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BTS, 사람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야기하는 영성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1.27 17:29

업데이트 2020.01.27 17:45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지영 세종대 교수,『BTS 예술혁명』저자

이지영 세종대 교수,『BTS 예술혁명』저자

런던 BTS 국제 학제간 학술대회 참관기-이지영 교수

 방탄소년단(BTS)의 전 세계적 인기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에서 그룹 부문 본상을 수상하고,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투어를 매진시켰다.뉴스에서는 그들이 한국에 가져오는 조 단위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트위터 팔로워 수 2360만명이 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슈퍼스타라는 점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다.

 지난 4~5일 런던 킹스턴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국제 학제간 학술대회(BTS Interdisciplinary Conference)에 기조 발제자로 참석했다. 국내에서도 방탄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발표가 있었지만, 이토록 엄청난 규모로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자발적 신청자들로만 이루어진 국제적 학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적·분야 망라한 아미 학자 140명 자발적 참여

킹스턴대의 건물은 다양한 인종·국적·연령대의 아미(BTS 팬클럽)학자들로 북적였다. 나는 기조연설에서 BTS의 음악과 그들의 예술 활동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정신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주제를 골자로 발표했다.또 방탄 메시지의 사회 비판적 성격과 더불어 온라인 네트워크 위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예술 활동의 트랜스 미디어적인 측면 및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적극적인 관객의 변화에 대해 강연했다.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어쩌면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 세계를 읽어낼 수 있게 해주는 지진계라면 우리는 그들을 통해 무얼 보아야 할 것인가? 30여개 국가에서 참석한 140명의 철학·문학·음악학·미술학·문화연구·젠더 연구·심리학·교육학·경영학·고전학·종교학·빅데이터·영화학·정치학·역사학 등 인문 사회과학 및 예술 분야를 망라하는 아미 연구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답들을 제시해 주었다.

Lil Nas X, background center, and members of BTS perform "Old Town Road" at the 62nd annual Grammy Awards on Sunday, Jan. 26, 2020, in Los Angeles. (Photo by Matt Sayles/Invision/AP)

Lil Nas X, background center, and members of BTS perform "Old Town Road" at the 62nd annual Grammy Awards on Sunday, Jan. 26, 2020, in Los Angeles. (Photo by Matt Sayles/Invision/AP)

"BTS는 촛불 혁명 시대의 밥 딜런"

널리 알려져 있듯이 방탄소년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가수다. 그들의 메시지에 대한 세밀한 텍스트 분석은 철학자 니체, 심리학자 칼 융, 헤르만 헤세뿐만 아니라 노장사상, 기독교 사상, 그리스 로마 고전학의 입장을 넘나들며 연구되고 있었다. 방탄의 히트곡 '디오니소스'가 있듯이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미학과 아폴론적 미학의 구분 속에서 방탄의 예술세계가 디오니소스적 비극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어 고전학의 입장에서 동쪽에서 온 이민자 신(神)이라고 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양성성 및 그동안 서구역사학에서 지워져 왔던 디오니소스의 뿌리에 대한 논의가 함축하는 백인 중심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 방탄의 메시지에 함축된 이분법적 가치관을 넘어 개별적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노장사상으로 해석하는 분석도 이어졌다. 방탄의 메시지가 어디까지 확장되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인상적인 발표 중 하나는 하버드대의 성공회 교목이 자신이 왜 아미가 되었는가를 방탄의 메시지 및 영상들 속에 드러나는 영성을 통해 분석한 발표였다. 미국정치를 전공자인 경희대 안병진 교수는 "방탄소년단은 촛불 혁명 시대의 밥 딜런"이라며, 그들에겐 현실 정치인들에게는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야기하는 힘인 ‘영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문화권에서 이뤄진 연구들은 방탄소년단이 한국 바깥에서 가지는 의미들을 보여주었다. 무슬림 아미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그들의 메시지를 결합하여 삶 속에서 받아들이는 방식, 흑인 아미들에게 방탄이 보여주는 다문화주의가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에 어떤 자긍심을 주는지, 백인 중심 사회에서 목소리를 억압당하는 아시아계 아미들에게 방탄의 존재는 그들의 삶에 존재하는 어떤 억압과 편견을 가시화하게 되었는지 등 다양한 사회 문화적 파장들을 볼 수 있었다.

아미의 가치체계 변화,종교와의 유사성은

 아미 팬덤에 대한 연구 역시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경제학적 가치나 마케팅 관점에서의 소비자 분석을 넘어 종교학적·인류학적·교육학적 측면의 연구들로 확장되었다.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는 사람들이 아미가 되면서 달라지는 가치 체계 및 삶의 방식 변화를 종교와의 유사성을 통해 구체화하기도 했다.

『BTS와 아미 컬처』의 저자 이지행 박사는 아미 팬덤이 미디어와 어떻게 경쟁하고 교섭하는지를 구체적 실례의 분석들을 통해 보여주었다. 사회문화적 저항운동으로서의 아미 팬덤의 활동 및 가능성을 분석한 글부터 방탄이 아미들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자문화기술지적(autoethnography) 연구까지 그 스펙트럼은 정말 다양했다. 방탄이 보여주는 마초적이지 않은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젠더 연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과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의 이미지와의 유사성에 대한 미술학적 연구, 방탄소년단의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에 대한 음악학적 연구,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한·일 역사의 문제를 다룬 역사학자까지 그 분야는 실로 다양했다.

BTS arrives at the 62nd annual Grammy Awards at the Staples Center on Sunday, Jan. 26, 2020, in Los Angeles. (Photo by Jordan Strauss/Invision/AP)

BTS arrives at the 62nd annual Grammy Awards at the Staples Center on Sunday, Jan. 26, 2020, in Los Angeles. (Photo by Jordan Strauss/Invision/AP)

 서구·백인·남성·영어 중심주의 비판도 공유

이번 방탄소년단 학제간 콘퍼런스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아티스트의 존재를 그저 인기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 정도로 정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방탄은 전 세계를 관통하며 연결하는 사회 정치적 현상이자 예술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미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전 세계 많은 대학에서 방탄소년단에 대해 작성되고 있는 수많은 석·박사 논문들 및 연구논문의 숫자만으로도 이는 확인된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학회에 모인 아미 학자들이 지금까지의 지배적 담론이었던 서구-백인-남성-영어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당연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아미 학자들의 모임이다 보니 이는 당연히 아미들의 모임이기도 해서 분위기가 다른 학회와는 사뭇 달랐다. 나이·지역·성별·인종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이 방탄이라는 아티스트를 계기로 모여 누구나 경계 없이 오랜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었으며, 점심시간에 식당에 모여 방탄의 골든디스크 어워드의 퍼포먼스를 보며 팬챈트를 하고, 폐회식 이후 다 함께 뮤직비디오에 따라 춤을 추는 등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모두를 흥겹게 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연구 대부분은 서양 남자 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하며 이루어져 왔지만, 당신이 방탄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발표해줘서 이제는 모든 세션에서 당신의 연구가 인용되며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더 이상 우리는 남자 학자들을 인용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당신의 존재가 수많은 어린 아미 학자들을 키워낼 수 있어요.”

한 미국 아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변화를 일깨워주는 말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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