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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화장실·샤워장 같이 썼다···격리된 25명 '30시간 악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격리환자들, 화장실·샤워장 함께 썼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관계자들이 지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광산구 21세기병원에 긴급 구호키트와 생활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관계자들이 지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광산구 21세기병원에 긴급 구호키트와 생활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환자들이 함께 사용한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에는 휴지와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갑작스러운 격리에 생필품은 물론이고 마실 물조차 부족했다."

광주 21세기병원 환자들 '코로나 공포' #보건당국, 6일에야 1인 1실 격리 완료 #오죽하면 환자가 "생필품 부족" 호소 #공동 화장실·세면장 위생도 불만 커

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21세기병원에 격리된 한 환자가 전날까지의 병원 운영상황에 대해 털어놓은 말이다. 이 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째 확진자인 A씨(42·여)와 딸 B씨(21·여·18번째 확진자)가 입원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환자 C씨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6일까지 생필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많았다"며 "격리 초기에는 지급받은 생수가 부족해 감염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복도에 있는 공동 정수기를 사용해야 했다"고 말했다.

광주 21세기병원에 격리된 환자들이 보건당국의 미흡한 관리·운영으로 인해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병원에 격리된 후 물과 생필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은 데다 세면장과 화장실에는 쓰레기가 쌓인 채 불결한 환경 속에서 신종 코로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지난 4일 A씨가 16번째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잠정 폐쇄된 병원에는 환자 20명과 보호자 5명 등 25명이 격리돼 있다.

지난 5일 오후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에서 3층에 격리된 환자와 보호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오후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에서 3층에 격리된 환자와 보호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발표 30시간 후에야…1인1실 격리

현재 21세기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지난 6일까지 1인실이 아닌 다인실 등을 써왔다. 당초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여러 명의 환자들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해온 것이다. 더구나 환자들은 이 병원에 근무한 직원들 모두가 자가격리된 탓에 관리자나 청소원 등도 없이 격리 생활을 해왔다.

환자 C씨는 "1인실과는 달리 다인실은 화장실이 병실 내부에 없어 복도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는데, 제때 청소되지 않아 화장지가 널려 있었다"고 했다. 또 이들 환자는 화장실이나 공동 샤워실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격리된 병원 내에서 신종 코로나에 대한 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보건당국은 지난 4일 이 병원을 임시폐쇄한 다음날 "3층에 있는 고위험군 환자와 보호자 등을 1인 1실에 격리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지난 6일 오전까지도 1인실이 아닌 다인실 등 자신이 머물던 병실에서 그대로 생활했다. 21세기병원 직원들도 전원이 자가격리되는 바람에 병원 내 관리자도 없었다.

16번·18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입원했던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에 7일 도시락과 각종 식품이 배달되고 있다. [뉴시스]

16번·18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입원했던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에 7일 도시락과 각종 식품이 배달되고 있다. [뉴시스]

환자들, 생수·생필품 부족 발 동동 

앞서 보건당국은 지난 5일 오전 10시 브리핑 때 “(21세기병원의) 3층 환자들을 격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환자에 대한 1인실 격리가 완료된 것은 6일 오후 4시였다. 환자 격리사실을 발표한 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30시간이 지나서야 실제 격리를 완료했다.

환자 C씨는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 환자 대부분이 다인실에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환자 D씨는 "초기엔 생수가 2병 정도 지급됐는데 충분하지 않았다"며 "입원한 환자가 준비도 못 한 상황에서 갑자기 격리되면서 생필품이 부족한 환자들도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사실은 전날 병원에 격리됐던 한 환자가 “생필품이 필요합니다”라는 쪽지를 쓰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이 환자는 '화장지·생수·치약·물 등이 부족하다'는 쪽지를 병원 창문 사이로 취재진에게 내보이며 병원 내 사정을 알렸다.

지난 6일 오후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 지하에 환자들이 먹은 도시락과 내부에서 발생한 쓰레기 등이 쌓여있다. [뉴스1]

지난 6일 오후 광주 광산구 21세기병원 지하에 환자들이 먹은 도시락과 내부에서 발생한 쓰레기 등이 쌓여있다. [뉴스1]

부랴부랴 1인 격리·생필품 공급

보건당국은 논란이 거세지자 부랴부랴 환자들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광주시와 광산구는 지난 6일 오후와 이날 오전 21세기병원에 생필품과 생수·라면 등을 지원했다. 또 "병원 내 관리요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근무요원 8명과 의료진 등을 파견해 환자들을 관리키로 했다.

광산구는 이날부터 청소요원들을 병원에 투입했다. 이 병원 안팎에선 전날까지 "병원 청소나 쓰레기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광산구 관계자는 "현재 병원에는 청소 담당 직원이 투입돼 공동 화장실과 세면장에 대한 청소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에도 늑장대응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앞서 보건당국은 16번 환자인 A씨에 대한 신종 코로나 감염을 의심한 21세기병원 측의 검사요청을 거절하는 등 번번이 뒷북대응을 해와서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와 보건소 측이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며 A씨에 대한 검사를 거절한 사이 A씨 본인에 이어 딸(18번)과 오빠(22번)까지 잇따라 감염됐다.

광주광역시=최경호·진창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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