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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으로 떠난 딸 만난 엄마…침체 VR 돌파구는 휴머니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리운 사람을 가상현실(VR)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재회 콘텐트’가 침체된 VR·증강현실(AR) 시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6일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혈액암으로 떠난 어린 딸을 VR로 다시 만난 어머니 얘기를 다뤘다. 관련 유튜브 영상은 9일 기준 조회 수 600만회를 넘길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업계에선 침체기인 VR 시장이 재회 콘텐트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일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사진 MBC 유튜브 캡처]

지난 6일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사진 MBC 유튜브 캡처]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VR의 새로운 가능성

고글(HMD)·장갑 형태의 VR 기기가 등장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킬러 콘텐트’라 부를만한 것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초기 VR 콘텐트가 체험형 단발성 콘텐트에 그쳤던 데다, 어지러움·불편한 착용감 등 장비의 한계, 스마트폰처럼 어디서나 쓸 수 없다는 공간적 제약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회 콘텐트는 VR·AR을 확산시킬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 이사는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을 현실과 분리된 공간에서 ‘몰입의 힘’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기존 VR 업계에서 집중해왔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용 콘텐트와 감정 교류용 문화콘텐트 사이 콘텐트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시도 많지만 비용·후유증·기술 장벽

영화 '로건'에 쓰인 GC 렌더링. 휴 잭맨을 모델로 노인 로건을 만들었다. [사진 더CG브로스 유튜브 캡처]

영화 '로건'에 쓰인 GC 렌더링. 휴 잭맨을 모델로 노인 로건을 만들었다. [사진 더CG브로스 유튜브 캡처]

대중화 가능성은 얼마나 클까. 김 이사는 “영화산업에서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한 디지털 연기가 보편화한 만큼 (재회 콘텐트의) 확장 가능성은 크지만, 비싼게 문제”라고 말했다. ‘너를 만났다’를 제작한 비브스튜디오스 이현석 감독도 “휴머니즘이 VR의 킬러 콘텐트가 될 수 있을지 판단하긴 이르다”며 “VR은 아직 오락적 성격이 강한데다, 후유증 등 윤리적 문제가 남아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후유증 문제를 우려한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VR 재회가 만나고 싶은 감정을 일시적으로 달래주는 도구가 될 순 있겠지만, 전문성 없이 가상현실로 PTSD 노출 치료(충격 상황에 반복 노출해 회피 행동을 줄이는 치료)를 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며 “소중한 사람을 먼저 보냈다는 현실을 수용하도록 ‘가상현실’임을 충분히 교육하고 훈련된 전문가와 동반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촉각을 느끼기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도 있다. 이 감독은 “(다큐에서) 사물을 느낄 수 있는 햅틱 장갑 등을 사용했지만, 인간의 피부를 직접 느낄만한 기술은 아직 개발단계”라고 말했다.

킬러 콘텐트 나오려면

현재 VR 시장에서 가장 유력한 대중화 가능성을 보유한 분야는 교육과 의료다. VR 고글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한 사용자가 VR게임 기업 '사이버슈즈'의 VR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박민제 기자

지난 2019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한 사용자가 VR게임 기업 '사이버슈즈'의 VR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박민제 기자

시장조사기관 홀론IQ에 따르면 VR·AR을 활용한 교육 시장은 2025년 약 15조원으로 전망된다. 정지영 명지전문대 VR학과 교수는 “우주 체험 등 실제 가긴 어려워도 거의 유사한 느낌으로 싼 가격에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콘텐트가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분야도 PTS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증후군(ADHD)·치매 치료와 가상 시신을 통한 수술 연습 등에 VR을 활용하고 있다. 헬스케어VR 시장은 2023년 약 6조원(시장조사기업 마켓앤마켓)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스타트업 룩시드랩스는 세계 최초로 시선 추적 및 뇌파 센서가 탑재된 스마트폰 기반 VR 헤드셋을 개발했다. [사진 룩시드랩스]

국내 스타트업 룩시드랩스는 세계 최초로 시선 추적 및 뇌파 센서가 탑재된 스마트폰 기반 VR 헤드셋을 개발했다. [사진 룩시드랩스]

국내에서도 관련 기술개발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VR 스타트업 룩시드랩스의 채용욱 대표는 “VR 기기에 시선·뇌파 추적 장치를 달아 경도 인지 장애와 아동 ADHD 치료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팀제파의 경우 분당 보바스기념병원과 함께 초·중기 치매를 치료하는 회상 VR 기기를 개발했다. 치매 환자에게 1960~70년대 시골 풍경을 보여줘 치매 증상을 완화시키는 기기다. 팀제파는 2017년 법무부와 알코올 중독 치료 VR을 만들기도 했다.

비브스튜디오스가 제작한 VR영화 '볼트: 체인시티'는 2017년 미국 VR페스트에서 최우수 VR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사진 비브스튜디오스]

비브스튜디오스가 제작한 VR영화 '볼트: 체인시티'는 2017년 미국 VR페스트에서 최우수 VR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사진 비브스튜디오스]

정 교수는 “포켓몬 고·알파고 덕에 전 국민이 AR과 인공지능(AI)을 알게 됐듯이 VR도 ‘터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그때까지 정부와 업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트를 시도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일 이사는 “VR만이 할 수 있는 몰입의 힘이 돋보이는 콘텐트를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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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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