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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예능시대 올라탄 한국인 비상식량 라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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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놀면 뭐하니?-뽕포유’의 유재석. [유튜브 캡쳐]

‘놀면 뭐하니?-뽕포유’의 유재석. [유튜브 캡쳐]

“센 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물은 700㎖(4컵) 정도를 끓인다. 분말수프를 3분의 2만 넣는다. 대파를 기본으로 삼고 분말수프를 보조로 삼는다. 대파는 검지손가락만 한 것 10개 정도를 하얀 밑동만을 잘라서 세로로 길게 쪼개놓았다가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는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승 없이 혼자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웠다.”

파삼탕면서 유산슬 라면까지 #유명 셰프 대신 1인 라면 먹방 붐

소설가 김훈이 수필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소개한 자신만의 라면 레시피다. 한국인의 ‘비상 식량’ 이자 ‘최애 메뉴’ 중 하나인 라면이, 예능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인 유재석의 각종 도전을 다룬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뽕포유’는 최근 트로트 가수에 이어 라면 요리사 도전으로 꾸려가는 중이다. 유재석이 1인 라면집을 운영하며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박명수, 홍현희 등 동료 개그맨들이 대거 방문한 1일 방송은 10.1%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두 자릿수 시청률 역시 처음이다.

지리산에서 ‘파삼탕면’을 선보인 강호동. [유튜브 캡쳐]

지리산에서 ‘파삼탕면’을 선보인 강호동. [유튜브 캡쳐]

나영석 PD가 지난해 12월부터 선보인 ‘라끼남(라면을 끼리는 남자)’도 강호동과 라면을 내세운 1인 예능이다. 유튜브 등을 겨냥해 제작한 ‘라끼남’은 평균 조회 수가 100만 건에 이른다. 강호동이 전국을 돌며 상황에 따라 레시피를 바꿔가며 라면을 끓여 먹는 내용이다. Olive와 tvN에서는 6분간 방송되고, 유튜브로 10~15분가량의 풀버전이 공개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 예능의 주인공은 셰프였다. 유명 셰프들이 현란한 요리 솜씨로 음식을 담아내면 연예인들은 이를 맛보는 구성이었다. 이제는 연예인들이 라면을 매개로 주도하는 분위기다. 이런 변화에는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1인 예능의 확산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 콘텐트로서 라면의 장점에 대해 “다루기 쉽고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시간, 예산 없이도 혼자 손쉽게 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해 1인 예능에 적합하다”며 “예를 들어 강호동은 ‘라끼남’에서 산이나 바다에 가서 그곳의 재료를 활용해 라면을 만들어내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라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PD는 “1인 방송은 쉽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 이게 정말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라며 “준비와 조리과정이 간단하고 출연진이 음식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예능과 결합하기 좋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모디슈머’ 문화의 영향을 꼽았다. 모디슈머는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소비자가 소재를 자유롭게 수정하며 새로운 콘텐트를 만드는 소비패턴이다. 짜장라면과 너구리 라면을 섞은 ‘짜파구리’나 백세주와 소주를 1대 1 비율로 섞은 ‘오십세주’가 대표적이다. 라면은 자유로운 재창작이 가능하고, 따라 하기도 쉽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 이경규가 한 예능에서 선보인 하얀 국물의 ‘꼬꼬면’은 제품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라끼남’은 이같은 강점이 극대화된 방송이다. 강호동은 매 방송마다 다른 라면 레시피를 공개하는데, 지난해 12월 지리산 등반 중에 선보인 ‘파삼탕면(안성탕면+대파+삼겹살+고춧가루)’은 유튜브 조회 수 320만 건에 달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뽕포유’에서 선보인 유산슬 라면, 간짜장 라면 등도 방송 직후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주목받고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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