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있어야 물어보지, 우한폐렴에 농촌은 속탄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01 15:00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63)

경자년 새해가 밝아 떡국을 먹고 친지들과 만나고 아이들에게 세뱃돈으로 허세를 부린지 며칠이 지났다. 설날 명절은 시끄러운 듯 조용하게 지나갔다만 지금은 우한 폐렴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초비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알려진 중국 우한은 도시가 봉쇄될 정도다.

농촌은 우한 폐렴과 같이 신종 바이러스가 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10년 전의 사스와 신종 플루의 악몽과 함께 몇 년 전 메르스 사태를 돌이켜 볼 때 전염병은 의료적 문제를 넘은, 생계가 무너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의료적 문제도 심각하다. 만에 하나 감염이 되는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가 도시보다 훨씬 적은 것은 사실이자 현실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농장 안에 지역의 병원과 소방서, 보건소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서 붙여 놓고 산다. 혹시나 하는 위기 상황에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즉시 연락해 달라는 의미이다. [사진 piqsels]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농장 안에 지역의 병원과 소방서, 보건소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서 붙여 놓고 산다. 혹시나 하는 위기 상황에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즉시 연락해 달라는 의미이다. [사진 piqsels]

농촌에 있으면 사람 간의 이동과 접촉이 적기 때문에 이런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도시보다 적다. 그러나 안심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질병에 노출되었는지 안전한지 확신하지 못해 불안하다. 의사가 가까이 있어야 물어볼 것이 아닌가. 병원이 멀다. 평소에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정기적으로 가긴 하지만 낯선 증세가 나타나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가끔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수습에 한참 걸린다. 한참 만에 온 구급차는 사고자를 싣고 가지만 제때 병원에 도달할지 모르겠다. 멀어도 한참 멀기 때문이다.

요즈음 이국종 교수와 병원장과 갈등으로 중요성이 새롭게 나타나는 권역외상센터는 큰 도시마다 있어서 시골 사는 이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다. 물론 인구가 집중된 곳에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광역권역에 꼭 1개만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강원도에는 원주에 위치하니 대관령 너머 영동지방 사람은 난감하다. 물론 권역 응급의료센터는 춘천과 강릉에 있어 급한 환자를 처리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멀다. 권역 응급의료센터는 전국 29개 권역 40개소가 지정되어 있다.

농촌 사람은 집 안에 지역 병원과 소방서, 보건소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 붙여 놓고 산다는 것을 아는가. 혹시나 하는 위기 상황에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즉시 연락해 달라는 의미이다. 농촌 관광 손님을 맞이하는 농장과 농가 민박은 비상연락처 비치가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그만큼 농촌은 의료 사각지대다.

농촌은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돼지 전염병인 ASF와 싸우고 있었는데 사람 전염병인 우한 폐렴까지 들이닥치니 난감하다. 한 양돈농가에서 방역당국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농촌은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돼지 전염병인 ASF와 싸우고 있었는데 사람 전염병인 우한 폐렴까지 들이닥치니 난감하다. 한 양돈농가에서 방역당국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귀농·귀촌 인구가 증가세에서 정체 상태라고 한다. 귀농·귀촌을 활성화하려고 지자체와 정부가 더 고민하고 있지만, 농촌 인구의 상당수가 중년과 노인 계층임을 고려할 때 의료 시설 확충은 절대적인 요구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아이를 가져도 산모와 태아를 보살필 산부인과는 농촌에서는 찾기가 어렵고 분만을 할 수 있는 병원은 아예 없어 아이를 낳으려면 도시로 잠시 이주해 있어야 한다. 해마다 불어오는 미세먼지는 밖에 나가 일하는 농민의 폐를 망가뜨리는데 어디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몰라 넘어간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열사병을 일으켜 밭일하던 노인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산에 가서 나물 캐다, 버섯 따다 미끄러져 떨어졌다가 겨우겨우 소방대를 불러 살아났다는 농민은 등산객보다 더 많다.

농촌은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돼지 전염병인 ASF와 싸우고 있었는데 사람 전염병인 우한 폐렴까지 들이닥치니 난감하다. 그래도 우한 폐렴은 곧 통제되리라 믿고 있지만 살처분당한 접경지대의 돼지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 미안한 마음이 많다. 사람처럼 가축도 대책을 세우고 평소에 관리했다면 살처분만큼은 안 했을 텐데 말이다.

연휴 내내 응급실 드라마와 우한 폐렴 뉴스를 번갈아 보면서 제발 중국 우한 사람들이 무사히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아픈 사람들이 낫기를 바라는 기원과 함께 지방에 좀 더 나은 의료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야 마음 놓고 농촌살이를 권할 것이 아닌가.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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