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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도 명품이 있다…서핑 못해도 좋은 하와이 북쪽 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하와이 오아후 섬 '노스 쇼어'는 서퍼 사이에서 명품 파도가 찾아오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수준급 서퍼는 집채만 한 파도를 타고 서핑을 못하는 사람은 해안선에 늘어서서 그 모습을 감상한다. 최승표 기자

하와이 오아후 섬 '노스 쇼어'는 서퍼 사이에서 명품 파도가 찾아오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수준급 서퍼는 집채만 한 파도를 타고 서핑을 못하는 사람은 해안선에 늘어서서 그 모습을 감상한다. 최승표 기자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도착한 여행객은 대부분 와이키키 해변이 있는 동쪽으로 간다. 그러나 색다른 하와이를 만나고 싶다면 북쪽으로 가보자. 공항서 1시간 거리에 서핑 성지 ‘노스 쇼어(North shore)’가 있다. 서핑을 못 해봤다고? 상관없다. TV에서나 봤던 그림 같은 파도, 그 파도를 갖고 노는 서퍼를 구경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서퍼들이 만든 독특한 마을 정취를 느끼는 것도 북쪽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렌터카를 몬다면 라디오는 FM 105.1에 맞추시라. 하와이 전통음악이 나오는 채널이다.

차원이 다른 파도

하와이는 서핑 발상지다. 하와이에서 서핑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일부다. 와이키키를 비롯해 수많은 해변에서 파도를 탄다. 그러나 파도 질에도 등급이 있다. 초보는 와이키키처럼 순한 바다를 찾지만 서핑 매니아는 오아후 섬 북쪽, 바로 노스 쇼어를 동경한다.

반자이 파이프라인 해변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들. 겨울에는 4~5m 높이의 파도가 일어난다. 최승표 기자

반자이 파이프라인 해변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들. 겨울에는 4~5m 높이의 파도가 일어난다. 최승표 기자

노스 쇼어 해변 길이는 11.2㎞에 달한다. 바로 여기에 서핑하기에 좋은 ‘명품 파도’가 들이친다. 특히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파도의 질이 가장 좋다. 이 시기에 맞춰 반스, 빌라봉, 퀵실버 같은 서핑 브랜드가 서핑대회를 열고 전 세계 최상급 서퍼가 모여든다. 반자이 파이프라인(Banzai pipeline), 선셋 비치(Sunset beach), 할레이바(Haleiwa) 해변이 주 무대다. 초보는 범접할 수 없는 바다이지만 서핑을 한 번도 못 해본 사람도 찾아온다. 눈앞에서 서퍼들이 파도와 노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반자이 파이프라인은 세계적인 서핑 대회가 열리는 해변이다. 한국에선 태풍이 왔을 때나 볼 법한 파도가 들이친다. 최승표 기자

반자이 파이프라인은 세계적인 서핑 대회가 열리는 해변이다. 한국에선 태풍이 왔을 때나 볼 법한 파도가 들이친다. 최승표 기자

역시 큰 대회가 열리는 반자이 파이프라인에 서퍼가 많았다. 이름처럼 둥근 파이프 모양의 파도가 건물 2층 높이로 일어섰는데 서퍼들은 그걸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자세히 보니 초등학생, 허리 구부정한 노인도 있었다. 장난감 사달라고 부모를 조르는 모습이 어울릴 법한 꼬마들이 구름 타듯 파도에서 놀고 있다니.
해 질 녘 할레이바 해변에서는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에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관광객만 이 풍경을 넋 놓고 놨고 서퍼들은 해가 넘어간 뒤에도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할레이바 해변. 초등학생 어린이부터 허리 구부정한 노인까지 서핑을 즐긴다. 최승표 기자

할레이바 해변. 초등학생 어린이부터 허리 구부정한 노인까지 서핑을 즐긴다. 최승표 기자

낮잠 자는 푸른바다거북

노스 쇼어에는 숙소가 많지 않다. 그마저도 대부분 비앤비, 호스텔이다. 대형 리조트는 딱 하나 있다. 터틀 베이 리조트. 하와이의 전설적인 서퍼인 ‘한스 히데만’이 운영하는 서핑학교가 이 리조트에 있다. 강습을 신청해봤다. 강원도 양양에서 몇 번 서핑을 배웠지만 실력을 키우지 못했다. 한 마디로 생초짜다.

터틀베이 리조트 인근 해변에서 서핑을 배웠다. 파도가 높진 않았지만 밀어주는 힘이 상당했다. [사진 한스 히데만 서핑 학교]

터틀베이 리조트 인근 해변에서 서핑을 배웠다. 파도가 높진 않았지만 밀어주는 힘이 상당했다. [사진 한스 히데만 서핑 학교]

파도가 잔잔한 리조트 옆 카웰라 베이 해변으로 갔다. 강사 ‘조’가 기본 동작을 알려줬는데 한국서 배운 것과 다르진 않았다. 파도가 1m 이하로 낮은 편이었는데도 밀어주는 힘이 상당했다. 몇 차례 연습하고 나니 일어선 채로 50m 이상 파도를 탈 수 있었다. 노스 쇼어가 서핑 성지로 불리는 까닭을 물었더니 “월드 클래스 웨이브!”라고 답한 조의 말을 수긍할 수 있었다.
노스 쇼어에서는 서핑만 하는 게 아니다. 스노클링 하기 좋은 바다가 있는가 하면 바다거북이 출몰하는 해변도 있다. 서퍼가 거의 없는 어느 해변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가 가보니 어른 몸뚱이만 한 푸른바다거북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마침 ‘거북이보호재단’에서 일하는 데비 헤레라가 있었다. 그는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이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해변은 세계적으로 희귀하다”며 “3m 이상 거리를 두고 조심히 관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스쇼어에서는 백사장에서 잠자는 푸른바다거북을 볼 수도 있다. 3m 이상 거리를 두고 관찰하길 권한다. 최승표 기자

노스쇼어에서는 백사장에서 잠자는 푸른바다거북을 볼 수도 있다. 3m 이상 거리를 두고 관찰하길 권한다. 최승표 기자

거북을 만난 바다를 밝힐 순 없다. 하와이 정부 방침에 따라서다. 거북을 보는 건 괜찮지만 언론을 통해 장소를 공개하진 말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노스쇼어에는 비좁은 왕복 2차선 해변도로가 있는데 거북 출몰지 주변은 주차장이 협소하고 교통사고도 빈번하단다. 물론 바다거북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을 테다.

서퍼들이 일군 문화, 그리고 맛

 작은 갯마을인 할레이바는 개성 넘치는 서핑 숍, 갤러리, 카페가 많다. 전설적인 레게 가수 밥 말리 벽화가 새겨진 서핑 숍의 모습. 최승표 기자

작은 갯마을인 할레이바는 개성 넘치는 서핑 숍, 갤러리, 카페가 많다. 전설적인 레게 가수 밥 말리 벽화가 새겨진 서핑 숍의 모습. 최승표 기자

이 동네는 해변을 빼면 산악지형이다. 할레이바, 와이알루아(Waialua) 정도가 가볼 만한 갯마을이다. 사탕수수 농업이 번성하던 때 지은 낡은 건물에 서핑 숍, 갤러리, 카페가 들어선 모습이 이채롭다. 여행객은 푸드 트럭에서 파는 하와이식 새우 덮밥, 무지개 아이스크림을 꼭 사 먹는다. 사탕수수 공장을 개조한 ‘올드 슈가 밀’도 유명하다. 인근 농장에서 재배한 커피를 파는 카페와 빈티지 숍이 옛 공장 터에 들어서 있다.

하와이 명물인 새우 덮밥.

하와이 명물인 새우 덮밥.

노스 쇼어에는 갤러리가 유난히 많다. 하와이의 자연과 서핑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해 한국서 전시회를 연 ‘헤더 브라운’에 이어 여러 화가가 한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 서핑 인구가 늘면서 문화, 예술 분야까지 서핑의 파급력이 미치고 있어서다.

와이알루아에 공방을 두고 있는 ‘웰지(Welzie)’를 만나봤다. 서프보드 디자인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가 만든 보드에는 만화처럼 귀엽게 묘사한 물범과 거북, 하와이의 꽃과 나무들이 새겨져 있다. 웰지는 “하와이에서 서핑하다 보면 물범과 거북을 자주 만난다”며 “조만간 한국에서도 서핑을 즐기며 한국 서퍼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노스 쇼어 서퍼에게는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대체 뭘까? 웰지에게 물었다.
“서퍼는 늘 파도만 바라보며 삽니다. 그리고 좋은 파도가 찾아오면 만사 제치고 달려나가죠. 그렇게 파도에 열광하는 사람은 누구든 격의 없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부자든 그림을 그리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노스 쇼어 공방에서 작업 중인 화가 '웰지'. 그는 하와이의 자연과 서핑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올해 한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최승표 기자

노스 쇼어 공방에서 작업 중인 화가 '웰지'. 그는 하와이의 자연과 서핑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올해 한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최승표 기자

노스 쇼어(미국)=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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