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친구들이 응원"···우한 코로나에 갇힌 유학생 '장리의 일기'

중앙일보

입력 2020.02.05 11:55

업데이트 2020.02.05 13:57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漢市)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두 달여가 지났다. 5일 기준 중국 내에서만 사망자는 490여명, 확진자는 2만4000여명에 달한다.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한국에서 유학하던 상당수의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에 발이 묶여 있다.

성균관대 석사 졸업 앞 둬, 설 맞아 고향 갔다가 갇혀
장난감 사러가니 직원이 "소독해야하니 빨리 골라라"
아침 꼭 사먹는 우한人들, 식당 문 닫아 난감
슈퍼에서 동난 건 물만두
고등학생은 온라인으로 강의 들어
밤에 환자 이송하는 건 사람간 접촉 피하려고

한국 성균관대에서 유학중인 중국인 장리 씨는 지난달 설 연휴 고향인 우한을 찾았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도시 전체가 봉쇄되면서 발이 묶였다. [장리 제공]

한국 성균관대에서 유학중인 중국인 장리 씨는 지난달 설 연휴 고향인 우한을 찾았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도시 전체가 봉쇄되면서 발이 묶였다. [장리 제공]

지난달 6일 고향인 우한을 찾았다가 신종 코로나 창궐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 장리(張黎·26) 씨를 중앙일보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등으로 인터뷰하고 그의 최근 생활을 짚어봤다.

장은 산둥(山東)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2017년 3월부터 한국 성균관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석사 과정생으로 공부했다. 올해 2월 졸업을 앞둔 그는 광고업계에 취직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양질의 콘텐트와 우수 인력이 꾸준히 나오는 한국에서 유학하는 게 무척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가 올해 1월 우한에 돌아간 건 춘제(春節·설) 연휴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의 집은 우한 쟝샤구(江夏區)에 있다. 쟝샤구는 상주인구 91만명(2017년 기준)인 작은 지역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지금 장은 할아버지(79), 할머니(78), 고등학생인 사촌 남동생을 포함해 총 4명이 함께 지낸다. 부모님 댁도 있지만, 할아버지·할머니를 무척 따르는 그는 여름·겨울이 되면 조부모님 댁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다음은 그의 시점에서 정리한 일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국 우한의 한 의사가 소독받는 모습.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국 우한의 한 의사가 소독받는 모습. [AFP=연합뉴스]

1월 28일(화) 상점에선 "소독해야 하니 빨리 골라라" 

지난달 22일 중국 우한의 한 상점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물건을 사는 시민들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중국 우한의 한 상점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물건을 사는 시민들의 모습. [AP=연합뉴스]

1월 29일은 사촌 조카의 7살 생일이다. 28일 장난감을 사러 갔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트랜스포머를 사줬다. 원래는 늦게까지 하는 상점인데 요즘은 매일 5시면 문을 닫는다. 그 날 4시 반에 도착했는데 직원들이 "소독해야 하니 빨리 고르라"라고 재촉했다. 부랴부랴 가게를 나왔다. 조카네 집이 가까워서 선물도 주고 같이 놀았다. 생일케이크를 못 먹어서 좀 아쉬웠다. 케이크가 빵집에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괜히 사재기하는 것 같아서 안 샀다. 대신에 가게에 들러 감자 칩·라면·콜라·밀크티를 샀다. 동네에 열고 있는 가게도 별로 없다.

1월 29일은 조카 생일이라 28일에 장난감을 사러 갔다.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소독을 해야 하니 빨리 고르라고 재촉해 얼른 골랐다고 한다. [장리 제공]

1월 29일은 조카 생일이라 28일에 장난감을 사러 갔다.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소독을 해야 하니 빨리 고르라고 재촉해 얼른 골랐다고 한다. [장리 제공]

1월 30일(목) 모든 수업이 '인강'으로 대체됐다 

우한대 부속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사촌 동생은 요즘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학교는 중국어·수학·영어·역사·정치·지리 등 거의 모든 과목을 인터넷 강의(인강)로 대체하고 있다. 인강은 대충 들으면 그만일 것 같지만, 출석 체크는 의외로 확실하다. 수업 듣는 걸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 선생님이 계신 위챗 단톡방에 꼭 올려야 한다.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는 건 슬프지만, 공부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학교들이 모두 문을 닫아 사촌동생이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비록 수업은 못 가지만 학업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 [장리 제공]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학교들이 모두 문을 닫아 사촌동생이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비록 수업은 못 가지만 학업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 [장리 제공]

2월 3일(화) 명절 보내려 사둔 음식으로 일단 버텨

장리 씨의 할머니께서 집에서 요리를 하고 계시는 모습, 장리 씨는 할머니의 맛있는 요리 덕에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리 제공]

장리 씨의 할머니께서 집에서 요리를 하고 계시는 모습, 장리 씨는 할머니의 맛있는 요리 덕에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리 제공]

집에 갇혀 울적하지만, 할머니의 맛있는 요리가 있어 그나마 낫다. 할머니는 요리를 잘하신다. 오늘 먹은 건 당근과 소고기볶음, 배추와 볶은 라로우(소금에 절여 말린 훈제 고기요리·腊肉), 완두 고기볶음(豌豆炒肉), 연근 조림 요리(卤藕)였다.

음식 재료는 할머니가 설날 전에 많이 준비하신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원래 할아버지·할머니 두 분이 장을 보러 다니시지만, 지금은 밖에 못 나간다. 할머니는 이미 13일간 밖에 안 나가셨다. 할아버지도 산책 한 번만 하고 금방 돌아오셨다. 산책하던 사람들도 전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고 한다.

2월 4일(화) 슈퍼 가보니 동난 건 물만두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분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 우한에서 감염증에 걸린 환자를 이송하는 의료진의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우한 사람들은 아침을 꼭 먹는다. (※중국인들은 상당수가 아침을 집에서 해 먹는 대신 외부에서 사서 먹는다) 우한 사람들은 먹는 것을 굉장히 중시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 전에 백종원 씨가 진행한 TV 프로그램에도 우한의 러깐몐(熱干麵)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이제는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다 보니 시민들이 맛있는 식당 요리를 못 먹고 집에서 요리를 해 먹어야 해 슬퍼하고 있다.

오늘은 슈퍼에 갔다. 사재기하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냉동 물만두 코너는 인기가 많아서 동이 나 있었다. 물에 데치기만 하면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식사 대용으로도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직원 말로는 매일 새로운 상품이 들어온다고 한다.

2월 4일 오랫만에 들른 슈퍼마켓. 물만두 코너가 유독 동이 나 있었다. [장리 제공]

2월 4일 오랫만에 들른 슈퍼마켓. 물만두 코너가 유독 동이 나 있었다. [장리 제공]

2월 5일(수) 졸업식 취소돼 아쉬워…나중에 졸업식 열어줬으면 

5일은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었던 날이다. 하지만 이미 티켓은 다 취소됐다. 이번에 졸업을 하는지라 친구들이랑 같이 졸업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결국 졸업식(원래는 25일 예정이었음)도 취소됐다.

아쉽긴 하지만 모두의 건강을 위한 거니까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한에 있는 나로서는 이 바이러스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기에 이번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우한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중심이다. 사통팔달보다 한 차원 위의 ‘아홉 성을 연결하는 네거리’라는 뜻의 ‘구성통구(九省通衢)’라고 불린다.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우한에서 갈아타는 상황이 많아서 전염도 되기 쉽다. 우한에는 대학교도 많아서 사람의 이동이 많다 보니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교 측(성균관대)에서 나중에라도 졸업식을 열어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다. 졸업식이 취소돼 아쉬운 걸 만회하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본다.

요즘은 답답한 마음이 들면 위챗 방을 들여다보곤 한다. 친구들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러다 무료해지면 모바일 게임을 같이 한다. '너는 그리고 나는 맞춘다(你畵我猜)', '극본살(劇本殺)'처럼 머리를 많이 쓰는 추리게임, 배틀그라운드 같은 총 쏘기 게임도 있다. 7명이 같이 해야 하는 단어게임도 있다. 여러 명이 하니 함께 있는 느낌이다. 너무 많이 하면 게임 중독될까 봐 걱정돼 하루 30분만 하기로 했다.

하루에 드라마는 2~3시간 정도 본다. 미국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주로 본다. 한국 친구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해줬다. 한국에서도 마스크 사는 게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 부탁은 안 했다. 친한 형은 내 별명인 '니니(이름인 '리'를 편하게 부른 것)'를 부르며 조심하라고 해줬다. 많이 보고 싶다.

"니니, 마스크 꼭 써" ... 한국 친구들 응원 덕에 힘나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이 위챗으로 안부를 물어봤다. 걱정해줘서 많이 고마웠다. 보고 싶다. [장리 제공]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이 위챗으로 안부를 물어봤다. 걱정해줘서 많이 고마웠다. 보고 싶다. [장리 제공]

우한 상황은 엄중하긴 하지만 호전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 병원이 새롭게 지어졌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서 전해졌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또 지난 밤에는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던 환자들이 훠선산(火神山) 병원으로 이송됐다.

우한에서 앰뷸런스는 밤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밤에는 외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앰뷸런스가 이동하는 장면을 찍어서 공유해줬다.

환자들이 이송된 훠선산 병원은 확진 후에 치료를 해주는 곳이다. 이렇게 치료받는 환자들이 늘어나면 앞으로 호전될 사람이 늘어난다는 거로 해석할 수 있다. 호전되는 사람이 늘게 되면 병원들은 아무래도 진료하는데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각 성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상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각 성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상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리=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