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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당장 中 안오면 패널티" 中업체, 韓협력사에 '코로나 갑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당장 중국에 직원들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패널티를 주겠다"  

중국의 한 대형 디스플레이업체가 한국 협력(하청)업체들에 ‘코로나 갑질’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이 확산 중인데, 공장 증설 공사 기간을 당기기 위해 중국으로의 입국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업체가 디스플레이 생산 라인을 짓고 있는 지역은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확진자도 많은 곳이어서 국내 업체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 HKC, 한국 협력업체에 입국 강요 #세계 5~6위권 대형 디스플레이 업체 #쓰촨성, 코로나 사망자도 발생한 곳 #국내업체, 코로나 감염 우려에 전전긍긍 #

중국 우한에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새로 건설된 훠선산 병원으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우한에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새로 건설된 훠선산 병원으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코로나 감염 우려 큰데 중국 입국 강요"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형 디스플레이업체인 HKC는 춘절 연휴 직후 한국 협력사에 중국으로의 입국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의 A업체 관계자는 “HKC가 춘절 연휴 연장 기간이 끝난 3일부터 한국업체들에 엔지니어 등 추가 인원을 속히 보내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업체들이 고객사(HKC)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HKC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패널티를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다”며 “업체별로 한국인 직원 최소 5~6명, 중국인 현지 직원 20명 정도씩 현장으로 보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우한에서 멀지 않은 쓰촨성 면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우한에서 멀지 않은 쓰촨성 면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내업체 10여 곳 직원 면양에서 파견 근무  

HKC는 LCD(액정표시장치) TV 패널을 주로 만드는 곳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5~6위권인 업체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320억 위안(약 5조3500억원)을 투자해 8.6세대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라인을 착공했다. HKC는 쓰촨성 면양시에 디스플레이 생산라인(H4 프로젝트)을 증설중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 업체는 한화기계·LG PRI·탑엔지니어링·KC테크·제우스·나래나노텍 등 대·중소기업 10여 곳이다. HKC에 장비를 납품한 국내 업체의 엔지니어들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면양시에 파견돼 장비 셋업(setup) 업무를 진행해 왔다.

“춘절 연휴에도 수십명 남아 근무했는데” 

국내 협력업체는 하지만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춘절 연휴(1월 24일~2월 2일) 때 대부분 현장에서 철수했다. 한국업체뿐 아니라 미국, 일본 업체들도 본국으로 떠났다. B업체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협력사도 모두 철수한 상황인데 HKC가 한국 업체에 대해 새로 반입된 장비의 셋업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추가 인원을 계속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춘절 연휴 기간에는 한국인 30~40명이 현장에 남아 근무를 했다”고 전했다.

중국 HKC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 〈HKC 홈페이지 캡쳐〉

중국 HKC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 〈HKC 홈페이지 캡쳐〉

코로나 확산을 우려해 중국 정부가 공장 가동 중단을 권고하는 와중에 HKC가 한국업체의 현장 투입을 요구하는 것은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다. C업체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은 장비 반입과 셋업을 진행하는 데 보통 5~6개월이 걸린다"며 "3월 말로 예정된 시제품 출시를 위해 HKC가 다소 무리를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쓰촨성, 중국 31개 성 중 9번째로 확진자 많아  

국내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면양시 당국과 중국디스플레이협회 등에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D업체 관계자는 “중국 쪽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기업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는 이유 등을 대며 중국 관계자들이 현장에도 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중국 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쓰촨성은 중국 31개 성 중에서 9번째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이다. 3일 기준으로 23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1명이 사망했다.

"중국 가느니 차라리 사표를 내겠다는 직원도"  

국내 업체들이 불안을 호소하는 것은 현지 작업 환경 탓도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장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 직원들이 매우 많다”며 “중국 각지에서 오기 때문에 어느 지역 사람인 것을 몰라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를 설비하는 일이 많아 땀이 많이 나고 탈의실 등 밀폐 공간도 중국 현지인들과 함께 쓰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크지 않겠나”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협력업체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해 봤지만, 고객사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회사 내에서는 차라리 사표를 내겠다는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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