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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이 된 교향곡…말러는 왜 중국의 시를 노래했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10) 

작곡가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에 인생의 철학과 발자취를 담았다. 말러는 삶의 의지와 목표, 종교적 세계관 등을 교향곡으로 표현했고 교향곡의 완성을 위해 가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가 가사를 사용한 교향곡 중에서도 걸작 ‘대지의 노래’는 특히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유는 이 교향곡에 등장하는 가사들이 동양의 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말러의 작품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이지만 가사가 있어서 두 명의 성악가가 등장하는 성악곡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두 명의 성악가는 한 악장씩을 교대로 노래하면서 깊은 인상을 던져준다. 소재의 참신함이나 정서적인 충일함에 있어서 단연 뛰어난 작품이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보헤미아 태생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사진 위키백과]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보헤미아 태생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사진 위키백과]

‘대지의 노래’에는 동양적인 인상들이 강하게 배어있다. 노래의 가사로는 중국의 여러 시들이 쓰였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중국의 시들은 염세적이고 허무에 찬 분위기를 풍기기도한다. 작곡가 자신이 이러한 시들을 갑자기 수용했기 때문에 작품의 시작과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과 의문이 제기된다.

‘대지의 노래’를 작곡할 당시에 작곡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페라 극장의 감독이었던 말러는 극장과의 불화 때문에 감독직에서 사임했으며, 사랑하는 딸 마리아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직격탄을 맞았을 때였다.

그런 시기에 한스 베트게라는 인물이 중국의 시 83수를 번안해 ‘중국의 피리’라는 시집을 내놓았다. 말러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에서 여러 개를 선택해서 작품의 가사로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피아노 반주로 연주하는 버전을 만들었으며 결국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교향곡으로 완성을 보았다. 이것이 한 시간 정도 연주되는 대작 ‘대지의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말러의 작품 ‘대지의 노래’에는 염세적이고 허무한 분위기들이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명상적인 분위기와 자아도취 같은 정서들도 표출된다.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서는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과 왕유의 시들이 등장한다. 첼로 소리가 낮게 깔리는 가운데 ‘해는 서산으로 지고’로 시작되는 맹호연의 시가 알토 가수의 목소리로 나온다. 이때 알토의 노래는 공허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한 편의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대지의 노래’에는 중국의 여러 시들이 노래가사로 쓰여 동양적인 인상들이 강하게 배어있다.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명상적인 분위기와 자아도취 같은 정서들도 표출된다.[사진 Pixabay]

‘대지의 노래’에는 중국의 여러 시들이 노래가사로 쓰여 동양적인 인상들이 강하게 배어있다.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명상적인 분위기와 자아도취 같은 정서들도 표출된다.[사진 Pixabay]

이 악장의 후반부에는 왕유의 시가 등장하는데 여러 악기들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간다네, 산속을 방황한다네’로 시작되는 노랫소리가 나온다. 곡의 마지막에서는 청초한 울림이 지속되고 가수가 ‘영원히’라는 가사를 노래하면서 작품이 끝이 난다.

말러 자신이 이 작품의 연주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음악의 역사에서 참으로 아쉬운 여운을 남긴 일이기도 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말러는 걸작 ‘대지의 노래’를 초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말러는 1911년 5월 18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해 7월에 멩겔베르크가 이 곡을 초연하려고 했지만 결국 초연을 하게 된 영광의 지휘자는 브루노 발터였다.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말러를 아끼던 여러 음악가가 뮌헨으로 달려와 이 작품을 들었다.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1911년 11월 20일 말러의 유작 ‘대지의 노래’가 초연된 뮌헨의 톤할레 극장은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날은 아쉬운 분위기에서 말러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유작이 연주된 날이었다. 작곡가는 공연장에 없었고 작곡가를 기억하는 이들이 ‘대지의 노래’를 연주했다. 말러의 예술성이 빛날수록 아쉬움이 더 컸던 공연이었다.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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