물의 시선도 선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필리핀 팔라완 섬, 푸에르토프린세사(Puerto Princessa)시 인근, 시골에서의 점심.

필리핀 팔라완 섬, 푸에르토프린세사(Puerto Princessa)시 인근, 시골에서의 점심.

필리핀의 팔라완 섬에 위치한 푸에르토프린세사 시에서 좀 더 들어간 시골, 마날로(Manalo)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 컴패션 어린이센터가 양육을 잘한다고 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소박하고 정취가 좋았지만 외진 곳이어서 관광지로 알려졌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외진 곳에도 여지없이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살고 있었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수업 시간을 참관한 후 구수한 음식 냄새가 나는 점심 배식이 끝났을 때였습니다. 정작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강아지가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고 있는 시선이었죠. 자기도 아이들과 똑같이 배고프고 먹고 싶은 욕구가 있을 텐데, 먹을 수 있는 순위가 뒤떨어지는 거잖아요. 개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굉장히 귀여워서 찍었습니다. 시선 덕분에 강아지가 주인공이 된 셈입니다.

교실 안에 강아지가 들어와 있는데, 아이들이 별 신경 안 쓰는 걸 보면, 평소에도 자주 들어왔던 것 모양이에요. 흙 바닥이긴 한데 허름하지만 깨끗하게 청소가 잘되어 있는 모습에서 선생님들의 바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의 빈민가에서 만난 로살바와 딸 킨벌리. 돈 벌러 나간 남편과 그를 따라간 어린 딸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의 빈민가에서 만난 로살바와 딸 킨벌리. 돈 벌러 나간 남편과 그를 따라간 어린 딸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로살바의 남편은 종일 힘들게 등짐을 집니다. 다섯 살짜리 딸이 종종 아빠를 따라 인력시장에 나가는데 이날도 새벽에 같이 나갔다고 합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있으면 팁을 조금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아빠를 돕고 싶어 기쁘게 따라갔다고요.

새벽부터 밤까지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을 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로살바가 어린 아기를 안고 밑에서 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린 아기를 돌보기 위해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 아내의 심정이 시선에 담겼습니다. 로살바의 바라봄은 기다림이었던 것입니다. 반지하에 사는 로살바가 앉아 기다리는 자리는 하필 지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입니다. 폐목으로 얼기설기 만든 나무 사다리가 유일한 지상으로 올라가는 수단입니다.

로살바를 방문한 제니와 그녀의 아들 이삭. 로살바가 활짝 웃고 있다.

로살바를 방문한 제니와 그녀의 아들 이삭. 로살바가 활짝 웃고 있다.

한국에서 온 우리를 로살바의 집으로 인솔해간 사람은 컴패션 후원을 받으며 큰아들 이삭을 훌륭히 키워내고, 지금은 컴패션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또 다른 엄마 제니였습니다. 제니는 9년째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빈민가의 컴패션 등록 엄마와 아기를 돕고 있었습니다. 로살바의 환한 미소를 보며 이 둘의 만남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죠. 아닌 게 아니라, 매주 수요일마다 제니는 로살바 집을 방문해 청소, 양육, 생계를 위한 조언 등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로살바를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높이에서 사람을 보는 일은 잘 없습니다. 그런데 지하와 지상에 있는 두 엄마의 역할이 상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냥 집 구조가 그렇게 찍힌 것일 뿐이지만 제니가 더 밝고 깨끗한 옷을 입었고 로살바는 좀 더 어둡고 칙칙한 옷을 입었죠. 그런 차이도 한장 사진에 담겼습니다. 제가 왜 하필이면 집을 도로 밑에 지었냐고 물었습니다. 도시에서 밀려나 이 동네로 처음 왔을 때는 야트막한 야산뿐이었는데, 도시 설계대로 도로를 만들다 보니 도로가 높아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주민들의 시위나 항의도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체념한 듯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더라고요.

안데스 산맥에서 만난 페루의 실을 잣는 할머니와 손녀.

안데스 산맥에서 만난 페루의 실을 잣는 할머니와 손녀.

아이의 시선이 할머니를 향하고 할머니의 시선은 또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만난 페루 컴패션 아이였는데, 처음 만났을 때 눈을 끌었던 것은 자기도 어리면서 자기보다 한창 어린 배다른 남동생을 살뜰하게 살피는 모습이었습니다. 바쁜 엄마를 위해 종일 개구쟁이 동생을 쫓아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카펫을 짜기 위해 실을 잣는 할머니를 돕는 일도 이 소녀의 몫이었습니다. 무너진 집 담벼락을 배경으로 아이가 이 집안의 희망이 되며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대개 자기 키 높이의 정면을 보며 삽니다. 우리 키가 170㎝라면 그 높이에서 보는 풍경이 익숙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20㎝만 작아져도 익숙해질 풍경은 확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도 전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면 발이 보이고 하늘을 보면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죠.

시선을 달리하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거창하긴 하지만, 이런 어린이들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의 훈련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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