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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는 하루 1500명만 볼 수 있다… 은빛 천국 한라산 백록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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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성판악 코스 눈꽃 산행기 

2월 1일부터 한라산 등반이 제한된다. 성판악 코스는 하루 1000명, 관음사 코스는 하루 500명만 오를 수 있다. 홈페이지와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탐방 예약제 시행을 앞둔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올랐다. 운이 좋았다. 1월 20일 산 아래 세상은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했는데 산 위 세상은 맑고 깨끗한 하늘이 열렸다. 꼬박 9시간 걸린 한라산 눈꽃 산행을 사진 중심으로 재현한다. 높이에 따라 한라산은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겨우살이. 산을 오를 때는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새벽에 산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발 800∼1200m 한라산 숲은 겨우살이밭이었다. 졸참나무, 서어나무 가리지 않고 겨우살이가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겨우살이는 겨울에만 보여 겨우살이다. 여름에도 나뭇가지에 붙어살지만, 잎사귀 무성한 여름 나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맨몸을 드러내야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다.

한라산 국립공원 탐방로 지도.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만 한라산 정상 백록담까이 이어지며, 두 탐방로는 2월부터 탐방 예약제가 시행된다. [그래픽 한라산 국립공원]

한라산 국립공원 탐방로 지도.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만 한라산 정상 백록담까이 이어지며, 두 탐방로는 2월부터 탐방 예약제가 시행된다. [그래픽 한라산 국립공원]

진달래밭 대피소. 해발 1500m 지점에 있다. 성판악 탐방로 입구에서 부지런히 세 시간을 걸어 올라야 진달래밭 대피소에 다다른다. 입구에서 거리는 7.8㎞ 정도 된다. 진달래밭 대피소에는 정오까지 도착해야 한다. 여기에서 정상까지 2시간쯤 걸리는데, 정오가 넘으면 정상으로 향하는 출입문을 잠근다. 탐방객 모두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배낭을 풀고 음식을 먹는다. 2018년 말까지 여기에서 컵라면을 팔았다. 2019년부터 팔지 않는다. 진달래밭 대피소의 컵라면을 기대하고 올랐던 탐방객 몇몇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보온병의 커피를 나눠 마셨다.

해발 1700m 위 세상은 눈부셨다. 눈꽃과 상고대가 은세계를 펼쳐 보였다. 한라산 자락을 덮었다는 노란 조릿대도, 한라산의 상징 구상나무도 새하얗게 빛났다. 고도가 오르고 경사가 급해질수록 한라산은 감탄을 자아내는 장관을 선사했다. 자주 그리고 한참 걸음을 멈췄다.

구상나무 숲은 압권이었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해발 1600∼1700m 지점에서 울창한 숲을 이뤘다. 세계 유일의 구상나무 군락지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 높은 구상나무는 사실 한국 특산식물이다. 우리가 종자에 무지했던 시절, 미국인 식물학자가 한라산의 구상나무 씨앗을 갖고 나갔다. 구상나무를 제주에선 ‘쿠살’이라고 한다. 쿠살은 성게의 제주 방언이다. 구상나무 잎이 성게 가시처럼 뾰족하다.

해발고도 1900m 위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셌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나 바람은 모질었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구름이 느껴졌다. 난간에 기대 올라온 길을 내려다봤다. 산 아래 세상은 미세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탐방로 밧줄에 눈길이 머물렀다. 밧줄보다 두어 배 두꺼운 눈이 얼어서 붙어 있었다. 눈이라고 해야 할지 얼음이라고 해야 할지…. 눈이 밧줄에 이빨을 남긴 듯했다.

마침내 정상에 섰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한라산(漢拏山)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꽤 시적인 이름이다. 한라산에 얽힌 숱한 전설 중에서 나는 남극노인성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라산 남쪽 자락에서 전설의 별 ‘남극노인성’이 보인다고 한다. 북반구에서도 보인다는 남반구의 별이다. 원래 이름은 카노푸스(Canopus)다.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이라고 한다. 별 이름에 노인이 들어간 것은 이 별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시대 왕이 이 별을 향해 제사를 드렸으며, 제주도에 유람 왔던 사대부도 이 별을 보겠다고 한라산을 올랐다고 한다. 나는 이 전설을 이렇게 재해석한다. 별 보겠다고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건강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눈 덮인 백록담이 훤히 내다보였다. 백록담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하얀 백록담은 정말 하얀 사슴(백록)이 살 것처럼 경이로웠다. 정상 표지석 앞에 긴 줄이 이어졌다. 정상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었다.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 한라산 국립공원이 정상 등정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제주도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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