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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니스트의 눈

알고리즘 의존하는 일상이 이념 양극화 불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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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알고리즘 세상과 정치 양극화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방역 당국의 노력을 지켜보다 보니, 우리가 맞서 싸우는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공기 중 비말을 통해 전염되지만, 두려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서 확산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으로 ‘거대한 밀실’에 갇히는 신세 돼 #보수·진보 모두 입맛에 맞는 사람끼리만 소통 #양극화에서 벗어나려면 스마트폰 중독 줄이고 #정보 다양화하고 ‘읽으면서 생각하는’ 습관 길러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엄중함에 비할 수는 없지만, 필자를 포함한 정치학자들은 지난 수년간 스마트폰이 퍼뜨리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씨름해왔다.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며 백신 개발도 쉽지 않다. 그 정체는 스마트폰 속의 구글·아마존·페이스북에서 뉴스를 보고, 검색과 소통을 하는 이들은 모두 노출될 수 있는 분열과 양극화의 바이러스다.

스마트폰 속의 알고리즘이 주관하는 양극화 바이러스는 지난 여름 우리 사회에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분열의 함성을 드높이던 시민들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양극화의 성벽을 더 높게 쌓아 올렸다. 온라인에서 매일 수다를 떨고, 사진을 나눠보며 일상을 같이 하던 페이스북 친구들 몇몇을 우리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페친 삭제’했다. 괜찮은 친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태를 보는 눈은 너무 달랐고, 그런 이들과 늘 연결돼 있는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한국인 소통수단 1위인 카카오톡 대화방에서도 장벽 쌓기는 이어졌다. 고등학교 동기들 대화방에서 오고 가는 정치 대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보수 성향(혹은 진보성향) 동기들은 슬금슬금 카톡방에서 탈퇴하여 따로 톡방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이 필터링해주는, 이념 코드가 통하는 사람들과만 접속하고 소통한다. 우리는 두 개의 거대한 밀실 중의 하나에 갇히게 되었다. 그것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에코 체임버(반향실)라 불리는 거대한 이념의 성벽 안에서 우리는 입맛에 맞는 뉴스피드, 친구, 사진, 데이터에만 노출된다. 이미 우리를 파악하고 있는 구글은, 이를테면 진보성향의 누군가가 코로나바이러스 뉴스 검색을 하노라면, 섣부른 혐오를 경계하는 글이나 인도적 지원 뉴스부터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걸러주는 필터 버블의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

수십 년 전 처음 보급되었을 때, 알고리즘은 그저 계산을 빨리해내는 수학능력, 연산 프로세스에 불과했었다. 이제 알고리즘은 우리가 원하는 것, 편한 것, 친숙한 것들부터 검색해주고, 연결해주면서, 우리 인간을 두 그룹으로 재편하고 있다. 왼쪽이거나 혹은 오른쪽이거나.

알고리즘의 정치 양극화는 세계적 현상

스마트폰 속에 자리 잡은 알고리즘이 사회를 둘로 쪼개 놓는 일은 미국에서, 영국에서, 프랑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대통령 트럼프”의 온갖 분열적 트윗을 자기들끼리 리트윗하기 바쁘다. 한편 트럼프 비판자들의 포스팅에서는 헌법 파괴자, 진실 따위는 관심 없는 트럼프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 러시아 정보기관마저 뛰어들었다.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 1억 명 이상의 미국 유권자가 러시아 기관들이 만들어낸 트럼프 대 반트럼프 분열을 조장하는 콘텐츠에 노출되었다.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민주주의가 온다』 크리스 테노브 외 “Digital Threats to Democratic Elections”)

글로벌 위협으로서의 알고리즘 양극화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①실태: 스마트폰·노트북 안에 자리 잡은 알고리즘이 우리를 양극화로 분할해가고 있다면, 그 양상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②까닭: 한국·미국·영국에서 나타나는 알고리즘 양극화는 결국 사람들이 진실보다는 입에 바른말, 듣기 좋은 말에 현혹되기 때문인가? 정보와 판단을 알고리즘에 의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③대책: 우리의 24시간을 통제하면서 분열과 양극화의 세계로 몰아넣는 기계 알고리즘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있는가?

미국 가족이 반대성향 정당지지자와 결혼할 때 느끼는 분노(그림1)

미국 가족이 반대성향 정당지지자와 결혼할 때 느끼는 분노(그림1)

①기계 알고리즘에 포박된 시민들이 페이스북·카카오톡에서 거대한 끼리끼리 집단을 형성하는 동안, 알고리즘은 시민들을 급격히 양극화시켜왔다. 예컨대, 미국 보수 성향 시민들의 절반은 직계가족이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와 결혼한다면 화가 날 것이라고 응답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수치는 20%에 지나지 않았다. (그림1)

민주당·공화당 지지자 간, 갈수록 심화되는 이념 양극화(그림2)

민주당·공화당 지지자 간, 갈수록 심화되는 이념 양극화(그림2)

그림2는 지난 20여년간 미국 유권자들의 이념 양극화를 보여준다. 1994년에는 양당의 중위 지지자의 이념적 위치는 한 가운데로 수렴해 있었다. 또한 양당 지지자들의 절반은 이념성향이 서로 중첩되는 영역에 있었다. (그림2 왼쪽) 그러나 알고리즘의 지배가 노골화된 2017년 기준으로, 양당 중위 지지자의 간격은 좌우로 크게 벌어졌고, 양당 지지자의 이념적 중첩 영역은 1990년대보다 4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그림2 오른쪽)

②두 번째 질문. 왜 우리는 구글·페이스북·네이버가 24시간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의 계산에 따라서 친구를 맺기도 하고, 친구를 끊기도 하게 되었을까? 어쩌다 구글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검색 결과를 친구나 부모보다 더 믿게 되었는가? 카카오 내비게이션이 보여주는 이동 경로를 나의 숱한 경험과 시야보다도 신뢰하게 되었는가?

다소 철학적인 말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빠르고 유효한 계산과정으로서의 알고리즘을 단순한 기계로 받아들이는 단계를 넘어섰다. 우리는 구글·네이버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우리에게 최적의 답을 주고 최신의 정보를 분류해주고, 심지어 우리의 결정을 대신해주는 거대하고 전능한 컬처 머신으로써 신봉하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은밀한 사생활을 알고리즘과는 공유하고 마침내 알고리즘이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주게 되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라는 연산 프로세스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른바 계산적 우주로 진입하고 있다.

알고리즘 양극화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③사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계산적 우주의 세계는 단지 정치 양극화의 문제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리즘의 정치 양극화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대안들부터 먼저 살펴보자.

첫째 방법은 정보의 다양화 노력이다. 정치학자들은 하나의 온라인 미디어에 뉴스를 의존하는 사람들이 이념 양극화에 더 치우치는 반면, 다양한 매체에서 (당연히 종이 신문을 포함하여!) 정보를 얻는 사람들의 이념적 분화는 훨씬 덜 심각하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결국 우리가 가끔은 페북하는 시간을 줄여 신문과 잡지를 읽고, 스마트폰을 잠시 끄고 여러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 때, 양극화의 에코 체임버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 회복이다. 스마트폰을 꺼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지 신경과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정신없이 스쳐 가는 스마트폰 화면 대신에 우리가 천천히 종이책을 읽는 동안, 우리 두뇌의 비판적 사고능력을 관장하는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강조한다. 읽으면서 생각하는 습관은 출판·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후천적으로 발전시켜온 고작 100~200년 된 문화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생각하는 문화는 스마트폰 화면과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컬처 머신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결국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을 하루 종일 스크롤 하는 중독을 줄여나갈 때 우리는 알고리즘이 쌓아 올리는 양극화의 성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가 현기증 나게 진화 중인 알고리즘과 계산적 우주의 전모를 알기는 쉽지 않지만, 우선 알고리즘 세계의 브레이크는 밟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알고리즘

컴퓨터가 수행할 일을 순서대로 알려주는 명령어의 집합이다.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라 불리는 소형 스위치 수십억 개로 구성되고 알고리즘은 이들 스위치를 1초에 수십억 번씩 켜고 끄면서 계산을 하게 된다. 알고리즘을 자바나 파이썬 같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넣게 되면 흔히 컴퓨터 프로그램이라 불리게 된다.

장훈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