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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도전 하정우 "새해 목표는 오버·오지랖·조언 않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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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가 주연제작한 영화 '클로젯' 한 장면. 아내가 죽고 홀로 초등생 딸을 키우는 건축가 역을 맡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하정우가 주연제작한 영화 '클로젯' 한 장면. 아내가 죽고 홀로 초등생 딸을 키우는 건축가 역을 맡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지금 닥친 상황보단 열흘 뒤, 한 달 뒤, 1년 뒤를 생각하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려는 편이에요. 발광하고 대성통곡해도 상황이 변하진 않잖아요. 심호흡하고, 스트레칭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벗어날까.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을 늘 생각하죠.”

재난영화 단골 배우 하정우(42)는 평소에도 위기 상황에 침착한 편이라며 그 비결을 밝혔다. 새 공포 영화 ‘클로젯’(5일 개봉, 감독 김광빈)으로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재난영화 '백두산' 800만 돌파 이어 #첫 공포영화 '클로젯' 5일 개봉 #공포 못 보면서 제작까지 한 이유... #새해 목표는 "오버 말고 겸손할 것"

재난 단골 배우, 이번엔 싱글대디

새 공포 영화 '클로젯'으로 돌아온 배우 하정우를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새 공포 영화 '클로젯'으로 돌아온 배우 하정우를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더 테러 라이브’의 폭탄 테러, ‘터널’의 고속도로 터널 붕괴, ‘백두산’의 화산 폭발과 한반도 대지진…. 그가 스크린에서 맞선 재난들이다. 재난 규모가 커질수록 흥행 화력도 커졌다. 260억(총제작비) 대작 ‘백두산’은 지난해 12월 개봉해 한 달여 만에 824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과함께’ 1‧2편, ‘암살’에 이어 역대 그의 출연작 흥행 4위에 올랐다.

‘클로젯’은 그에 비하면 저예산 영화다. 순제작비 69억원(손익분기점 215만 관객).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그에게도 첫 공포영화다. 중앙대 동문 윤종빈 감독의 제작사 ‘영화사 월광’과 그의 영화사 ‘퍼펙트스톰필름’이 공동 제작했다.

'클로젯'은 집안의 벽장(closet‧클로젯)이 이계로 가는 통로가 되는 등 오컬트 장르 법칙에 충실한 영화다. 할리우드 작품에서 따온 듯 기시감 드는 설정도 보이지만, 토종 요괴 ‘어둑시니’ 와 술래잡기 하는 듯한 장면 등이 신선한 공포를 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클로젯'은 집안의 벽장(closet‧클로젯)이 이계로 가는 통로가 되는 등 오컬트 장르 법칙에 충실한 영화다. 할리우드 작품에서 따온 듯 기시감 드는 설정도 보이지만, 토종 요괴 ‘어둑시니’ 와 술래잡기 하는 듯한 장면 등이 신선한 공포를 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가 맡은 주인공 상원은 아내가 사고로 죽은 뒤 초등생 딸 이나(허율)와의 관계에 쩔쩔매는 아빠다. 이사한 집에서 딸마저 기이하게 실종되자 그는 자신을 찾아온 퇴마사 경훈(김남길)과 함께 딸을 찾아 나선다. 오컬트 장르에 충실하되 잔혹한 묘사보다는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해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공포영화 못 보면서 제작 투혼

하정우의 의외의 약점이 바로 공포영화를 무서워한다는 것. ‘주온’(2003)이 가장 최근에 본 공포영화일 정도다.

“‘클로젯’도 제가 찍지 않았으면 못 봤을 영화에요. 박지아 선배(무당 역) 장면은 같이 찍었는데도 (영화 보며) 또 무서웠죠.”

그럼에도 제작까지 겸한 이유는.

“소재가 재밌었다. 공포물을 해본 적 없기도 하고 좀 큰 영화, 시즌영화들 사이에 콤팩트하고 날렵한 영화, 재밌지 않을까. (7년 전 당시 신예 김병우 감독과 손잡고 이색 스릴러를 시도한) ‘더 테러 라이브’ 때 같은 맥락이었다. ”

공황까지 15종 리액션 "부성애 어려웠죠"

주인공 상원(하정우)과 딸 이나 역의 아역배우 허율. tvN 드라마 '마더'로 주목받은 허율은 촬영하지 않을 때도 하정우를 '아빠'라 부르며 부녀 호흡을 맞췄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주인공 상원(하정우)과 딸 이나 역의 아역배우 허율. tvN 드라마 '마더'로 주목받은 허율은 촬영하지 않을 때도 하정우를 '아빠'라 부르며 부녀 호흡을 맞췄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공황장애 발작 증세까지, 15종 리액션을 선보였다고.  

“쑥스럽다. 15종이 어딨겠나. 다 똑같은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인데, 감독의 연출 역량, 촬영, 조명 덕에 달라지는 효과가 있었다. 공황장애는 실제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표현했다. 공황에 걸려 바닥에 누워있을 때 천장 샹들리에, 벽이 다가오는 듯한 장면은 CG(컴퓨터그래픽)가 아니라 세트를 움직여 촬영했다.”

감독으로서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2015)에서 하정우(가운데)는 처음 부성애 연기에 도전했다. [사진 NEW]

감독으로서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2015)에서 하정우(가운데)는 처음 부성애 연기에 도전했다. [사진 NEW]

미혼인 그는 가장 까다로웠던 연기로 부성애를 들었다. 중국 작가 위화 원작으로 직접 연출까지 맡았던 ‘허삼관’부터 ‘터널’ ‘백두산’ 등 아버지 역할은 더러 해왔지만, 자식을 잃은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시사회 후 그는 “결혼한 친구들이 하나같이 자녀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하다더라. 그런 존재가 사라지면 세상이, 눈이 뒤집히겠다고 생각해서 그 마음에 최대한 온전히 집중했다”고 했다.

"소시오패스 같을까봐, 웃음기 걷어냈죠"

퇴마사 역의 김남길은 이번이 하정우와 함께한 첫 작품. 평소 두터운 친분 덕에 ’‘신과함께’ 안 봤느냐“ 는 등 애드리브 대사도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퇴마사 역의 김남길은 이번이 하정우와 함께한 첫 작품. 평소 두터운 친분 덕에 ’‘신과함께’ 안 봤느냐“ 는 등 애드리브 대사도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간 재난영화에서 쉼표 구실을 해온 특유의 여유는 걷어냈다. “제가 아닌 딸이 마주한 재난이잖아요. 가뜩이나 딸한테 말도 제대로 못 거는 초보 아빠인데 여유까지 부리면 소시오패스 같을 거라 생각했어요.”

tvN 드라마 ‘마더’에서 친모에 학대당한 아이를 연기한 허율(11)이 500대 1 오디션을 뚫고 상원의 딸 이나 역에, 그를 홀리는 악령 역은 영화 ‘미쓰백’ ‘우리집’으로 주목받은 김시아(12)에 낙점됐다.

영화 '클로젯'에서 주인공 상원(하정우)의 딸 이나(허율)가 그리는 괴이한 그림. 실제론 화가로도 활동 중인 하정우가 아이 같은 그림체로 그린 것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클로젯'에서 주인공 상원(하정우)의 딸 이나(허율)가 그리는 괴이한 그림. 실제론 화가로도 활동 중인 하정우가 아이 같은 그림체로 그린 것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하정우는 “피카소가 죽기 전에 다시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어린아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표현은 따라갈 수가 없더라”면서 “시아의 장롱 안 감정신은 그 한 장면만으로 폭발력 있고 울림이 컸다. 율이가 칼을 들고 다가오는 표정이 섬뜩했다”고 돌이켰다. 개봉 순서는 바뀌었지만 ‘백두산’에 김시아가 출연한 것도 그를 눈여겨본 이번 영화 제작진이 ‘백두산’ 팀에 프로필을 넘겨주며 성사됐단다.

김남길 "하정우 연기, 대충한다 싶었는데"  

하정우와 퇴마사 역 김남길은 작품을 함께한 건 처음이지만, 배우 주지훈 등 소개를 통해 가깝게 지내온 사이. “김남길은 굉장히 유연해요. 아무 생각 안 하면서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 같은데 (연기에) 벌처럼 쏘는 맛이 있는 친구죠.”

'클로젯' 촬영 중 주연 배우 하정우와 김남길. 공포 영화지만,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클로젯' 촬영 중 주연 배우 하정우와 김남길. 공포 영화지만,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는 수차례 전시회도 연 화가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서 상원이 사라진 딸의 방에서 발견하는 스산한 소녀 그림은 그가 직접 그린 것이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LG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논현 쇼룸'에서 열린 배우 하정우의 작품 전시회에서 하정우 씨가 자신의 그림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LG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논현 쇼룸'에서 열린 배우 하정우의 작품 전시회에서 하정우 씨가 자신의 그림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작자? 다 같이 으쌰으쌰 만드는 것"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싱글라이더’ ‘PMC: 더 벙커’ ‘백두산’에 이어 네 번째. 그는 “제작자라고 전문적인, 그럴싸한 느낌이 아니라, 다 같이 그냥, 으쌰으쌰한 것”이라며 “별 것 없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한 김광빈 감독이 CG(컴퓨터그래픽) 작업을 위한 그린매트 촬영에서 하정우, 김남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왼쪽부터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한 김광빈 감독이 CG(컴퓨터그래픽) 작업을 위한 그린매트 촬영에서 하정우, 김남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중앙대 출신인 김광빈 감독은 하정우가 주연 데뷔한 윤종빈 감독의 대학 졸업작품이자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 스태프로 참여한 인연. 이후 ‘모던 패밀리’(달라스아시안영화제최우수단편영화상), ‘자물쇠 따는 방법’(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판타스틱 단편 작품상) 등 가족 소재 단편으로 주목받았고 이번에 첫 장편 연출에 나섰다.

감독 "15년 전 하정우 형과 약속…"

“15년 전 형(하정우)한테 언젠가 작품을 같이하고 싶다 말했을 때 ‘당연하지, 너랑 같이하면 좋겠다’는 대답을 듣고 입대했는데 내무반에서 형이 스타가 되는 걸 보고 이게 나만의 꿈이 되겠구나 했었죠.” 시사회 때 김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다.

건축가인 상원은 아내가 죽은 뒤 중심을 잃고 건축가 일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건축가인 상원은 아내가 죽은 뒤 중심을 잃고 건축가 일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 때 동시녹음을 담당한 김 감독과 같은 일산에 살아서 퇴근길을 함께했다”면서 “나도 그때 아무것도 아닌 신인배우였고 함께 꿈을 나눈 순간들이 이번 작품으로 이뤄지게 돼 뭔가 해낸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정우 새해 목표 "오버하지 말자"

그는 충무로 정상급 흥행 스타다. 올해만 해도 강제규 감독의 ‘보스턴 1947’, 김성훈 감독의 ‘피랍’, 윤종빈 감독의 TV 드라마 도전작 ‘수리남’ 등 주연을 맡은 대작이 줄줄이 기다린다. “나에겐 배우가 1번이고 배우의 시각으로 시나리오를 읽고 해석하는 삶을 열심히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 경계선을 넘지 않고 순수하게 배우로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새해 목표”라 밝혔다.

“오버하지 말아야겠죠. 오지랖부리지 않고, 조언질하지 말고요. 후배들한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냐, 하다가 다음날 ‘아 쓸데없는 소릴 했구나’ 할 때가 있잖아요. 내 인생만 무겁게 보고 상대 인생을 가볍게 봤구나. 그러지 말아야겠다. 더더욱 책임감을 갖고, 헛나가지 않게, 겸손하게 작업해나가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하정우가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하정우가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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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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