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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년기획②] “70% 경쟁하고 30% 협력한다···中, 대미 전략은 10년 버티기”

중앙일보

입력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에 지금 세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선의 해인 2020년 미국의 움직임과 이에 맞서는 중국, 일본, 유럽의 대응 방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차이메리카’란 말은 2007년 나왔다. 중·미의 경제적 공생을 뜻하는 이 표현은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 대신 ‘신냉전’이나 ‘투키디데스의 함정’, ‘디커플링’ 같은 용어가 중·미 관계를 대표하는 수식어다. 낙관은 사라지고 비관이 지배하는 모양새다.

워싱턴에선 중국의 무릎 꿇리려는 전의 넘쳐 #베이징은 신냉전과 군사 충돌은 피해야 한다 생각 #미국 압박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선 #중국 국내 경제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 #미국의 대중 전선 분열과 트럼프 마음 공략 긴요

왕지쓰(王輯思)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장은 삼국지 첫 구절로 미·중 다툼을 설명한다. "천하는 나뉜 지 오래면 합치고 합친지 오래면 나뉜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냉전 후 세계가 합(合)으로 향했다면, 현재는 분(分)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4월 23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 관함식(해상 열병식)에서 구축함 시닝(西寧)호 승선에 앞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4월 23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 관함식(해상 열병식)에서 구축함 시닝(西寧)호 승선에 앞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왜 변했나? 두 개의 질서와 두 개의 영도권이 부닥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영도권은 미국이 내정 간섭 등으로 중국의 국내질서를 파괴할까 노심초사다. 반면 미국의 영도권은 중국의 굴기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깨뜨릴까 우려한다.

서로 싸움은 상대가 먼저 걸었다고 본다. 수전 셔크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미·중 긴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뉴욕발 국제금융위기 전후로 중국의 외교가 바뀌며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중국이 오만해진 게 원인이란 이야기다.

반면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을 꼽는다. 중·미 간 충돌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까진 덩샤오핑(鄧小平)의 말대로 “싸우긴 하되 관계는 깨지 않는(鬪而不破)” 상태를 유지했다.그러나 트럼프 이후 미·중 관계는 내리막길이라고 왕 원장은 말한다. 미국은 2017년과 2018년 ‘국가안전전략보고’와 ‘국방전략보고’를 잇따라 발표해 중국을 ‘수정주의 국가’이자 ‘전략적 경쟁자’로 낙인 찍었다.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 신화망 캡처]

흥미로운 건 과거 미·중 관계를 안정시켰던 무역이 이젠 걸림돌이 돼 싸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무역 전쟁 초기 중국의 대응은 ‘스몰 딜’ 전략이었다. 미국 상품 수입을 늘리는 수준에서 분쟁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산업보조금을 취소하고 감독을 받으라’는 미국의 거센 ‘빅 딜’ 요구에 ‘스몰 딜’은 좌초했다. 중국은 드디어 싸움의 본질을 깨달았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전쟁인 것이다. 이제 항복할 것인가, 항거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합의 직전까지 갔던 지난해 5월의 일이다.

중국은 미국의 의도를 새롭게 분석했다. 크게 세 가지가 짚였다. 첫 번째는 트럼프 요인이다. 그의 장사꾼 기질이 무역적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연임을 노리는 그는 중국 때리기가 표를 얻는 지름길이라는 걸 안다.

두 번째는 미국의 대중국 인식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유럽의 안보 경쟁자 정도로 보는 반면 중국을 이데올로기와 정치, 경제 등 세계적 차원의 경쟁자로 본다. 미국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눌러야 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논리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배경이다.

세 번째는 대중국 정책에 대한 미국의 반성이다. 중국과 관계(engagement)를 맺으면 맺을수록 중국에 자유와 민주가 올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웬걸 오히려 인권 악화와 기술 절취만 가져왔다.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자는 '디커플링'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지난해 5월 중국 류허 부총리, 미국 므누신 재무부 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왼쪽부터)가 워싱턴DC 미 무역대표부에서 협상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므누신 장관과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 대중국 압박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5월 중국 류허 부총리, 미국 므누신 재무부 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왼쪽부터)가 워싱턴DC 미 무역대표부에서 협상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므누신 장관과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 대중국 압박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 결과 미·중은 현재 혼전 양상을 보인다고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말한다. 미국이 2018년 3월부터 중국 공격을 위해 꺼낸 카드가 무려 14장이나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무역전에서 기술전, 금융전, 여론전, 홍콩, 신장 등등…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건가. 우선 미국이 설정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신흥 대국과 기존 강국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의 발전 목표는 인민생활 개선이지, 글로벌 패권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능력이나 의사도 없다고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미 디커플링이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중·미는 수교 이후 지난 40년의 협력을 통해 뼈가 부러져도 살은 붙어있는 그런 긴밀한 관계가 돼 디커플링 하면 미국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의 주장이 미국에 먹힐 것 같지는 않다.

워싱턴엔 전의가 넘친다. 과거 소련과 일본을 제압한 경험도 있다. 중국을 완전하게 무릎 꿇리는 제2의 합의, 제3의 합의를 얻어내려 한다. 진찬룽 교수는 “앞으로 10년이 고비”라고 예상한다. “향후 10년은 중·미가 70%는 경쟁하고 30%는 협력하는 중·미 간의 ‘신창타이(新常態)’가 전개될 것”이며 “중국이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중국의 덩치가 더욱 커져 미국의 대중 정책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기간 조심해야 할 사항 둘을 그는 꼽았다. 하나는 미국과 신냉전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은 힘이 많이 부치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7월 중국 네이멍구 주르허 훈련기지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창군 90주년 열병식에서 군복을 입은 채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7월 중국 네이멍구 주르허 훈련기지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창군 90주년 열병식에서 군복을 입은 채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와 함께 중화권 언론에선 중국이 향후 네 가지 대응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봤다. 첫 번째는 중국이 자신의 발전부터 꾀하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려면 중국 경제부터 안정돼야 한다는 논리다.두 번째는 미국의 대중 전선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EU)이나 일본, 인도 등 대국과의 관계를 적극 개선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베이징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은 최근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베이징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은 최근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세 번째는 트럼프의 마음 공략이다. 지도자의 결심이 중요한 만큼 트럼프 환심 사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론 중국의 결기를 보이는 것이다. 무조건 양보는 안 된다. 홍콩이나 신장 등 중국의 주권 관련 사항에선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 그런 결심을 보여야 미국의 요구가 무한정 늘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세계 1인자를 향한 미·중 다툼은 이제 막 긴 터널의 입구에 들어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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