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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경실련 새 상임집행위원장, 황도수 건국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 “NGO는 이념과 진영의 2중대 되면 안 돼”
■ “정권 감시 포기한 시민단체는 존재할 이유 없어”
■ “총선에서 현역 의원 90% 떨어뜨려 국회를 탄핵할 것”
■ “주거 보장은 국가의 책무, 공공주택 늘리고 정책 세율 높이자”

황도수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권력 분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 사진:지미연 기자

황도수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권력 분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 사진:지미연 기자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을 놓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다른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가 침묵할 때 제 목소리를 낸 건 경실련이 거의 유일했다. 올해는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펼쳐진다.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시민사회는 민주 대 반민주, 개혁대 반개혁의 구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올해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경실련은 기존 정당에 예속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선거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이른바 ‘국회 탄핵’이다.

커버 스토리 - 파워 인터뷰 #“文 정부, 진보 아닌 기득권 유지 정권으로 변질”

그 중심에 황도수(60·사법연수원 18기) 건국대 법학과 교수가 있다. 올해부터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월 9일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황 교수는 헌법학자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다. 진영을 떠나 법률과 원칙에 부합하느냐를 중심에 두고 사리를 판단한다. 그래서 때론 다소 현학적이지만, 자유분방하기도 하다. 인터뷰 전날 법무부의 검찰 고위직 인사가 단행됐다. 개방직인 감찰본부장을 제외한 대검찰청 참모 전원이 교체됐다. 자연히 검찰 인사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검찰 고위직 인사를 두고 ‘학살’이란 표현마저 나온다. 불과 6개월 전까지도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신뢰가 상당했던 걸 돌아보면 엄청난 반전이다.

“한심하다. 누굴 위해서 한 건지 모르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싶다. 윤 총장은 나와 대학 동기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나쁜 놈은 잡아넣는 게 검찰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게 검찰의 역할이 맞다. 대통령이 그걸 충분히 이용했어야 했다.”

적폐 청산 과정에서 충분히 검찰을 활용하지 않았나?

“대통령의 측근 중에 나쁜 사람을 걸러내야 운용할 때 더 문제가 안 생긴다. 측근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중에 나쁜 놈은 걸러내야 한다. 내 측근이니까 잘못이 있어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근시안적이다. 윤 총장 같은 사람을 잘 활용했으면 정말 멋있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 국면에서 두 기관을 총지휘하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검찰을 적대적으로 보는 것 같다. 트라우마에 빠져 있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적폐 청산과 다른 개혁 조치들을 동시에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나 답답하다. 임기 절반을 기다리고 보니 정치적 기득권을 옹호하는 집단일 뿐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건 결국 보수란 의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입법으로 개혁 과제도 어느정도 성과를 내지 않았나?

“공수처를 하는 의미는 권력 분립에 있다. 하나보다 둘이 권력을 나누는 게 낫다. 하나가 쥐고 있으면 통제가 쉽다. 둘이 되면 그만큼 통제가 어렵다. 하지만 공수처는 완벽한 모델이 아니다. 그보다 공수처 검사들의 성향을 다양화하는 공수위원회가 더 적절하다.”

“검찰 활용해 잘못된 측근 걸러냈어야”

2004년 2월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총선시민연대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낙천낙선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4년 2월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총선시민연대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낙천낙선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수처와 공수위의 차이가 뭔가?

“예컨대 우리나라 사법부가 이만큼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건 헌법재판소와 분리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가 대법원과 헌재 기능을 독점하는데, 이원화되어 있는 우리 구조가 훨씬 우수하다. 서로 싸워서 티격태격하듯 보이지만 국민으로선 그럼으로써 얻는 게 아주 많다. 공수위의 위원들은 각자가 독립적인 수사검사위원이다. 기소 여부는 위원회가 결정하고 수사는 각자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분위기에서 위원들은 국회에서 여야가 나눠 먹을 거다. 그러면 야당 검사가 늘 두세 명은 있게 된다. 이들의 존재만으로 대통령이나 외부 권력이 함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황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예를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헌재의 경우 정부가 하는 일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밖에 안 한다. 대통령 입장에선 통제하고 싶어 죽겠지만 그렇게 못 한다. 그곳에 야당 출신 헌법재판관이 한두 명은 꼭 들어가 있어서다. 잘못 건들면 탄핵 사유가 된다. 대법원과 달리 헌재는 소장의 권한이 거의 없다. 재판관들이 각자 들어온 사람들이어서 합의체 기관으로서 각자의 독립성이 잘 보장된다. 공수위를 헌재와 같은 모델로 간다면 어떨까. 국민 입장에서 무엇이 옳은지 너무 빤한 것 아니냐. 그런데 정치인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이런 걸 외면한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현실화했다. 권력이 더 분할됐으니 국민에게 이로운 일 아닌가.

“반대한다. 권력 분립의 취지에 오히려 역행한다. 경찰은 조직이 비대하다. 검찰과 비교할 수 없다. 거기에 수사권까지 얹어주는 건 권력 분산이 아니라 권력을 더 키우는 거다. 국민 입장에서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수사권을 주기 전에 먼저 경찰의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부터 고민했어야 했다. 검찰과 권력을 나누는 건 그다음 일이다.”

이 모든 게 검찰의 힘을 빼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누굴 위해서 하는 거냐고 묻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복수냐, 국민을 위한 거냐.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을 찾지 않는다는 거다. 정권을 잡기 위해 뭉친 골수들뿐이다. 정권을 잡기 전에는 인적 자원이 같은 무리밖에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정권을 잡고 나면 쓸 수 있는 자원은 국가 전체로 넓어진다. 그런데 원래 가진 자원만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으니 문제가 자꾸 생기는 거다.”

화제를 총선으로 바꿨다. 황 교수는 다가오는 4월 15일 총선을 기득권 정치 지형을 바꿀 일대 기회라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민이 갑이 되는 사년장(四年場)’이 서는 것이다. 과거에도 경실련 등의 시민사회진영이 선거 국면에서 정치개혁의 전면에 나서왔지만, 이번에는 결이 다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예년의 총선과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선거 상황이 바뀌었다. 전에는 야당을 밀어줘서 정부나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거나, 여당을 밀어줘서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식이었다. 지금 국민 정서는 이런 패턴과 상당히 다르다.”

관성대로 주던 표, 이번엔 떨어뜨리는 데 쓴다

경실련은 범진보 진영 시민사회단체들 중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거의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 사진:경실련 홈페이지

경실련은 범진보 진영 시민사회단체들 중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거의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 사진:경실련 홈페이지

어떻게 달라졌나.

“대개 정권 임기 중반의 선거는 정권심판론이 나온 경우가 많았다. 이 법칙을 따르면 자유한국당을 찍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유한국당이 워낙 못하니까 찍어줄 수 없는 상황인 거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찍지도 못하겠다는 게 중도 성향 국민 여론이라고 본다.”

할 수 없이 여든 야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않나.

“그걸 이번에 막아보겠다는 거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할 수 있는 것,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유일한 기회는 선거뿐이다. 국민투표나 국민발안제 등의 제도는 국회와 대통령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본질에서 직접민주주의로 보기 어렵다. 이번엔 여대야소나 여소야대 모두 선택할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다.”

낙선운동을 의미한다면 과거에도 해왔던 캠페인 아닌가.

“그보다 더 적극적이고 혁명적이다. 한 마디로 ‘국회 탄핵 투표’다. 재선, 3선, 4선 의원을 그냥 관성대로 찍어주는 게 아니라 이들을 떨어뜨리는 게 목표다. 현역 의원의 90% 이상을 떨어뜨려야 한다. 과거 낙선운동은 못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찍어주는 거였다면, 이번엔 그냥 10%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떨어뜨리자는 거다.”

너무 급진적인 생각 아닌가?

“그래서 탄핵 투표라고 하는 거다. 대통령을 탄핵해본 경험이 있는 국민이다. 국회도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탄핵당해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가. 실세들이 회사 차리듯 정당 만들어서 줄을 세운다. 계파 만들고 공천해 주면 당연히 국민이 뽑아주는 구조였다. 이 고리를 끊지 않고는 귀족 정치, 세습 정치를 청산할 수 없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우리 국민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에 정당을 청산하는 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기존 정당에 대한 환상, 미련, 고정관념 깨기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거다. 지금까지의 정당은 소신이 같은 정치인들이 모여서 만든 이념정당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정당은 선거 때마다 간판을 새로 달았다. 지금까지 10년 된 정당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5년 됐고, 자유한국당은 2년밖에 안 됐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의 역사가 유구하다는 인식은 허상이다.”

“대통령 탄핵한 국민, 국회 탄핵 못할 것 없어”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이번 총선은 국회 탄핵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이번 총선은 국회 탄핵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정 정당이나 그룹을 겨냥한 것은 아닌가?

“진영과 이념을 뛰어넘으려 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지고 국민주권시대가 열렸다고 우린 배워왔다. 하지만 당시 투표권을 가진 국민은 고작 0.2%에 불과했다. 기득권자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국민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민화 정책이다. 국민이 주권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경실련의 운동은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한 바퀴 돌리는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재선, 3선 한 사람들 계속 찍어주는 게 국민의 역할이었다면, 이번 총선에선 가능하면 떨어뜨려라. 이렇게 외치고 싶다.”

그렇다고 매번 정치 신인들로 국회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에는 정당정치로 가게 될 거다. 누군가는 현실이 좋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만족스러운 게 자유주의의 기본 속성이다. 보수와 진보로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이번만큼은 인물에 투표해서 완전히 판을 바꿔야 한다. 새로 들어온 인물들이 못하면 또 떨어뜨리면 된다. 무조건 도장 찍어주는 건 이번에 끝내자는 게 이 운동 취지다.”

거국적인 캠페인을 하려면 시민사회진영의 연대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제 목소리를 내는 곳이 없다.

“어떻게 연대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다만 예전 같은 방식을 벗어나보려고 한다. 요즘엔 SNS의 영향력이 크다. 바람만 불면 가능하다고 본다. 2002년 대선 당시에도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활동이 노무현 후보의 역전승리를 가져왔다. 우리 국민은 똑똑하다.”

86세대 퇴진론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다 연결돼 있다.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마찬가지다. 노쇠한 사람들은 다 빠지란 거다. 3선, 4선 다 쓸어내면 실세가 없어진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모여서 새로운 판을 꾸밀 수 있을 거다.”

이번 총선에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이념을 빼고 보면 결국 정치 실세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저들이 꿈꾸는 게 뭘까? 자기들끼리 여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국민을 소외시키고 정치 귀족으로 남으려는 것 아닌가. 진보라면 진보답게 서민의 애환 끌어안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촛불로 들어선 정권이 지금 이슈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

황 교수는 정부 정책이 국민의 체감과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실련이 앞장서서 비판해온 부동산 시장에서 문제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봤다.

경실련이 부동산 정책에 특히 비판적인 이유가 있나?

“전 국민이 부동산에 목숨 걸고 있다. 시장이 왜곡돼 있는 거다. 수많은 시장 중에 정부는 가장 민감하고 왜곡된 시장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제일 핵심이 되어야 할 이슈에 정부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뭐라고 보나?

“보유세가 핵심이다. 자본 시장이 금리를 조정해 수요와 공급을 국가가 조정하듯 부동산은 보유세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금리가 오르고 내리는 게 당연하듯, 보유세를 올리고 내리는 것도 당연한 정책의 일환이다.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이다 부동산을 쥐고 있으니 이 부분을 건드리지 못하는 거다.”

국민 반발이 상당할 텐데.

“세계적으로 보유세는 대개 시세의 1% 안팎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0.2%다. (국내총생산 대비 보유세 실효세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의 48% 수준이다) 토지는 개인이 무한정 늘릴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사적 소유권을 허용하면서 세금도 못 올린다는 건 신자유주의의 허상이다. 진보정권이라면 이런 걸 더 치고 나가야 하는데 덤벙대고 있다.”

시장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 연구자로서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본다. 의료, 교육, 그리고 주택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다. 교육도 내용이 부실해서 그렇지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주거 보장 제도는 어떤가? 온전히 시장에 내맡기고 있지 않나.”

부동산의 공공성은 이념적으로 늘 논쟁이 된 부분이다.

“선진국은 국가가 공공임대주택을 20% 정도 갖고 있다. 내가 암에 걸려서 집을 다 팔아도 살 집이 있고, 사업이 망해도 들어갈 집이 있다. 이게 있어야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집주인에게 뺏기지 않는다. 지금 최저임금 올려서 가장 큰 득을 본 게 누구일까. 집주인 아닌가. 가난한 이들의 삶은 거의 그대로다. 진보 정부라면 공공임대주택 200만 호 만들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방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득권 편에 선 정권, 진짜 문제에는 눈 감고 있다

경실련이 지난해 12월 11일 청와대 비서실 공직자들의 아파트 재산 가치 분석 결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경실련

경실련이 지난해 12월 11일 청와대 비서실 공직자들의 아파트 재산 가치 분석 결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경실련

정부는 나름대로 부동산 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데.

“제일 중요한 걸 안 하고 있다. 예컨대 통계자료만 해도 그렇다. 제일 중요한 통계 중 하나가 GDP(국내총생산)다. 하지만 그보다 상위 10%가 전체의 얼마를 가졌는지 보여주는 자료를 내야 한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라는데 모두 그렇게 받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상위 10%, 하위 10%가 얼마를 가져가는지 차이를 보여줘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힘이 실린다. 그런데 국민이 현실을 알고 분노하는 게 두려운 거다.”

결국 더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보유세 강화하기 전에는 부동산 못 잡는다. 보유세 조금 올리면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는데 그건 무책임한 비난이다. 기본적으로 ‘토지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 정책에 뚜렷한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 좋은 독점이든 나쁜 독점이든 독점해서 돈 버는 것이 자유주의의 룰이다. 그래서 양극화가 생기고, 독점에서 밀리는 이들이 생긴다. 게임에서 졌다고 다 도태시키고 귀족만 남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우리 법질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그게 바로 진보의 역할이다.”

지금 정부는 진보를 표방하고 있지 않나?

“진보라고는 하는데 공부를 제대로 안한 것 같다. 6월항쟁을 경험해봤고, 정경유착을 깬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권이니 진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역사적으로 자기들의 소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임기 전반기 내내 적폐청산 하느라 다른 일을 신경 쓰지 못한 건 아닐까?

“양쪽을 병행해야 했는데 애초부터 비전이 없었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걸 깨우칠 수 있는 조치들을 내놨어야 했다. 원포인트(단일 의제)를 5년 내내 계속 던졌어야 했다. 이를테면 국민투표, 국민소환제 등 국민에게 직접 권력을 넘겨주는 조치들이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절대로 안 하잖나. 패스트트랙을 놓고 자기들끼리 싸워서 결론이 안 나는데 국민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왜 못하나? 국회와 정부가 가진 권한을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돌려주는 것이 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시민단체가 권력의 2중대 노릇 하고 있어

보수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진영논리로 물고 뜯는 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냐는 질문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하지만 너무 근시안적이다. 모든 걸 경쟁의 구도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국민 입장에선 우리가 굳이 너희를 옹호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되는 것 아니겠나. 보수에 묻고 싶다. 30년 뒤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고 있긴 한가. 그때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꿈꾸고 있나.”

경실련은 온건 중도노선을 표방한다. 그런데도 다른 시민단체들이 침묵하는 동안 현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다. 조국 전 장관 임명에 대한 반대 입장도 그중 하나다.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황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 정부 들어 정부에 쓴소리를 낸 건 경실련뿐인 것 같다.

“다른 단체들은 못한다. 이념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선거 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도 자기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된 것 같다. 경실련이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기에 그나마 꾸준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거다.”

참여연대나 민변이 현 정부의 핵심축으로 꼽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인가?

“권력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가로 판단해야지 이념에 매몰되면 제 목소리를 못 낸다. 그건 진보가 아니다. 시민단체가 감시자 역할을 포기하면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2020년대의 시민운동은 예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상임집행위원장이 되어 우리 콘텐트가 어떻게 홍보되고 있나 봤더니 예전이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영향력이 없다. 정부에 청원하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시민단체의 운동 방식이 정부나 국회를 향해 ‘해주세요’라고 하는 식이었다면 이젠 바뀌어야 한다. 국민 개개인에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다. 시민단체니까 가질 수 있는 상상력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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