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악수 거절했고, 펠로시는 면전서 연설문 갈기갈기 찢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05 16:17

업데이트 2020.02.05 16:5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악수를 거절했고, 펠로시는 카메라 앞에서 트럼프의 원고를 두 갈래로 찢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세 번째 국정 연설 날 대통령과 하원의장은 서로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하원서 세 번째 국정 연설
48일 전 탄핵 소추안 가결된 곳
펠로시 내민 손 트럼프 외면하자
펠로시, 트럼프 연설문 거칠게 찢어
내일은 상원서 탄핵 부결 투표 예상
탄핵 트럼프-펠로시 갈등 드러나
'위대한 미국의 귀환' 국정 연설
탄핵 부담 벗고 재선 레이스 시동
경제, 안보, 외교, 무역 치적 과시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오후 9시 하원 본회의장에서 '위대한 미국의 귀환(Great American Comeback)'을 주제로 국정 연설을 했다.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대통령은 연단에 올라 미리 준비해 온 연설문 2개를 펠로시 의장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각각 건넸다.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펜스 부통령은 상원 대표자 자격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트럼프는 펠로시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연설문을 건넸다. 연설문을 받은 펠로시는 오른손을 트럼프를 향해 내밀었지만, 트럼프는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펠로시가 내민 손을 봤는데 잡지 않은 것인지, 보지 못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 연설은 1시간 30분간 이어졌다. 연설 내내 펠로시는 고개를 숙이고 연설문을 들여다보거나 일부러 연설문을 이쪽저쪽 뒤적였다. 펜스와 펠로시는 연설하는 트럼프 바로 뒤에 앉았기 때문에 내내 카메라 한 프레임에 담겼다. 펠로시의 산만한 행동은 생생하게 전국에 중계됐다. 펠로시는 앞에 있는 트럼프를 외면했다. 뒤통수에도 눈길을 한 번 안 줬다. 대신 허공을 응시하거나 회의장 안을 둘러봤다.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공화당 의원들은 몇 차례 기립 박수를 쳤으나 펠로시와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연설이 끝나자 펠로시가 일어섰다. 펜스 부통령과 의원들, 특별 초대 손님들이 박수칠 때 펠로시는 트럼프 연설문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힘껏 찢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4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서 트럼프의 원고를 찢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4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서 트럼프의 원고를 찢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 감사합니다"라는 맺음말을 배경음으로 연설문은 갈기갈기 찢겼다. 펠로시는 왼쪽에 모아 놓은 연설문 조각을 집어 다시 앞쪽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하원의장석은 연단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참석자도, 카메라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행사가 끝난 뒤 왜 그런 행동을 했냐는 기자들 질문에 펠로시는 "대안을 고려할 때 정중한 일이었다"고 답했다. 대통령이 하원의장에게 건넨 연설문도 기록을 위해 보관해야 한다. 하원이 찢어진 연설문을 붙여서 보관할지, 백악관에 새 연설문을 요청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펠로시가 이날 택한 의상도 민주당 초선 여성의원들이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때 입는 색상인 흰색이었다.

두 사람의 충돌은 하원의 대통령 탄핵조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트럼프가 연설한 하원 본회의장은 48일 전 하원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곳이다. 또 다음날인 5일 상원은 탄핵 심판 찬반 투표를 할 예정이다. 공화당에서 이탈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원의 탄핵안 부결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4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연설문을 건네받은 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자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ㆍAFP=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4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연설문을 건네받은 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자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ㆍAFP=연합뉴스]

대통령은 펠로시가 자신에 대한 탄핵조사를 개시하고 주도한 점에 대한 불쾌감을, 펠로시는 대통령이 상원에서 무죄 선고를 앞둔 점에 불만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평소 트위터에서 펠로시를 '미친 낸시'라고 불러왔다.

펠로시는 지난해 2월 트럼프의 국정연설에선 트럼프에게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우쭈쭈’하는 표정으로 박수를 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평소 대선 유세나 언론 인터뷰, 트위터 등을 통해 "탄핵은 마녀사냥", "사기극", "무능한 민주당"이라고 외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탄핵이란 단어 한 마디 쓰지 않았지만, 연설 내용을 통해 이제 탄핵의 굴레에서 벗어나 올해 11월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트럼프는 "3년 전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귀환'을 시작했다"면서 "오늘 나는 그 믿을 수 없는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섰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어 경제, 안보, 외교, 무역 등 분야별로 치적을 소개했다. 그는 "취임 순간부터 나는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면서 "그 결과 일자리를 없애는 수많은 규제를 줄이고, 역사적이고 기록적인 감세를 시행했으며,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합의를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4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서 트럼프의 원고를 찢은 뒤 이를 웃으며 흔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4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서 트럼프의 원고를 찢은 뒤 이를 웃으며 흔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신이 취임한 뒤 3년 만에 노동 가능 인구 350만 명이 새로 일자리를 가졌고, 과감한 규제 완화로 미국이 세계 1위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됐다고 말했다.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서명, 중국과의 무역 합의, 미군의 새로운 부대인 우주군 창설, 반이민 정책 등을 성과로 제시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서울=전수진 기자 hypark@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