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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15년 전 최강욱, 오늘의 최강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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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에디터

고정애 정치에디터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2004년 진급 비리 수사 주역 #청와대·국방부와 육군 압박 #요즘 청와대 참모로 돌출 행동 #개혁 내세운 헤집기 언제까지

누군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 건 군 출신 지인의 짧지만 격정 어린 글 때문이다. ‘근래 집중 거론되는 최모, 군 검찰의 칼춤을 흐드러지게 췄던 적이 있다. 참모총장의 인사권을 진급 인사 비리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다. 지금은 인사권을 존중하라고 주장하고 있으니…’였다.

2004년 말의 일이니, 15년도 전이다. 노무현 정부 때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등의 장성 진급 비리 의혹 사건을 가리켰다. 최모는 최강욱(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당시 수사 주역(군 법무관)이었다. 이듬해 군을 떠나서 동료와 함께 월간지와 인터뷰했는데 이런 취지의 주장을 했다.

“구체적 첩보가 많았다. 그러던 중 청와대 민정에서 민원이 넘어왔다. 이를 계기로 공식 수사에 들어갔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수사 취지엔 공감했으나 적당한 선에서 수사가 끝나길 원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실무자가 구속됐는데 (가이드라인에 따라 장성인) 상급자가 구속되지 않는다면 누가 수사 결과에 승복하겠는가. 진급 비리는 조직적 범죄였다. 동기랄만한 돈이 안 나왔을 뿐이다.”

군은 동의하지 않는다. 군을 향한 정치적 수사였다. ‘군 사법개혁’ 과정에서 군 검찰이 군에 불만이 많았다. 이 와중에 남 총장이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난 줄 아느냐. 뭘 모르는 문신이 (무신을) 무시하고 홀대하니까 반란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고 청와대에 보고되는 일도 벌어졌다.

서소문 포럼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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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청한 A 장군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기무사에서 그 발언을 놓고 쿠데타 음모가 있다고 조사하러 왔더라. 남 총장도 조사받고 있다고 하고. 남 총장은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기무사에서 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했다고 한다. 나중 한 여당 의원이 국감 때 ‘기무사가 허위보고 했다’고 주장하더라.” 그러고 보면 문재인 청와대에서 기무사의 계엄 문건을 쿠데타로 몬 건 내력이 있는 일이었다. 하여튼 당시 육본은 청와대·국방부의 인사 요구도 뿌리쳤다. 군이 본 진급 비리 수사의 배경이었다.

동기만 못 밝혔을 뿐 범죄였다는 주장도 군은 거부한다. 군 법무관 출신 B의 말이다. “군 검찰이 외압 때문에 수사를 못 했다고 그 후 말하곤 하던데 실제론 다 했다. 문재인 수석이 군 수사팀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뇌물 받고 진급한 게 없었다. 노 대통령이 ‘군이 이렇게 깨끗한지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수사는 중단됐다.”

실제 그해 12월 노 전 대통령이 “수사가 적합한 것이라면 지속적인 수사가 보장돼야 한다. 군 검찰의 수사도 여론의 힘을 빌려 진행돼선 안 된다”고 지시한 일이 있었다. 청와대에선 “군 검찰에 대한 경고가 51 대 49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이틀 만에 최강욱 등 군 검찰 3명이 일종의 항명(보직 해임 신청)을 했다. 다시 최강욱 등의 인터뷰다.

“처음엔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대통령과도 맞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발언 직후 사건 관련자들이 소환에 불응했다. 왜 안 나오냐고 하니 ‘대통령 말씀도 못 들었느냐’고 했다. (보직 해임 신청 후) 대세는 군 검찰에 매우 불리했다. 그런데 문 수석이 그 방향을 바꿨다고 들었다. 우리에게도 사람을 보내 진의를 묻곤 따로 보고했다고 한다.”

진급 비리 관련자들은 그러나 결국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A 장군은 “재판관이 판결 후 ‘법관 양심으로 기소할 수도 없고 기소해서도 안 되는 재판을 했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기시감이 들 거다. 15년 전 청와대-국방부-육본의 갈등이었다면 이젠 청와대-법무부-검찰의 갈등이다. 갈등 구도와 양태는 유사한데 이번이 더 세다. 최강욱이 군 검찰로 군을 헤집어놓았다면 이젠 공직기강비서관이 돼 검찰을 막아서고 있다. ‘내로남불’로 장착한 채다. 동료 ‘최강욱’도 적지 않다. 문 수석은 문 대통령이 되었다. 노 전 대통령에겐 실용적 면모가 있었고 남 총장이 버텨낼 수 있었다. 요즘 총장은 청와대 행정관이 불러도 나가게 됐다. 검찰은 어찌 될까.

궁금하다. 두 번째 역사는 희극으로 반복될까, 아니면 여전히 비극일까 하고 말이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어디까지 헤집을지도 말이다.

고정애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