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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코로나도 맞짱 뜬다···대륙이 환호한 84세 몸짱할배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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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84세의 중난산(鐘南山)중국공정원 원사(院士·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학자에게 주는 명예 칭호)입니다. 그는 폐 호흡기 질환 전문 의학자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해 전 세계에 사스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때도 최일선 #3대가 의사 집안…고교시절 400m 달리기 중국내 1위 기록도

중난산은 사스가 발생했을 당시 광저우(廣州) 호흡기질환 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가장 위중한 환자를 내게 보내라”고 요청해 연속 38시간 동안 응급환자를 치료해 중국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걸린 채 중국으로 출국한 한국인 K씨를 진찰한 것도 중난산이었습니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이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다년간 호흡기 질환 분야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그입니다.

사실 사스 위기 이후 그가 제시했던 공중보건 개혁안만 철저하게 실행이 됐어도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BBC에 따르면 중난산은 이미 2006년 "중국의 야생동물 시장을 없애는 게 시급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위생관리가 매우 부실하며 새로운 감염원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경고가 현실적인 조치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국 호흡기 질환의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이 "우한은 원래 영웅의 도시다. 우한은 이번 사태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화통신]

중국 호흡기 질환의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이 "우한은 원래 영웅의 도시다. 우한은 이번 사태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화통신]

온갖 루머가 난무하는 가운데 믿을 만한 정보는 중난산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게 현지 반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현재 중국에서 최악의 유언비어는 "중난산이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것이랍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안 보이면 불안한 중국인들은 '중난산 최신 인터뷰' 등을 검색해봅니다. 최근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현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코멘트를 했습니다. 차분한 설명을 이어가던 그는 영상 인터뷰 말미에 "우한은 원래 영웅의 도시다. 우한은 이번 사태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울먹였습니다. 이 말은 곧바로 화제가 돼 '중난산 울먹임' 등이 검색어 상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한은 영웅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장입니다. 한족(漢族)의 영웅 악비(岳飛)가 금(金)나라 여진족에 항전했던 주둔지도 이곳입니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지키던 '형주(荊州)'로 잘 알려진 징저우가 우한 근처입니다. 삼국지 속 영웅호걸들의 무대였던 적벽대전의 '적벽(赤壁)'도 우한시 부근입니다.

1월 18일 중난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우한으로 가는 밤 열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쑤웨밍 촬영]

1월 18일 중난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우한으로 가는 밤 열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쑤웨밍 촬영]

최근 중국공산당의 사정·감찰 총괄기구인 중앙기율검사 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중난산, 그 사람'이란 글이 게재됐습니다. 중난산은 "다른 이에게는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우한에 가지 말라고 당부한 뒤 정작 본인은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을 향해 가는 '역행자(逆行者)'"라고 묘사됐습니다. 고령에도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현장에 뛰어든 것이지요.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다시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지난 18일 밤 열차로 우한에 들어가는 중난산이 잠시 눈을 붙인 모습은 중국을 울렸습니다.

1936년 난징(南京)출생인 그는 베이징의학원(현재의 베이징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영국 에든버러 의과대학교에서 유학한 경험도 있습니다.

아버지·본인·아들까지 3대가 의사인 의료인 집안입니다. 아버지 중스판(鐘世藩)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였으며 어머니 랴오위에친(廖月琴)은 광둥성 종양 전문병원의 설립자 중 하나입니다.

중난산의 가족 구성을 정의하자면 '의료와 스포츠'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내 리샤오펀(李少芬)은 농구선수 출신입니다. 아들 중웨이더(鐘帏德)은 비뇨기과 의사이면서 의사협회 소속 농구팀에서 선수로 뛰었습니다. 딸 중웨이위에(鐘帏月)는 1990년대 수영선수로 맹활약했습니다.

중난산 본인도 대단한 스포츠맨입니다. 1959년 베이징시 고교 운동회에서 400m 달리기에 출전한 그는 54.4초라는 기록으로 중국 내 1위를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그는 건강관리에 철저한 걸로 유명합니다. 70대에 가졌던 언론 인터뷰에서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몸짱'인 그가 탄탄한 근육을 선보이며 아령을 들고 있거나 농구 코트를 누비는 사진이 돕니다.

고령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중난산. [바이지아하오]

고령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중난산. [바이지아하오]

중국인들에게 중난산은 '국민 의사' 같은 존재입니다. 지난해 8월 31일 싱가포르에서 광저우로 가는 비행기에 탄 승객이 자녀가 아파서 쩔쩔매던 차에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던 중난산이 아이를 진료해줬다는 '미담'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9살 짜리 남자아이가 갑자기 얼굴과 몸이 붉게 부어오르면서 고통을 호소하자 중난산이 나서서 아이를 치료해줬다는 겁니다. 적절한 치료로 아이는 무사했습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환자와 함께하고, 환자를 위기에서 구해 안전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자로 유명한 그가 치료 현장에 뛰어들고 후학 양성에도 적극 나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광저우 의학원에서 학생 32명을 선발해 '난산 클래스(반)'를 만들고 직접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될 사람은 1학년 때부터 아픈 이들을 직접 접해야 한다"면서 "중국 의학계에 실용적으로 기여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일 우한시 의료진이 첫 감염자를 확인한 지 어느덧 두 달여가 지났습니다. 지금도 중난산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또 한 번 바이러스 퇴치의 영웅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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