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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설치작품인가, 놀이터인가....귀엽고, 쿨하고, 용감하네

중앙일보

입력

헝가리 디자이너이자 조형예술가인 키스미클로스의 설치작품 '볼. 룸'. [사진 롯데갤러리]

헝가리 디자이너이자 조형예술가인 키스미클로스의 설치작품 '볼. 룸'. [사진 롯데갤러리]

해마다 그해의 분위기와 관심을 가장 잘 반영한 단어를 골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해온 옥스퍼드 사전은  2015년 올해의 단어로 실제 단어가 아니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모지(emoji·그림문자)를 선택해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의 의사소통에 이모지의 사용 빈도가 급증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였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키스미클로스 특별전' #헝가리 디자이너 키스미클로스 '체험형' 미술작품 #이모지 모양 노랑 풍선에 긍정적인 단어 만든 표정

그런데 이런 이모지가 디지털 스크린 안에 머물지 않고 현실 세상으로 나오면 어떨까? 온갖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이 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면?

이것은 아트인가, 디자인인가 

'볼.룸' 전시장 안에서 'NICE'라는 단어로 만든 이모그램을 들고 앉아 있는 작가. [사진 롯데갤러리]

'볼.룸' 전시장 안에서 'NICE'라는 단어로 만든 이모그램을 들고 앉아 있는 작가. [사진 롯데갤러리]

이것은 전시장인가, 놀이터인가. 디지털 대화에 쓰는 이모지를 가지고 작업한 이모그램 1000여 개가 깔려 있는 '볼.룸' 전시장. [사진 롯데갤러리]

이것은 전시장인가, 놀이터인가. 디지털 대화에 쓰는 이모지를 가지고 작업한 이모그램 1000여 개가 깔려 있는 '볼.룸' 전시장. [사진 롯데갤러리]

세상에, 그런 엉뚱한 시도를 한 아티스트가 있다. 헝가리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조형 예술가인 키스미클로스(KISSMIKLOSS·48)다. 키스미스클로스는 이모지에서 영감을 얻어 표정이 있는 얼굴모양 이모그램(emogram)을 풍선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모그램이란, 이모티콘과 픽토그램의 합성어로 작가가 만든 고유명사. 작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13개 고른 뒤, 단어의 철자를 가지고 이모티콘으로 조합해 둥근 원 안에 그려 넣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온라인에서의 경험이 현실에서 더욱 강렬하게 구현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시를 즐기고, 행복해지며, 서로를 더욱 사랑하면 좋겠어요."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13개의 단어 중 멋져(NICE, COOL), 사랑해(LOVED), 귀여워(CUTE), 훌륭해(GOOD), 용감해(BOLD), 행운(LUCKY) 등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7개만 추렸다. 그리고 7개의 이모그램이 각각 인쇄된 노란 고무공 1000개를 만들어 전시장 안에 풀어놓았다.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 '볼. 룸(Ball Room)'이다. 작품이 펼쳐진 공간은 전시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른·아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놀이방에 가깝다. 이렇게 쉽고 친근하고 재미있는 전시라니, 이것은 아트일까 디자인일까.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은 오픈 1주년을 기념해 5층 아뜰리엘& 롯데갤러리에서 키스미클로스의 한국 첫 개인전 '이모그램 위드 러브(emograms with LOVE)'를 열고 있다. 디지털 대화에서 통용되는  이모지를 현실의 3D 공간에서 체험하는 특별한 자리다.

경계 허무는 fun한 상상력 

헝가리 디자이너 키스미클로스가 제작한 이모그램. 위로부터 시계방으로 NICE, BOLD, COOL ,GOOD,CUTE LOVED 의 글자를 가지고 만들었다. 사진 롯데갤러리]

헝가리 디자이너 키스미클로스가 제작한 이모그램. 위로부터 시계방으로 NICE, BOLD, COOL ,GOOD,CUTE LOVED 의 글자를 가지고 만들었다. 사진 롯데갤러리]

작가는 온갖 종류의 '경계'에 딴지를 걸고 있는 거다. 작품을 통해 평면과 입체,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여기에 작가 혼자서 그냥 만든 것은 없다. 그는 이미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던 것들을 재료로 끌어다가 창의적으로 조합했다. 이모그램에 영감을 준 것은 이모지뿐만은 아니었다. 스마일리((Smiley) 캐릭터도 큰 몫을 한다. 노란 바탕에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스마일리는 1963년 미국의 한 광고회사 대표였던 하비 볼이 만들었다.  이 캐릭터는 당시 합병으로 사기가 떨어진  보험회사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웃는 얼굴 캐릭터로 뱃지를 만들어 주면서 유명해졌다. 키스미클로스는 이 스마일리 캐릭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본인의 이모그램을 뱃지로 만들며 이모그램을 시작했다. "글자를 가지고 노는 것과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 작품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주도면밀한 작업이었다.

대표작 '볼.룸'은 노란색 공으로 채워진 방을 의미하기도 하고, 첫 번째 '스마일리'를 그린 하비 볼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키스미스클로스는 7개의 이모그램을 제작한 것에 대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하나씩 긍정적인 감정을 선택해 총 7개를 만들었다"며 "관람을 마친 뒤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전시장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롯데갤러리 성윤진 큐레이터는 "키스미클로스는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이모그램 시리즈를 소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면서 "디지털 시대의 이모지 식 감정표현을 ‘공’의 형태로 입체화시키고, 그 감정 볼을 가지고 놀며 공감각적인 체험을 하게 이끌면서 사람들에게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고 말했다.

7개의 이모그램 조각이 배치된 전시장. 뒤편으로 '러브 필드' 설치작품이 보인다. [사진 롯데갤러리]

7개의 이모그램 조각이 배치된 전시장. 뒤편으로 '러브 필드' 설치작품이 보인다. [사진 롯데갤러리]

이번 전시에선 그의 대표작 '볼.룸 (Ball Room)'뿐만 아니라 다양한 버전의 이모그램 작품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지름 60cm의 대형 '이모그램 뱃지'는 처음으로 스마일리 캐릭터를 만들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자 한 디자이너 하비 볼에 대한 또 다른 오마주다.

새 설치작품 '러브 필드' 가운데 선 작가. "어릴 때 들만에서 키 큰 풀들을 만지며 느꼈던 충만함을 이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포근하고, 부드럽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녹아 있다. [사진 롯데갤러리]

새 설치작품 '러브 필드' 가운데 선 작가. "어릴 때 들만에서 키 큰 풀들을 만지며 느꼈던 충만함을 이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포근하고, 부드럽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녹아 있다. [사진 롯데갤러리]

이번 전시에서는 이모그램 작품 외에도 작가의 새 시리즈 '러브 필드(LOVE field)'도 선보인다. 러브 필드는 분홍색의 부드러운 천으로 둘러싼 1.3m의 부드러운 폴리폼 600여 개를 촘촘히 세워놓은 설치 작품이다. 마치 핑크뮬리 들판은 연상시키는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지며 돌아다닐 수 있다.

작가는 "어릴 때 들판에서 뛰어다니며 키 큰 풀들을 손으로 만지며 느꼈던 행복한 감정을 이 작품에 담았다"면서 "그 감정을 포근하고 부드러운 색과 질감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부드럽게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행위와 연결돼 있다"며 "여기서 사랑은 단지 연인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 친구 모두를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보살핌' '쓰담쓰담'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이를 위해 가장 부드럽고 포근한 색감으로 '분홍'을 골랐다는 것이다.

이번에 함께 선보이는 150cm가량의 '러브(LOVE)' 조형물은 붉은색 영문 타이포가 단상 위에서 회전하도록 설치됐는데, 마치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의 유려한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나는 교감한다, 고로 존재한다 

1000여 개의 이모그램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장 안의 관람객들. [사진 롯데갤러리]

1000여 개의 이모그램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장 안의 관람객들. [사진 롯데갤러리]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에 대한 열린 자세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굳이 엄숙한 분위기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일 필요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미술은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것, 마치 다른 것들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온 느낌이 없지 않다"면서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성이다. 더 많은 동시대 사람들과 만나고 교감하지 못한다면  그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내가 작품을 만들 때 주안점을 두는 것이 바로 다양한 사람들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결(layer)을 중첩해 놓는 것"이라며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단순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상상과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2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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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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