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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폭탄 1분내 격추'…서울 빌딩에 20㎜ 발칸 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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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서울 하늘. 어디에선가 비상벨이 울리고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하다.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 누구라도 허가 없이 비행할 수 없는 상공을 뜻한다. 드넓은 하늘이지만, 작은 드론 하나라도 포착하면 방공포와 대공 미사일은 바로 격추 준비에 들어간다.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서울 상공 지켜내는 GOP, 24시간 경계 #은밀하게 배치, 위치는 군사 비밀 #훈련 반복으로 1분 이내 초탄 발사 #드론 비행 늘어나 매일 실전 상황

수도 서울 하늘을 방어하는 수방사 제1방공여단 장병은 서울 안팎에 은밀하게 배치돼 있다. 산 정상과 고층 빌딩에 마련한 방공진지에서 적 항공기나 미확인 비행체가 나타나면 즉각 대응에 나선다. 최근에는 드론 비행이 늘어나면서 미승인 드론을 발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지난 14일 서울 고층빌딩 건물에 위치한 방공 진지 장병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들은 365일 24시간 항상 같은 위치에서 경계 태세를 지속한다. [박용한 기자]

지난 14일 서울 고층빌딩 건물에 위치한 방공 진지 장병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들은 365일 24시간 항상 같은 위치에서 경계 태세를 지속한다. [박용한 기자]

지난 14일 찾은 방공진지엔 유도미사일과 대공포가 언제라도 저고도 침투 항공기와 드론을 격추할 태세였다. 산 정상의 ‘산악 진지’와 고층 빌딩 헬기장에 붙어 있는 ‘건물 진지’를 다녀왔다. 진지가 자리 잡은 곳은 군사 작전 보안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

방공의 상징과도 같은 20㎜ 대공포 발칸은 분당 최대 3000발을 발사할 수 있다. 최대 사거리는 2㎞ 안팎이다. 휴대용 대공 미사일로 프랑스에서 도입한 ‘미스트랄’과 국산 ‘신궁’을 배치했다. 대공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 5㎞, 최대 고도 3㎞까지 요격할 수 있다. 국산화 무기는 한국인 체형 등을 고려해 크기와 무게는 줄이면서도, 명중률은 높였다.

휴대용 유도미사일을 운용하는 장병. 적을 발견하면 한 번에 격추하겠다는 '초탄필추'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박용한 기자]

휴대용 유도미사일을 운용하는 장병. 적을 발견하면 한 번에 격추하겠다는 '초탄필추'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박용한 기자]

방공 진지에는 24시간 언제라도 서울 하늘을 경계하는 장병이 근무를 서고 있다. 제1방공여단 격추대대 박종희 대위는 “천만 시민이 살고 있고 국가 중요 시설이 위치한 서울을 지키는데 작은 빈틈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병력이 증원한다. 언제라도 1분 안에 초탄 발사가 가능하도록 매일 훈련을 반복한다. 방공여단 장병들은 “매일 훈련을 거르지 않기도 하지만, 미승인 드론 비행 대응과 같은 실제 상황도 여러 번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하루에도 많게는 5번 넘게 전투 배치에 들어가는 긴장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 상공에 적 위협이 탐지됐다는 가정으로 훈련을 실시했다. 산악 진지에 마련된 방공 장비를 향해 뛰어가는 장병.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서울 상공에 적 위협이 탐지됐다는 가정으로 훈련을 실시했다. 산악 진지에 마련된 방공 장비를 향해 뛰어가는 장병.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신호승 대위는 “수도 서울 시민과 주요 방어대상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공 방어 임무를 실시한다”며 “적기 침투상황 발생 시 즉각 출동하며, 적기로 판정하면 대공사격을 실시한다”고 임무를 소개했다.

이날도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반복했다. 비상벨이 울리자 10명의 장병이 방공 진지로 뛰어 올라갔다. 발칸포에 올라타고, 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피고, 대공 미사일을 거치대에 올려 발사를 준비하는 등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불과 1분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발칸포를 운용하는 장병. 즉각 사격 훈련을 통해 대공 위협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처하는 '즉각 대응' 역량을 키운다. [박용한 기자]

발칸포를 운용하는 장병. 즉각 사격 훈련을 통해 대공 위협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처하는 '즉각 대응' 역량을 키운다. [박용한 기자]

최근에는 드론 비행이 늘면서 방공 임무는 더 중요해졌다. 더 작고, 더 은밀하게 침투하는 위협에 경계 태세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예멘의 후티 반군은 드론 폭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유 시설을 공격했다. 지난 3일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는 미군의 드론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최근 들어 증가하는 은밀한 드론 침투가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는 서울도 드론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김종민 상병은 “한강 공원 쪽에서 허가받지 않은 드론이 식별돼 긴급 전투 돌입을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송영재 병장은 “그때 내가 정말 서울 상공을 지키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사실상 방공 진지는 수도 서울을 지키는 도심 속 GOP(일반전초)와 같은 역할을 한다.

대공 상황이 발생하자 9층 높이 계단을 올라 방공 진지로 뛰어가는 장병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대공 상황이 발생하자 9층 높이 계단을 올라 방공 진지로 뛰어가는 장병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이들에겐 속도가 생명이다. 건물 진지 근무 장병은 가장 높은 층에서 생활하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헬기장 위 진지로 올라간다. 이때 9층 높이 계단을 단번에 올라야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계단을 오르고 내려온다. 계단이란 장벽이 있다고, 초탄 발사까지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할 순 없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무고한 시민이 큰 피해를 입는다는 걸 건물 진지 근무 장병은 잘 알고 있다.

야간에도 경계는 이어진다. 열상감시장비(TOD)를 비롯해 탐지 장비와 레이더가 서울 상공 곳곳을 살핀다. 빈틈을 찾아내 어둠을 밝히는 탐조등도 운용된다. 박형순 중사는 “미상 항적 탐지가 용이하고 식별이 가능하다”며 “8000만 개의 초를 켠 것과 같은 밝기를 낸다”며 탐조등 사용법을 소개했다.

탐조등을 운용하는 장병. 방공 진지는 서울의 GOP와도 같다. 수도 서울 하늘을 지켜내기 위해 작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박용한 기자]

탐조등을 운용하는 장병. 방공 진지는 서울의 GOP와도 같다. 수도 서울 하늘을 지켜내기 위해 작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박용한 기자]

도심 속에 근무하지만, 외로움은 늘 또 다른 적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화려한 불빛은 때로는 외로움을 더 키운다. 방공 진지에 배치된 장병은 순환 근무를 마치는 12주 동안 문밖으로 나갈 수 없다. 도심에 위치한 작전 진지 특성상 위치가 드러나면 작전에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휴가를 가더라도 일단 주둔지까지 내려간 뒤에 다시 출발한다.

도심 속 외로운 복무지만 희망도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이 큰 도움이 된다”며 “외부와 소통할 수 있어 오히려 근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장병들은 말한다.

방공 진지에서 한 장병이 서울 하늘을 경계하고 있다. 바로 앞에 야경이 펼쳐졌지만 감상이 아닌 감시에 집중한다. [박용한 기자]

방공 진지에서 한 장병이 서울 하늘을 경계하고 있다. 바로 앞에 야경이 펼쳐졌지만 감상이 아닌 감시에 집중한다. [박용한 기자]

‘군대 생활 가장 힘든 곳이 바로 내가 근무하는 부대’라는 말이 있다. ‘산악 진지’와 ‘건물 진지’ 중 어느 곳 근무가 더 어려울까. 양쪽 진지에서 모두 근무한 장병들에게 물어봤다. 건물 진지 장병은 산악 진지를, 산악 진지 장병은 건물 진지 근무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장병 여러 명과 대화를 해보니 건물 진지 근무가 좀 더 힘들다는 답변이 더 많았다.

건물 진지와 달리 실외 공간이 마련된 산악 진지에서는 풋살과 같은 운동이 가능하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건물 진지와 달리 실외 공간이 마련된 산악 진지에서는 풋살과 같은 운동이 가능하다. [영상캡처=강대석 기자]

산악 진지는 여름철 제초 작업이 힘들지만, 진지 내부에서 취사도 할 수 있고, 좁은 공간이지만 풋살로 ‘군대스리가’를 즐길 수 있다. 이날도 기자는 소대장이 이끄는 팀과 ‘PX 과자’를 건 혈투를 벌였다. 비교적 넓은 공간 덕분에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고층 빌딩에 있는 건물 진지는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달온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는다. 문 열고 나가 음식을 가져오는 간단한 일이지만, 이때도 엄격한 규정이 적용된다고 한다. 배달 음식을 받아가는 10여 초 짧은 시간이지만, 문밖은 영외 지역이기 때문이다.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나가면 ‘근무지 이탈’로 처벌을 받는다.

산악 진지 장병들이 훈련을 마친 뒤 토의하고 있다. 훈련을 할 때는 긴장이 높았지만, 질책보다는 서로를 격려하며 더 좋은 성과를 준비했다. [박용한 기자]

산악 진지 장병들이 훈련을 마친 뒤 토의하고 있다. 훈련을 할 때는 긴장이 높았지만, 질책보다는 서로를 격려하며 더 좋은 성과를 준비했다. [박용한 기자]

고층 건물 옥상에서 근무하면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1000피트(약 304m) 상공에서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이날도 기자는 해가 넘어간 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에 크게 고생했다.

여름과 겨울 중 언제가 더 힘들까. 장병들은 여름이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열이 헬기장을 데우면 사실상 프라이팬에 올라가 근무하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육군의 핵심 가치를 강조했다. 이날 만난 장병은 국민을 지키겠다는 ‘위국헌신’을 뜨겁게 안고 있었다. 또한, 끝없는 훈련으로 ‘책임 완수’도 준비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병사와 간부가 서로 격려하는 ‘상호 존중’도 잊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이들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은 이번 설 명절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박용한 기자
영상=강대석·공성룡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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