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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방? 미국의 돌변···유럽은 돈 걱정에 밤잠 설친다

중앙일보

입력

미 공화당 전당대회(RNC)에서 한 공화당 지지자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옹호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공화당 전당대회(RNC)에서 한 공화당 지지자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옹호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그동안 세계에서 해왔던 역할을 그만둘 가능성을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토로한 말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선회하면서 유럽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2020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런 신고립주의 정책 기조는 더 강해질 전망이다.

특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분담금 문제와 중동 및 서아프리카에서의 미군 철수 등의 안보 문제와 자동차세·디지털세 등의 무역분야에서의 충돌이 예상된다. 보복관세 등 전면전을 불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 앞에서 미국과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긴밀한 협력을 해온 유럽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

◇EU·영국 모두 "미국 없는 안보 준비해야"  

프랑스는 새해 시작부터 서아프리카에서의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프랑스가 주도해온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의 대테러작전에서 미국이 철군하려는 움직임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됐기 때문. 미국의 군사자원과 병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던 프랑스는 당혹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3일 프랑스 남서부의 소도시 포(Pau)에 아프리카 사헬지대 5개국 정상들을 불러 회담을 한 뒤, 미군 유지를 호소하는 공동 성명을 주도해 발표했다.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도 워싱턴을 직접 방문해 철군을 막기 위한 설득 작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등 미군 수뇌부들이 공공연하게 미군의 '세계 군사 재배치'를 언급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노력이 어느 정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2일 서아프리카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를 방문해 IS의 공격으로 숨진 니제르 군인을 추모하며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의 대테러작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2일 서아프리카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를 방문해 IS의 공격으로 숨진 니제르 군인을 추모하며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의 대테러작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벨 윌리스 영국 국방장관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시리아 철군을 결정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가 중동의 평화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미국이 이렇게 거리 두기를 하는 상황에서 향후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국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윌리스 장관은 "2010년 우리는 미국이 언제나 우리의 동맹일 것이라 가정했지만, 이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미래와 다르다"며 "우리는 미국의 정보·감시·정찰 자산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데, 이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 독일 최고 권위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2020년 세계에서 독일의 역할을 다룬 기사를 통해 "고립주의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민주당 좌파 진영에서도 동의하는 정책 기조"라며 "독일처럼 잘 사는 나라가 국방비로 GDP의 2%밖에 지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미국 전체가 불만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라크에서의 IS와의 전쟁을 비롯해 이제 미국이 없는, 우리 스스로 대응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2월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에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압도적인 힘으로 북한에 대응하겠다“며 북한 비핵화 의지를 피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재천명했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2월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에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압도적인 힘으로 북한에 대응하겠다“며 북한 비핵화 의지를 피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재천명했다. [UPI=연합뉴스]

이처럼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EU 내에서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앞서 2017년 12월 영국, 덴마크, 몰타를 제외한 EU 25개 회원국은 ‘상설구조적 협력(PESCO)'의 도입을 합의했다. PESCO는 유럽연합의 공동안보방위정책(CSDP) 강화·확대가 목표이며, 이에 따라 EU 국방예산의 20%를 역량 예산에 배정하고 2%를 국방연구와 기술에 투자한다. 이를 관장하는 유럽방위청(EDA)의 예산과 기능도 확대했다.

◇유럽과의 무역 전쟁 시동…브렉시트 선언한 영국은? 

미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EU와도 새로운 무역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6월 새로운 무역협상 추진 발표 후 트럼프 대통령은 BMW, 폭스바겐, 다임러 등 독일 자동차 3사 경영진과 만나 미국에서 생산을 확대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러스트벨트'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독일산 수입차에 대한 협상에 많은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이 협상이 독일 개별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EU 차원의 문제여서 향후 미국-EU 무역분쟁이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2018년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한 뒤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쥐고 흔들어 화제가 됐다.[AFP=연합뉴스]

2018년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한 뒤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쥐고 흔들어 화제가 됐다.[AFP=연합뉴스]

미국은 최근 프랑스와는 '디지털세'로 신경전을 벌였다. 프랑스는 글로벌 정보ㆍ기술(IT) 기업들을 겨냥해 프랑스 내 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부과하기로 했다. 현실적으로는 구글ㆍ애플ㆍ페이스북ㆍ아마존 등 미국 업체들에 세 부담이 집중되는 만큼 미국은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미국의 보복관세 유예에 이어 프랑스도 디지털세 부과를 1년간 보류하기로 결정해 양국 조세·통상 갈등이 휴전 국면에 들어섰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과 달리 유럽과는 정치, 외교, 안보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역 전쟁이라기보다는 협상을 통한 무역관계 재설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포인트는 최근 '브렉시트'를 진행 중인 영국이다. 만일 영국과 EU가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미국과 중국 등 기존에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지 않은 국가는 영국 수출경쟁력이 더 높아져서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은 이에 따라 미국과 개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대미 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웃는 자, 그는 러시아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웃는 유일한 유럽 국가가 있다면 그건 러시아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의 부재를 틈타 중동에서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이란을 적대하고 사우디를 일방적으로 지지했던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갈등의 두 축인 중동의 패권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오가며 정치, 군사ㆍ안보·경제 분야에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야를 방문해 살만 국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야를 방문해 살만 국왕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2년 만에 사우디를 방문한 날, 미국은 시리아 주둔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실용적 국익을 명분으로 쿠르드족을 사실상 외면하면서 결과적으로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은 더 커지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첫 해외 방문지로 시리아를 선택하면서 중동에서 새로운 '맹주'가 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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