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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표정의 고흐 자화상, 40년 논란 끝에 '진품' 판정

중앙일보

입력

음울한 표정이 눈길을 사로잡는 반 고흐의 자화상. 1889년 생래미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 [AP=연합]

음울한 표정이 눈길을 사로잡는 반 고흐의 자화상. 1889년 생래미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 [AP=연합]

생기가 없는 얼굴, 삐딱하고 뭔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 누가 봐도 불길한 분위기의 초상화다. 그림 속 남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를 닮기는 했는데 진짜 고흐가 그린 것일까?

"1889년 생레미 정신병원서 그린 그림"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최종 결론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

최근 AP와 가디언 등 외신은 지난 수십 년간 진위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고흐의 초상화가 최근 진품으로 인정됐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초상화(1889)가 고흐가 그린 것이 맞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고흐가 정신 질환을 심하게 앓고 있을 때 그려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고흐의 이 자화상은 1910년부터 노르웨이 정부의 소장해온 작품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위작일 수 있다는 의혹에 시달려왔다. 이 오랜 논란에 반 고흐 미술관이 '진품' 판정을 내리며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1889년 8월에 그려진 이 초상화에서 화가의 표정은 생기가 전혀 없고, 칙칙한 녹색과 갈색으로 겹쳐 칠해져 있다. 반 고흐 미술관 측은 "'오슬로 자화상(The Oslo self-portrait)'은 정신 질환자(someone who is mentally ill)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소심해 보이고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못하는 표정이 눈에 띈다. 이는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표정"이라고 설명했다.

고흐는 1889년 5월 프랑스의 생래미에 있는 생 폴 드 무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한 달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심각한 정신 발작 등을 겪었다. 이 그림이 고흐가 9월에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언급한 자화상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미술관 측의 분석이다.

 네덜란드 암스텔담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된 고흐의 자화상. 오랫동안 위작 의혹을 받아왔으나 반 고흐 미술관은 최근 이 그림이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AP=연합]

네덜란드 암스텔담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된 고흐의 자화상. 오랫동안 위작 의혹을 받아왔으나 반 고흐 미술관은 최근 이 그림이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AP=연합]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은 1910년 파리의 한 컬렉터로부터 이 작품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작품을 놓고 진위 논란이 계속 일자 2014년 반 고흐 미술관에 스타일, 기법, 소재 등을 종합해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마이 브리트 굴렝 큐레이터는 "이 그림이 진품으로 확인돼 마음을 놓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14년에 이 그림을 반 고흐 미술관 측에 전달했을 때 미술관 측은 ‘당신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면서 "우리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 작품은 진품이 아니라는 의혹을 샀을까. 기법과 색채 면에서 특이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림의 일부에서 팔레트 칼을 사용해 화폭의 표면을 납작하게 칠했다는 사실도 의혹을 불러일으킨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반 고흐 미술관의 수석 연구원 루이 반 틸보 교수는 " 고흐는 종종 그런 기법을 썼는데, 그가 그것을 얼굴 표현에 사용했다는 것이 이상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전문가들은 캔버스 X레이 분석과 화가의 붓 터치 비교, 또한 동생 테오에게 보낸 서한 등 참고자료 등을 검토한 끝에 진품임을 확인했다.

틸보 교수는 "이 그림은 반 고흐가 만든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아니지만 볼수록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고흐에게 그림은 종종 고뇌의 외침이었다. 그가 자신의 건강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반 고흐는 1889년 8월 22일 자신이 여전히 "굉장히 불안하지만"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썼다. 이 그림은 반 고흐 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2021년 봄에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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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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