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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윤석열 하나 남은 게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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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3주 전 이 자리에 ‘이제 윤석열 하나 남았다’는 글을 썼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1·8 대학살’ 인사로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검 8층에 고립됐다. 그와 뜻을 같이했던 고위 간부들은 예외 없이 좌천됐다. 하지만 그가 들판에 홀로 선 민들레 신세는 아니라는 것이 최근 10여 일 새 확인됐다.

사표, 공개 항의, 못박기 수사로 #“내가 윤석열”을 외치는 검사들 #몰상식·몰염치 시대의 위안거리

먼저 김웅이라는 검사가 의기를 보였다. 그는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멤버가 아니다. 이 그룹의 장기인 특수수사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형사부를 전전하던 그는 전임 문무일 총장에 의해 대검 간부로 발탁됐으나 1년 만에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교수로 쫓겨났다(‘명랑’을 인생 기조로 삼고 있는 그는 검사에서 교수가 됐으니 영전이라고 아직도 우긴다). 그를 변방으로 보낸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정설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만들 때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 찍혔다고 한다.

그는 지난 14일 사직서를 냈다. 동시에 검찰 통신망(이프로스)에 현 정부가 ‘검찰 개혁’이라며 벌이는 일들이 실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약 600명의 검사(전체 검사는 약 2000명)가 공감의 댓글을 달았다. 그와 통화했다. 그는 평소보다 덜 명랑했다.

검사 그만두고 뭐할 건가요.
“작은 점방 하나 차리면 생계는 해결되겠죠.”(‘작은 점방’은 변호사 사무실을 의미했다.)
윤석열 사단도 아니고 고향도 좋아서 꾹 참고 조용히 있으면 검사장까지는 할 텐데요.(김 검사의 고향은 전남 순천이다. 1·8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핵심 포스트는 모두 호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우린 사표 내고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돼 있잖아요. 잘려도 먹고살게는 해줄 테니까 ‘부당거래’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라는 뜻으로 나라가 만든 제도 아닌가요? 판·검사 노후보장용으로 잘못 인식돼 있지만요.”
그래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 글에 썼듯이 이름은 지키고 살자, 뭐 그렇게 생각했죠. 고맙게도 집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라고 해서 결정의 시간을 줄였어요.”(2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뛰쳐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8일에는 양석조 대검 연구관이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에게 “당신이 검사냐”고 소리쳤다. 대검 회의에서 조국 전 장관이 무혐의라고 주장했던 심 부장에 대한 항의였다. 반부패·강력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대검 중앙수사부장(중수부장)의 후신이다. 그런 자리를 꿰찬 이가 영장전담 판사도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 조 전 장관의 ‘봐주기 감찰’ 혐의를 부정했다. 여권에서 추태와 하극상으로 이 사건을 규정했지만 공무원들에게 소신껏 할 말, 할 일 하라고 독려한 게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눈치 없이 행동하다 잘린 노태강 국장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화려하게 컴백시킨 게 그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항명과 징계를 거리낌없이 말한다.

사표 내고, 소리치는 검사만 있는 게 아니다. 유재수 감찰 무마,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담당 검사들은 수사팀 해체에 대비해 수사를 ‘되돌릴 수 없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여기에 뜻밖의 원군(援軍)까지 등장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다. 그는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검사는 어떻게든 자른다는 것’ ‘검찰 개혁 수혜자는 조국·최강욱·백원우 같은 권력층’ 등으로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비판을 하며 혹세무민 세력을 ‘두더지 잡기’식으로 두들겨 팬다. 권력의 총애를 받던 검사들과 진보 진영 대표 학자가 정권을 향해 민주화운동 하듯 정의를 부르짖어야만 하는 이 낯선 시대에 “내가 윤석열이다”는 그들의 외침에서 몰상식과 몰염치에 질린 시민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