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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서 대세까지 38년 김응수 "묻어뒀던 고통, 자신감 더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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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응수. 14년 전 영화 '타짜1'의 곽철용 대사 "묻고 더블로 가"를 재현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김응수. 14년 전 영화 '타짜1'의 곽철용 대사 "묻고 더블로 가"를 재현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기를 시작해 대세 배우가 되기까지 38년이 걸렸다. “묻고 더블로 가”로 ‘곽철용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는 김응수(59). 그 긴 세월 동안 가장 잘한 일로 그는 “포기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곽철용’은 2006년 영화 ‘타짜1’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이다. 도박판에서 고니(조승우)의 속임수에 말려 거액을 잃고 “묻고 더블로 가”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개봉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곽철용’이 인기 캐릭터로 떠오른 건 지난해 9월 ‘타짜3’ 개봉 이후였다. “1편이 훨씬 재미있었다”는 평가가 묻혀있던 신스틸러 김응수의 재발견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그는 햄버거ㆍ치킨 등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고, 래퍼 머쉬베놈의 신곡 피처링에도 참여했다. 오는 5월엔 MBC ‘꼰대인턴’으로 첫 드라마 주연에 도전한다.

그는 ‘묻고 더블로 가’의 갑작스런 인기에 대해 “취업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기 때문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좋지 않은 기억, 힘든 기억을 묻고 잊어버려야 복이 더블로 옵니다. 묻어야 전진할 수 있거든요.”
그는 “인생이란 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온다”고 했다. ‘곽철용’의 부활을 놓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기해온 과정에서 부수입을 얻은 것”이라며 “무임승차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니 배우로서 너무 행복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OCN 디지털 스튜디오 '뭅뭅'이 유튜브에 올린 '곽철용 명대사 모음' 동영상 중 한 장면. [유튜브 캡처]

OCN 디지털 스튜디오 '뭅뭅'이 유튜브에 올린 '곽철용 명대사 모음' 동영상 중 한 장면. [유튜브 캡처]

1981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 연기를 시작한 그는 극단 ‘목화’ 단원으로 활동하며 무명 배우로 오랜 시간을 지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1997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했을 때였다. “돌아오니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 표정이 모두 절망적이었다. 대한민국은 여기서 끝났구나 싶었다”고 기억하는 시간이다. 그에게도 일이 없었다.
“딸도 태어났는데 전세 구할 돈이 없었어요. 처갓집 반지하방에서 3년을 살았죠. 낮에 딸 데리고 공원에 나가 놀고 있으면 사람들이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이냐’는 눈으로 쳐다보더라고요. 그 시선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죠.”
그는 “나를 밥 먹여주지 못하는 직업을 계속할 것인가 갈등도 됐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젠 그 순간에도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주위 시선은 따갑고…. 얼마나 내 자신이 비참했겠냐”며 “포기하는 게 차라리 쉬운 일이었다. 그 때 버티고 묻어두었던 고통의 시간이 훗날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그 힘든 것도 견뎠는데 뭐가 두렵겠나”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은 비결을 묻자 “대단한 각오나 다짐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버틴 것”이라고 덤덤히 대답했다.

‘깡패수업’(1996)을 시작으로 단역 출연을 이어갔던 영화가 그의 연기 인생에 돌파구가 됐다. 그가 ‘경찰1’ 역으로 출연한  ‘주유소 습격사건’(1999), ‘길남 심복1’ 역을 맡은 ‘신라의 달밤’(2001) 등이 흥행 성공을 거두며 그의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추노’(2010)의 좌의정, ‘해를 품은 달(2012)의 이조판서, ‘미스터 션샤인’(2018)의 김판서 등 TV 드라마에서도 인상 깊은 악역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막막한 순간 포기해버렸다면 내가 그동안 갈고 닦았던 게 모두 없어져버리지 않았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곽철용’ 캐릭터로 성대모사ㆍ가상광고 등 다양한 패러디물을 만들어내는 신세대들을 향해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여러차례 전했다.
“젊은 친구들 정말 놀라워요. 수백개의 패러디물을 봐도 하나도 바보같은 게 없어요. 그렇게 똑똑하고 감성적인 친구들이 일할 데가 없으니…”
그는 “가상의 세계에서 실컷 ‘곽철용’을 갖고 놀아라”라며 “이렇게 답답한 현실을 유머로 발산시킬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문화는 위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곽철용’이 신드롬급 인기를 끌면서 그에겐 광고 제의가 쏟아졌다. 그에 따르면 캐스팅 제안을 받은 CF가 130개에 달한다. 하지만 그가 찍은 광고는 버거킹ㆍBBQ 등 5편이 전부다. 그 중 ‘사랑의 열매’는 재능기부로 출연료 없이 찍었다.
“들어온 CF마다 곽철용 캐릭터를 요구했어요. 엄선하고 엄선해서 5개만 골랐죠. 같은 이미지가 여기서도 나오고 저기서도 나오면 재미없잖아요. 다 잘할 수도 없고, 시청자들 보기도 좋지 않고요. 광고 많이 하겠다는 욕심도 묻어버려야 돼요.”

배우로서 그의 목표는 “작품 10편을 하면 2편은 성공시키자”는 이른바 ‘2할론’이다. 흔히 명타자의 기준으로 통하는 ‘3할’ 대신 왜 ‘2할’일까. 그는 “‘2할’은 계속 타석에 설 수 있는 최소 조건”이라며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1할대 타율이면 감독이 타석에 안 들여보낸다. 2할도 못 치면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려면 2할은 쳐야한다”고 설명했다.
‘2할’ 배우가 되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의 매력은 인격의 성장 없이는 안된다. 평상시에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 매력은 배우로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인간 김응수를 위해 하는 거죠. 하지만 내가 배우로서 한 인물을 표현할 때도 그 인격적인 부분이 반영이 됩니다.”

건강 관리도 배우 김응수, 인간 김응수에게 중요한 과제다. 매일 해 뜰 무렵 일산 집에서 서울 은평구 진관사까지 차를 몰고 가서 30분씩 걷고 뛰는 자신만의 운동을 한다. 그는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허리 싹 펴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게 앞으로 내 인생의 목표다. 다른 건 없다”고 말했다.

다음달부터 드라마 ‘꼰대인턴’ 촬영에 들어가는 그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고, 자신의 가치관ㆍ생각을 강요하는 게 바로 ‘꼰대’”라고 정의했다.
“대본 읽으며 어떤 사람이 꼰대인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꼭 나이 많은 선생님ㆍ상사만 꼰대인 게 아니던데요. 젊은 사람들 중에도 꼰대 많더라고요. 꼰대 안 되는 방법은요? 입 닫고 지갑 여는 거죠.”
직설적ㆍ해학적인 그의 대답은 역시나 ‘곽철용’ 스러웠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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