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프라 지어도 ‘빨대 효과’뿐···지방소멸, 영남이 최대 타격

중앙일보

입력

“젊은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부 ‘서울로, 서울로’ 유출되면서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문 대통령은 인구의 수도권 집중에 대해 “이 흐름을 반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의지와 달리 수도권 집중 현상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특히 경기가 부진한 영남 인구의 수도권 이동이 도드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들어 다시 증가하는 수도권 순이동 인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들어 다시 증가하는 수도권 순이동 인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도권으로 모이는 전국 인구 

 10일 통계청의 ‘2019년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으로의 순유입(전입자 수에서 전출자 수를 뺀 값) 인구는 전년(2018년)보다 2만3000명 증가한 8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은 전국 모든 권역에서 인구를 빨아들였다. 중부권(대전·세종·강원·충북·충남)에서 8000명, 호남권(광주·전북·전남)에서 2만1000명, 영남권(부산·대구·울산·경북·경남)에서 5만5000명이 지난해 수도권으로 순유입했다. 2013~2016년 순유출을 보이던 수도권 인구는 2017년 다시 순유입 추세로 돌아선 뒤 매년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모이는 지방 인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도권으로 모이는 지방 인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특히 지난해 수도권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이동한 권역은 영남(5만5000명)이다. 사람을 붙들어 둘만 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영남권에 속한 부산·대구·울산·경남·경북 전출자 모두 이곳을 떠난 주요 이유로 ‘직업’을 꼽았다. 산업 활성화에 기반을 둔 일자리 문제 해결 없이는 인구를 붙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 인구 못 붙잡는 정부 균형발전 

 그러나 정부 정책 방향은 과녁을 비켜나 있다. 산업을 살리거나 일자리를 늘리기보다 교통·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24조원 규모의 23개 사업에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구·개발(R&D) 투자 등 지역 전략산업 육성 관련 사업 5개(3조6000억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도로·철도 등 교통 인프라 건설 사업이다.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규모 건설 사업은 단기적으로 지역 일자리를 만들 순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될 수 있느냐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적지 않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조건 사회간접자본(SOC)을 만드는 것보다는 지방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점 도시로 키우고 주변 지역을 함께 도시화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손쉬운 교통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김 교수는 “균형발전을 한다고 도로 등을 건설하면 인구가 수도권 등으로 빨려 들어가는 ‘빨대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없어 사람 떠나니 생산도 감소

 인구가 계속 빠져나가면서 지방은 산업생산 감소와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 부진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전국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5개 도시 가운데 4곳(거제·통영·구미·김해)이 영남권 도시였다. 특히 경북 봉화·전북 순창 등의 지역은 청년층(15~29세) 취업자 비중이 각각 3.5%·4.4%를 기록하며 청년 일자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인이 수도권으로 이동한 빈자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고 있는 형편이다.

전국 생산 절반이 수도권에서 발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국 생산 절반이 수도권에서 발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국에서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 역시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만들어진다. 지역별 경제 규모를 알 수 있는 지역내총생산(GRDP)은 서울·경기·인천이 전체의 51.8%(2018년)를 차지했다. 수도권의 GRDP 비중은 2011년 49.1%를 기록한 뒤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면 일자리 부족을 겪는 울산·경남·제주의 GRDP는 전년보다 떨어졌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문화·주거 전 분야에서 청년층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교통·SOC 건설 등은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데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