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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냄새'까지 그의 작품···美감독도 깜빡속은 기생충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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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축잡지 ‘AD(건축다이제스트)’에 실린 ‘기생충’ 속 박사장(이선균)네 부잣집. 이하준 미술감독과 제작진이 집 안팎과 정원까지 만들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미국 건축잡지 ‘AD(건축다이제스트)’에 실린 ‘기생충’ 속 박사장(이선균)네 부잣집. 이하준 미술감독과 제작진이 집 안팎과 정원까지 만들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이 미술상을 타면 ‘게임 체인저’가 된다.” 

지난 3일 할리우드 매체 ‘인디와이어’ 기사다. “역대 아카데미상 후보작 중 현대극이 미술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지만, 봉준호와 이하준(미술감독)이 이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생충’ 주역③ 이하준 미술감독 #9일 아카데미 미술상 韓 최초 후보 #"후보 호명 순간 심장 터지는 줄" #반지하 동네·부잣집 100% 구현 #미국 건축잡지도 '기생충' 조명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본선 진출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9일(미국 현지시간)로 다가왔다. 현지가 주목하는 ‘기생충’ 주역은 봉준호 감독만이 아니다. 작품‧감독‧각본‧편집‧국제영화상 등 한국영화 최초로 후보에 오른 6개 부문 중 미술 부문에 호명된 이하준 미술감독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기생충' 주역이 27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후보 사전 오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기사,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EPA=연합뉴스]

'기생충' 주역이 27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후보 사전 오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기사, 제작자 곽신애(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EPA=연합뉴스]

"최초 수식어 부담스럽지만…"

그간 한국영화 미술은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 ‘버닝’의 신점희 미술감독이 칸영화제 번외상인 벌칸상(기술상)을 받은 적 있지만, 해외 주요 영화제 본상 후보에 오른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가진 미국 미술감독조합의 현대극 부문 미술상도 거머쥐며 할리우드 미술 관계자들에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만 (중략) 함께해준 모든 이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리스펙트!!”

지난달 이하준 미술감독이 아카데미 후보 발표 당일 보내온 소감이다. 미술팀의 조원우 세트 디자이너도 함께 이름이 올랐다.

'기생충' 아카데미 주역들

할리우드 감독 깜빡 속은 미술세트

'기생충'에서 기택(쏭강호)네 가족의 반지하집 사전 디자인. 미국 건축잡지 ‘AD(건축다이제스트)’도 소개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에서 기택(쏭강호)네 가족의 반지하집 사전 디자인. 미국 건축잡지 ‘AD(건축다이제스트)’도 소개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 미술감독은 ‘독전’ 관상‘ ’도둑들‘ ’미인도‘ 등 미술감독에 앞서 2003년 ’국화꽃 향기‘ 데코팀으로 출발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 디자인과를 나와 공연무대미술을 주로 하다 선배의 소개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녀’도 그가 작업했다.

봉 감독 연출작은 ‘옥자’에 이어 두 번째. '기생충'에서 이 미술감독이 책임진 반지하와 대저택, 극과 극 두 공간은 기택(송강호)네와 박사장(이선균)네 형편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건의 주요 무대다.

지난해 본지와 인터뷰에서 “세트를 만들지만 세트처럼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을 가장 큰 도전으로 꼽았다. 결과는 대성공.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박사장네를 두고 “어디서 그런 완벽한 집을 구했냐”고 물었다가 세트란 말에 깜짝 놀랐단다.

재개발 동네 벽돌, 곰팡내까지 구현

영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네 반지하집 화장실 세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네 반지하집 화장실 세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봉테일(봉준호+디테일)’ 감독 못지않게 디테일에 공들였다. 반지하 동네의 경우 “만들려 하지 말고 구해왔”단다. 재개발 지역 오래된 벽돌을 실리콘으로 떠서 벽돌을 만들고 문짝‧새시‧방충망‧전깃줄 등은 구하거나 사들였다. 지하 특유의 곰팡이 냄새까지 빚어냈다. 소품팀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어 파리‧모기를 윙윙대게 했고 반지하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기름때를 배게 했다.

기택네 동네는 실제론 이런 모습이다. 서울 실제 동네 같지만 고양 아쿠아 스튜디오에 세트를 지어 구현했다. 집집마다 다른 사연을 부여해 삶의 흔적까지 실어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택네 동네는 실제론 이런 모습이다. 서울 실제 동네 같지만 고양 아쿠아 스튜디오에 세트를 지어 구현했다. 집집마다 다른 사연을 부여해 삶의 흔적까지 실어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박사장네는 내외부가 100% 세트. 유명 건축물을 보며 외형을 연구, 차고와 외벽 세트로 만들어 촬영 후 골목과 CG로 합성했다. 정원 나무까지 심었다. 촬영이 진행된 2018년 여름엔 혹서로 잔디가 많이 죽어 조경 공부를 해가며 복구했다. 그는 ‘옥자’에선 슈퍼돼지 옥자와 미자가 난장판을 벌이는 지하상가 세트를 남양주촬영소에 감쪽같이 지어내기도 했다.

미국 건축잡지도 ‘기생충’ 집 집중 조명

기택 가족이 박사장네 부잣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테이블 등 가구는 박종선 가구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 사진 이재혁 ]

기택 가족이 박사장네 부잣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테이블 등 가구는 박종선 가구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 사진 이재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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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은 이 미술감독을 뉴욕 링컨센터 관객과의 대화 현지 행사, 인터뷰에 적극 동참시키며 아카데미 캠페인에 나섰다. 미국 건축잡지 ‘AD(건축다이제스트)’도 ‘기생충’ 속 집에 관한 기사를 크게 다뤘다.

올해 아카데미 미술 부문 경쟁작은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모두 시대극. 역대 아카데미 미술상은 ‘블랙 팬서’ ‘라라랜드’ ‘아바타’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시대극이었다. 현지에선 ‘기생충’이 새 역사를 쓸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1917’ 막강…미술감독 오스카 후보만 7번째

가장 막강한 후보는 영국 아카데미 등 미술상을 쓸어 담고 있는 제1차 세계대전 실화 영화 ‘1917’이다. 그 미술감독 데니스 가스너는 ‘007’ 시리즈, ‘트루먼 쇼’ ‘블레이드 러너 2049’ 등 30여년 경력 베테랑. 아카데미상 후보만 7회째 올랐다. 1992년엔 ‘벅시’ ‘바톤 핑크’ 2편으로 미술상 후보에 두 번 호명됐다가 ‘벅시’로 수상했다.  올해 미술감독조합상 시대극 부문을 수상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여성 미술감독 바바라 링도 쟁쟁하다.

‘기생충’은 역대 아카데미 미술상의 7번째 아시아계 후보다. 1953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영화 ‘라쇼몽’이 최초로 올랐고 2001년 대만 감독 이안의 ‘와호장룡’이 최초 수상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시간으론 10일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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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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