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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경쟁 ‘조조 래빗’ 감독 “살인의 추억은 인생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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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왼쪽)과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오찬 행사에서 만났다. [AFP=연합뉴스]

영화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왼쪽)과 봉준호 감독이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오찬 행사에서 만났다. [AFP=연합뉴스]

“봉준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내 인생 영화 톱 10에 든다.”

나치 소년의 눈으로 히틀러 풍자 #‘기생충’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폴리네시아계 유대인이 히틀러역 #이보다 더 히틀러 모욕할 수 있을까”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들의 오찬 자리에서 봉준호 감독 곁에 딱 붙어 팬심을 드러냈던 남자. 마블 히어로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를 연출한 뉴질랜드 출신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45)다.

위기에 처한 토르의 유머 넘치는 모험담으로 흥행에 성공한 그가 이번엔 10살 나치 소년의 눈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코미디 영화 ‘조조 래빗’(5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오는 9일(현지시간) 열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각색·편집·미술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봉 감독의 ‘기생충’과 겨룬다.

그는 1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봉 감독을 만나 보니)뉴질랜드와 한국은 공통점이 많더라”며 “우린 할리우드, 미국을 비슷한 시선으로 봤다. 팬 보이들처럼 대화하며 웃음을 나눴다”고 쾌활하게 말했다. 이어 “‘기생충’은 경쟁작이 아니다. 우린 서로 서포트하는 사이”라며 “(봉 감독 영화는)여러 장르, 시대, 분위기의 혼합이다. 무섭고도 재밌다”고 말했다.

영화 속 히틀러 소년단에 끼길 원하는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와 그의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사진 가운데는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를 연기한 와이티티 감독. [AP=연합뉴스]

영화 속 히틀러 소년단에 끼길 원하는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와 그의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사진 가운데는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를 연기한 와이티티 감독. [AP=연합뉴스]

무거운 주제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솜씨는 ‘조조 래빗’도 못지않다. 주인공은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사는 꼬마 조조(로만 그린핀 데이비스). 겁쟁이 토끼(rabbit·래빗)라 놀림 받으면서도 히틀러 소년단(유겐트)에 끼기만을 꿈꾸던 그는 자신의 집 안에 숨어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발견하고 서서히 변화한다. 아이의 천진한 시선에 녹여낸 2차 대전 풍광은 기존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경쾌한 소동 끝에 비수 같은 비극도 녹여냈다.

와이티티 감독은 2005년 단편 ‘타마 투’에서도 2차 대전을 다뤘다. 이탈리아에 파병된 뉴질랜드 마오리 병사들의 얘기였다. 아버지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 어머니는 아일랜드·스코틀랜드·영국 혈통의 유대계인 그는 히틀러의 인종주의적 파시즘이 빚은 광기의 역사를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영화 속 히틀러 소년단에 끼길 원하는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와 그의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AP=연합뉴스]

영화 속 히틀러 소년단에 끼길 원하는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와 그의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 [AP=연합뉴스]

“왜냐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이고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많은 젊은 세대, 밀레니얼이 계속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촬영 장소로 실제 오래전 독일 나치가 선전 영화를 만들었던 체코 프라하 외곽의 촬영소를 고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외계종족 코르그 역을 직접 맡는 등 배우로도 활동해온 그는 이번 영화의 각본·제작과 함께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 역도 겸했다.

“폴리네시아계 유대인이 히틀러 역을 맡는 것보다 히틀러를 제대로 모욕하는 일이 있을까?” 2년 전 ‘셀프 캐스팅’을 하며 트위터에 이렇게 쓴 그는 당시 해시태그도 ‘#F×××You Shitler’라고 붙였다. 엿 먹어라 똥틀러(똥(Shit)+히틀러(Hilter))쯤으로 해석될 법 하다. 영화 원작은 10년 전 그의 어머니가 권한 유럽 작가 크리스틴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이다.

영화엔 조조와 상상 속 친구 히틀러의 비밀 작전, 나치 소년들의 오합지졸 군사훈련 등이 거대한 전쟁놀이처럼 펼쳐진다. “충성스럽게 살고, 죽음을 거부하고 싸우며, 웃으면서 죽는다!” 당시 히틀러 소년단의 실제 구호였다.

와이티티 감독은 “아이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그 일부가 되기 위해 애썼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유대인 머리엔 뿔이 있다는 등의 나치 사상 주입을 받은 아이는 당시 800만 명이었다.

‘외모로만 봐선 유대인, 독일인을 구분할 수 없다’는 대사도 나온다.
“그게 영화의 포인트다. 누군가를 외모로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다. 또 주입식 교육을 받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8세, 5세 두 딸을 둔 그는 “지금도 어른들의 사상에 세뇌당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조조래빗’ 한 장면.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조조래빗’ 한 장면.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000대 1 경쟁을 뚫고 처음 연기에 도전한 영국 소년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엉뚱한 감수성과 함께 베테랑 배우 뺨치는 집중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엄마 로지 역의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재조명받았다.

연출과 연기를 겸했는데.
“그동안은 내 영화에서 편한 역을 맡아 즐겼는데,이번엔 아주 중요한 배역이라 부담이 컸다. 히틀러 독백 대사도 까먹었다. 그렇게 힘든 대사를 써놓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 연설 장면에서만 NG를 25차례 냈다.”

뉴질랜드에서 코미디언으로 출발한 그는 2004년 단독 스탠드업 코미디 ‘타이카의 놀라운 쇼(Taika’s Incredible Show)’로 전국 일주도 했다. 연출에 두각을 보인 건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하면서다. 2004년 도박장 앞 주차장에서 만난 세 아이의 대화를 엮은 단편 ‘주차장 어페어’는 아카데미 단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단편영화상 등을 받았다. 2010년 두 번째 장편 ‘보이’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후보로 주목 받았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잃지 않으려 한다. 60대나 70대가 꽃향기를 맡고 구름을 바라보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그런 것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시 아이가 될 수 있다면 세상에는 문제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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