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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사건 골치 아파”···판사들의 서울중앙지법 기피현상

중앙일보

입력

판사봉 [중앙포토]

판사봉 [중앙포토]

오는 6일 예정된 지방법원 부장판사 및 고등법원 판사 정기인사를 앞두고 서울중앙지법 근무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늘 ‘1순위 희망지’였던 중앙지법 기피 현상을 두고 법조계에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형사사건과 언론의 시선을 끄는 사건들이 중앙지법에 다수 계류 중이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현재 중앙지법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재판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재판,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 등 국민의 관심이 큰 사건들이 쌓여 있다.

5순위로 밀린 서울중앙지법 근무

2~3년 주기로 근무지를 순환하는 대개의 판사는 한 근무지에 최장 3년을 머물 수 있다. 다만 재판부에서 한 사람이 2년 이상 재판장을 맡고 있다면 교체 대상이 된다. 중앙지법에서 근무하는 많은 판사가 3년의 근무를 채우고 싶어 한다. 자녀가 있는 경우 지방으로 전출되면 혼자 부임지로 내려가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게 되는 탓이다. 중앙지법뿐 아니라 서울 동·남·북·서부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판사도 마찬가지다.

법원 관계자는 “상황이 변했다”고 말했다. 정기인사를 앞두고 2년을 채운 많은 중앙지법 판사가 전출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울 동남북서 지법을 지원하면 중앙지법에 남게 될까 하는 우려 때문에 수원이나 인천 등 경기도에 위치한 지법을 1순위로 지원하는 판사들도 생겨났다. 고등법원 A 부장판사는 “중앙지법 지원자 수가 역대 최저”라며 “5순위 정도로 밀린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 부임지 목록 맨 위에 중앙지법을 써넣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뉴스1]

서울중앙지법. [뉴스1]

중앙지법 B 판사는 “서울에 남게 되더라도 가정법원이나 동·서부 지법 등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 적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밝혔다. 남부지법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접수된 정치적인 사건들이 많아 중앙지법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 C 변호사는 “논쟁이 되는 사건을 맡게 되면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수도승 같이 살아야 하지 않냐”고 반문하며 “요즘 판사들은 그런 걸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중앙지법에서의 근무년수를 채워 지방으로 전출될 차례의 판사들은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어 걱정이 없다”며 후련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판사 개인에 대한 비난과 신상 노출 점점 심해져

중앙지법에 계류 중인 중요 형사사건이 매일같이 언론에 보도되다 보니 민감한 사건을 맡은 판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져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결정으로 먼저 주목을 받은 명재권 영장전담판사는 조국 전 장관 동생 조모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다음 날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서 종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신상이 온라인에 퍼지게 되면 판사 개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비난을 함께 감수해야 한다. B 판사는 “배우자나 자녀가 온라인상에서 욕을 먹고 있는 아버지나 남편인 나를 보면 상처를 받더라”며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어 “재판 결과 등을 정치적으로 해석해 판사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지적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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