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나이 들면 안 팔려, 얼른 결혼해."
"남자가 장가가려면 연봉이 높아야 할 텐데…. 집은 살 수 있겠니?"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명절사전'
온 가족이 모이는 설날. 얼굴 붉히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를 강조하는 대신 단어를 골라 쓰는 것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22일 시민 의견을 바탕으로 한 '서울시 성평등명절사전 2020 설특집편'을 내놨다. 지난 추석에 시민들이 직접 겪은 명절 체감도 조사 결과도 함께 공개했다. 조사에 응한 사람은 모두 810명. 여성 718명과 남성 92명이 참여했다.
평등한 명절 사례는?
추석에 '성평등 명절 체감도'를 묻는 말에 응답자의 43.2%는 "전보다 성평등해졌다"고 답했다. '똑같다'는 답도 39.3%에 달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답은 12.3%에 그쳤다. '추석에 얼마나 평등하다고 느꼈는가'라는 질문에 여성은 평균 46.1점을 줬다. 반면 남성은 평균 70.1점을 매겼다.
사람들이 '평등한 명절'이라고 부른 것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였다. "명절 집안일과 운전을 나눠서 한다"와 "설에는 시댁을 먼저 방문하고 추석에는 친정 먼저 방문한다" 같은 것이다.
또 "양가 부모님 용돈을 똑같이 드렸다"라거나 "명절 차례와 밥상을 함께 한다"도 평등한 명절을 만드는 일로 꼽혔다. 이 밖에도 "명절 음식 준비 대신 부모님과 여행을 갔다"거나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니 여자, 남자의 일이 아닌 모두가 함께 도와서 여행준비를 했다" 등도 '성평등 사례'로 제시됐다.
성평등 단어장 들여다보니
재단은 시민 제안 의견 중 '꼭 써봐야 할 단어와 문장'을 뽑아 서울시 성평등 명절 단어장을 만들었다. 친가는 '아버지 본가'로, 외가는 '어머니 본가'로 바꿔 부르자는 것이다. 또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모두 '할머니'로 통일하기를 제안했다.
'시댁'은 '시가'로 서방님이나 도련님은 이름에 씨 또는 님을 붙여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했다. 집사람과 안사람, 바깥사람은 모두 '배우자'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제안도 했다.
또 "여자는 나이 들면 안 팔려, 얼른 결혼해"는 "결혼은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로 바꾸기를 제안했다. "남자가 장가가려면 연봉이 높아야 할 텐데, 집을 살 수 있겠니?"라는 말은 "회사 잘 다니고,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니?"로 바꿔 말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남자가 되어서' 또는 '여자가 되어서' 같은 말은 '사람은 모두가 똑같은 사람'으로 바꿔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자는 살찌면 안 되니까 조금 먹어라 말은 "명절에는 즐기자, 맛나게 먹어라"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강경희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는 "시민들이 성평등한 명절을 익숙하게 여기고 다음 명절은 좀 더 평등해질 것이라고 기다리는 설렘이 있길 바란다"며 "이번 명절에도 성평등한 말과 행동은 필수"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