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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생산 800만, 재고 3100만장···왜 마스크 없다 아우성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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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3개 업체가 각각 소규모 생산 #재고 흐름 한눈에 보이지 않아 #중국 보따리상 등 물량 경쟁 탓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여파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마스크 상자가 쌓여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여파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마스크 상자가 쌓여 있다. [뉴시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목 허가받은 마스크 1062종. 생산기업 123곳. 하루 생산 물량 800만장(KF 80이상). 현재 국내 재고 약 3100만장(3일 정부 발표 기준).

‘귀하신 몸’이 된 한국 보건용 마스크 관련 주요 수치다. 보건 마스크 시장 규모는 연간 1145억원(2018년 기준ㆍ식약처)이다. 최근 몇 년새 급성장한 게 이 정도다. 2016년엔 152억원, 2017년 337억원의 작은 시장에 불과했다. 2018년부터 거세진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성장했다. 이래저래 중국 때문에 크고 있다.

현재는 중견ㆍ중소기업이 하루 5만~20만장씩 생산한다. 그간 시장이 작고 마진이 박해, 큰 기업이 직접 뛰어든 경우는 없다. LG생활건강, 유한킴벌리, 동아제약, 모나리자, 쌍용제지 등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는 모두 납품 업체을 통해 마스크를 공급받는다. 케이엠, 와이제이코퍼레이션, 웰스콤, 크린웰 같은 중견 기업과 글로벌기업 3M의 한국 법인인 한국쓰리엠이 대표적 생산 업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봄철 반짝 팔렸다가 마는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돌기 시작하면서 생산은 계속된다는데 소비자는 찾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재고ㆍ유통 흐름 한눈에 보기 어려워  

현재 인구대비 하루 생산 물량(800만장)이 적다고 하긴 힘들다. 유통업계 말을 종합해 보면 현재 시중에 남아 있는 재고는 3100만장 정도다. 정부는 하루 생산 물량을 1000만장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123개의 업체가 각각 소규모로 생산하다 보니 재고 흐름이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마스크 품절 사태는 최종 판매 업체의 물량 확보 경쟁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 여기에 중국 보따리상과 황사 철을 앞두고 미리 물량을 확보하려는 중간 도매상이 가세하면서 마스크 제조사 잡기 전쟁이 펼쳐졌다.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공항 이용객들이 중국으로 가져갈 마스크를 마스크 상자에서 택배회사 상자로 옮겨 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공항 이용객들이 중국으로 가져갈 마스크를 마스크 상자에서 택배회사 상자로 옮겨 담고 있다.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일부는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제지업을 중심으로 하는 모나리자는 지난해 마스크 600만개를 협력 업체를 통해 만들었지만, 재고가 많이 남아 올해는 추가 생산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 회사의 이두현 마케팅팀장은 “1년에 딱 석 달 팔리는 제품이라 물량을 많이 확보해 두진 않는다”며 “현재 마스크 재고는 다 나갔지만, 협력 업체에 추가 발주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접 생산을 하지 않는 업체 상황은 대체로 비슷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신종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제조사 간 가격 담합 등의 우려가 있어 생산 물량과 주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마스크 수요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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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들 피나는 확보 전쟁  

주요 유통 업체는 그동안 마스크 제조사 1~2곳과 계약을 맺어왔다. 계절상품으로 꾸준히 관리가 필요한 제품이 아니다 보니, 마스크 상품기획자(MD)도 소수다. 최근 물량 확보 경쟁이 붙으면서 마스크 MD나 바이어는 피 말리는 경쟁을 벌여 왔지만,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긴 어려웠다. 대형 유통사라도 추가 물량 확보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마트(창고형 할인점 포함)에선 지난달 27일~지난 2일 마스크 370만개가 팔렸다. 하루 평균 53만개가 나갔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0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수요 폭증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여기에 오픈마켓에서 일부 판매자가 물건을 확보하고도 풀 시점을 잰다거나, 판매자에 물건을 주기로 한 제조사가 갑자기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 현금을 들고 출몰한다는 중국 업자까지. 마스크 유통 단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병목 현상이 겹치면서 마스크 기근은 거세졌다.

4일 국내 한 도매 사이트의 보건 마스크 판매 정보에 품절 표기가 붙어있다. [홈페이지 캡처]

4일 국내 한 도매 사이트의 보건 마스크 판매 정보에 품절 표기가 붙어있다. [홈페이지 캡처]

정부 단속과 구매 제한에 힘입어 최근에는 경쟁이 다소 진정되는 모양새다. 이마트에선 물량이 부족해 점포별로 2~10장으로 구매 제한을 두던 것을 4일을 기점으로 1인당 30장(창고형 할인점에선 1박스)으로 늘렸다.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해 공급에 여유가 생겼다는 신호다.

온라인 쇼핑몰인 11번가도 직매입을 통해 마스크 50만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11번가 관계자는 “협력업체 두 곳을 통해 어렵게 물량을 확보했는데 4일 20만장은 5분 만에, 5일 15만장은 7분 만에 매진됐다”고 말했다.

유통 업계에선 이달 중순이면 마스크 부족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마스크 사재기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매점매석이 다소 수그러들었고, 중국 춘절 연휴가 끝나면 중국 내 마스크 생산도 재개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폐렴) 확산 우려에 3일 서울 은평구를 지나는 시내버스에선 마스크를 무료로 배포중이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폐렴) 확산 우려에 3일 서울 은평구를 지나는 시내버스에선 마스크를 무료로 배포중이다. [뉴스1]

마스크 필터 부족 대비해야  

다만 재료 부족이 마스크 품귀 사태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보건 마스크 주요 재료는 부직포와 MB 필터(Melt Blown)다. 부직포 수급엔 큰 문제가 없지만, 필터는 생산자가 극소수다. 전문가 사이 이견은 있지만 보건 당국은 마스크에 MB 필터가 들어가 있는 제품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마스크용 MB 필터를 만들 수 있는 업체는 7곳 정도다. 일부 제조 업체는 중국산 MB 필터를 쓰고 있다. 중국에서 필터 공급이 중단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5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마스크를 낀 직원이 매장 정리를 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5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마스크를 낀 직원이 매장 정리를 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마스크 제조업계 관계자는 “마스크에 들어가는 다른 재료는 사태가 아무리 길어져도 수급에 문제가 없지만, 공기청정기에도 대량으로 사용되는 MB 필터는 부족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마스크 사재기 단속과 함께 소재 수급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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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ㆍ임성빈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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