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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김병관 의원이 '게임만' 챙겼다고? 선거 홍보물에 판교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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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정보기술)란 무엇인가. 총선의 해,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 불쑥 던져진 질문이다.

발단은 엉뚱하게도 지난 주 뿌려진 한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홍보물이었다. 김찬훈 더불어민주당(분당갑) 예비후보는 자신의 홍보 전단에 ‘게임 만드는 사람에 미래 맡기나’, ‘AI·빅데이터가 진짜 IT’라고 적었다. 민주당 공천을 놓고 경쟁할, 게임업계 출신 현역 김병관 의원을 겨냥한 표현이다. 판교의 게임업체 직원 중 몇은 이를 SNS에 올려 ‘게임을 무시하냐’고 했다. 김 의원에게 전화로 의견을 물었더니 “게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했다.

 김찬훈 민주당 분당갑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홍보물 [사진 김찬훈 블로그]

김찬훈 민주당 분당갑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홍보물 [사진 김찬훈 블로그]

판교의 작은 소동은 높아진 게임업계 위상과 IT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IT 인재’ 명칭은 너도나도 차지하고 싶은 영예가 됐다. 20대 국회는 게임인(人) 의원을 품을 만큼 전향적이었지만, ‘규제 혁신을 못 했다’는 상반된 평가도 받는다. IT와 정치의 딜레마를 20대 국회와 김병관 의원(분당갑·더불어민주당), 판교로 살펴봤다.

게임 위상 높아진 20대 국회 

20대 국회는 게임계에 의미가 컸다. 게임회사(웹젠) 창업자 출신 김병관 의원이 원내에 입성해 목소리를 냈다. 김 의원이 만든 국회 내 연구모임 ‘게임포럼’에는 김세연(자유한국당)·조승래(더불어민주당)·이동섭(바른미래당) 의원이 동참했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게임포럼 전시회'에 참석한 김병관, 조승래 민주당 의원 [사진 김병관 의원 블로그]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게임포럼 전시회'에 참석한 김병관, 조승래 민주당 의원 [사진 김병관 의원 블로그]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게임을 문화예술로 보는 내용)과 청소년보호법 일부 개정안(셧다운 폐지)은 통과는 안 됐지만 게임에 무지했던 여의도 안팎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직역별 후원’도 있었다. 의사·변호사 출신 의원을 의료계·법조계에서 후원하는 식의 모습이 게임업계에도 나타난 것이다. 지난 2016~2018년 김 의원에게 고액(연간 300만원 이상) 후원한 이들 중 상당수는 게임회사 창업자나 NHN(네이버·한게임) 초창기 멤버였다. 권준모 네시삼십삼분 의장, 박관호 위메이드 의장, 정욱 넵튠 대표,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 문태식 카카오VX 대표,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펄어비스의 김대일 의장, 정경인 대표, 지희환 개발이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

19대 국회에서 남궁훈 대표가 당시 ‘게임통’이었던 전병헌 전 의원에게 후원금을 보낸 적은 있었으나, 다수의 게임인이 한 정치인을 집중적으로 후원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혁신' 점수 못 받은 20대 국회 

20대 국회는 4차산업혁명 대비에 부진했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1월 임시국회에서 데이터3법을 통과시켜 면을 세웠지만, 기성 정치인을 믿지 못하겠다며 IT인들이 ‘규제개혁으로 좋은 나라 만드는 당’(가칭, 이하 규제개혁당) 창당을 선언하고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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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밝힌 창당의 기폭제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운수법 개정안(박홍근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 국회 법사위 계류 중)이었다. 신구산업 간 갈등 조정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김병관 의원은 민주당 택시·카풀 대책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해 카풀 서비스를 옹호하는 입장을 폈고, 한때 카카오모빌리티의 의견을 반영한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은 결국 발의하지 않았다. 택시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박홍근 의원 개정안에 함께 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타다가 운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타다가 운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의원은 지난해 6월 대기업의 벤처캐피털 설립 허용법(공정거래법 일부 개정안), 10월에는 1억 이상 연봉자 주52시간제 제외법(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내놨으나 국회 법안 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규제 혁신’의 강한 목소리는 국회 밖에서 나왔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직속 4차산업위원회의 장병규 위원장은 주52시간제, 대학 등록금 규제, 노동 규제 등 정부 정책이 새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쓴소리를 해 주목받았다.

‘게임 외’에서는 김 의원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하지 않았냐는 평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게임과 비(非)게임을 나누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데이터3법과 벤처투자촉진법, 규제 샌드박스 관련 법안들이 통과한 것이 20대 국회의 큰 성과고, 나도 여기 상당히 기여했다”고 말했다.

기존 정당에서 vs 새로 창당해서

정치권은  IT·벤처업계 수혈을 원한다. 당에 혁신 이미지를 더할 수 있고, 젊은 표심을 얻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병관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당시 당 대표)의 영입 인재 2호였고, 전략 공천으로 분당갑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초선으로 여당의 최고위원·청년위원장도 맡았다.

 더불어민주당 입당식의 김병관 의원.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인재영입 2호였다.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 입당식의 김병관 의원.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인재영입 2호였다. [중앙포토]

그러나 각종 이익단체를 챙겨야 하는 기존 정당의 한계도 있다. 규제개혁당은 22일 창당선언문에서 “특정 집단에 의해 개혁들이 번번이 좌절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양대 노총과 적당히 타협해 온 기성 정치권’, ‘전통 운수업자와 결탁한 관료’ 등을 예로 들었다.

규제개혁당 창당작업을 진행 중인 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은 지난 16일 준비 모임에서 “거대 정당에 초선 의원으로 들어가 봐야 높은 분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며 새 당의 필요성을 말했다. 구태언 변호사는 “지난 20년간 대통령 4명 모두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여야 모두 혁신에 실패했다”며 “국회에 기술산업 출신 의원이 10%, 상임위마다 2명씩은 있어야 변화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규제개혁당은) 저와 평소 모임을 갖고 생각을 공유하는 분들”이라며 “규제개혁당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정의당, 바른미래당의 IT 이해도가 높은 의원들과는 당연히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업자’ 의원의 고민

IT 창업가 출신 정치인에게 주식은 행복한 고민이다. IT 창업의 열매는 대부분 주식 가치로 돌아온다. 김 의원은 웹젠의 최대 주주로, 재산(2763억원)의 77%가 웹젠 주식이다.

의정 활동에 제한이 있다. 고위공직자는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3000만원 이상 보유할 수 없다. 국회의원이 특정 기업의 주식을 가졌다면 관련 분야의 국회 상임위에는 못 들어간다.

김 의원은 임기 초 1년 남짓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활동했으나 2018년 행정안전위원회로 옮겼다. 산자위 업무가 웹젠 주식과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로 잠시 옮겼으나 다시 행안위로 돌아왔다. 김 의원은 “전문 분야를 맡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주식백지신탁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정당들이 인재 영입을 원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 창업 성과를 낸 사람은 (주식 때문에) 정치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김 의원이 셧다운 폐지법을 발의했을 때, 게임회사 대주주가 업계 옹호 법안을 내냐는 일각의 비판이 있었다.

지역구의 난제, 판교 표심은?

지난 20대 총선 때 성남시 분당 로데오거리에서 유세하는 김병관 후보(오른쪽에서 2번째).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오른쪽에서 3번째)가 함께 율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대 총선 때 성남시 분당 로데오거리에서 유세하는 김병관 후보(오른쪽에서 2번째).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오른쪽에서 3번째)가 함께 율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선거는 현실이다. 혁신 정책을 내놓으려면 어찌 됐든 원내 입성해야 하고, 지역구 관리는 필수다.
분당갑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판교 공공임대주택이다. 10년 임대 기간이 지나 분양으로 전환하려는데, LH는 판교의 집값을 감안한 감정평가로 분양가를 정하려 하고, 임대입주민은 ‘분양가가 비싸 입주민이 쫓겨난다’ 반발해 소송 중이다. 총 4000여 세대, 많게는 1만여 표가 달린 사안이다.

판교의 심각한 교통난과 주차난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돈·기업·사람이 몰려 화려하게 발전한 판교의 이면의 현실이자 지역구 의원이 풀어야 할 난제다. 그래서인지 투표율도 높다. 지난 총선 분당갑 투표율은 66%로, 경기도 평균(57%)과 전국 평균(58%)보다 높았다.

분당갑, 분당을 선거구 지도 [사진 분당구청 홈페이지]

분당갑, 분당을 선거구 지도 [사진 분당구청 홈페이지]

분당갑 표심은 판교와 비(非)판교로 갈린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김 의원과 2위 후보(새누리당 권혁세)의 표차는 1만1583표였는데, 선거구의 11개 동 중 판교·삼평·백현 3개 동에서 이미 6100표 차이가 났다. 이매2동·야탑2동은 새누리당 후보에 더 많은 표를 줬다. ‘분당신도시’에서 약간 열세였으나 ‘판교신도시’에서 크게 뒤집은 셈이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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